파랑새를 찾고 있나요?

우리집 파랑새

by 플라잉맘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가, 결국 집에서 발견했다는 파랑새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그 이야기가 조금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멀리까지 다녀와 놓고, 결국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니. 나이를 먹고 나니 그 이야기가 다르게 읽힌다. 멀리 떠나본 사람만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진짜 파랑새가 있다. 파란 하늘이와 하얀 구름이, 두 마리의 사랑앵무를 키우고 있다. 딸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 큰딸과의 내기에서 졌다며, 마트에 가서 작은 새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상의도 없이 둘이 덜컥 새를 데려왔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몸에 유난히 선명한 파란색을 가진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풀려버렸다. 하늘이라는 이름은 가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하늘이는 처음에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새장 한쪽에 붙어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주변을 경계하듯 천천히 눈을 굴렸다. 사람이 다가가면 더 뒤로 물러났다. 낯선 세계에 떨어진 작은 존재가,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모습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는 조금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집에 노래가 들리면 박자를 맞추며 짹짹거리고, “하늘아!” 부르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반응했다. 짹, 짹짹. 그 작고 가느다란 소리가 집 안 공기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하늘이는 자기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프면 꽥꽥 소리를 내며 그릇을 쪼고, 놀고 싶으면 가까이 와 앉았다. 졸리면 불을 끌 때까지 보채다가, 불이 꺼지면 조용히 깃털 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추우면 사람에게 딱 붙어 옷 속에 몸을 파묻었다. 그 작은 생명은 생각보다 분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집 안의 리듬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새를 집에서 키우려면 멀리 날지 못하게 날개 끝을 정리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이를 데리고 종종 앵무새 카페에 갔다. 하지만 하늘이는 그곳의 다른 새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구름이를 만났다. 하얀 몸에 부드러운 눈을 가진 새였다. 하늘이는 조금 거칠고 성급한 방식으로 구름이에게 다가갔다. 다른 새들은 다 도망갔지만, 구름이는 피하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맞서지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하늘이와 함께 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두 마리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상의도 없이 애 아빠와 첫째가 하늘이를 데려왔다면, 나와 둘째는 구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이와 구름이는 금세 서로의 자리를 알아봤다. 하늘이는 여전히 앞에 있고, 구름이는 그 뒤를 따른다. 눈치를 보는 듯하지만,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늘이는 어미처럼 구름이를 챙겨 먹인다. 제 입으로 먹이를 먹여준다. 하늘이가 보이지 않으면 구름이는 다급해진 소리로 꽥꽥 울며 하늘이를 애타게 부른다.


그 모습을 보던 둘째가 말했다. “구름이… 나 같아.” 언니는 늘 앞에서 대장처럼 굴고, 나는 눈치를 보며 뒤를 따라다닌다고 했다. 하늘이와 구름이, 그리고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누군가는 먼저 나아가고, 누군가는 그 뒤를 따라간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서로를 찾는다.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하고, 다시 곁에 있으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숨을 고른다.


이 작은 새들의 소리 덕분에 우리 집의 공기는 분명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조용하지만 차가운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시끄럽지만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짹짹거리는 소리와 날갯짓, 가끔은 부딪히는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이제야 알게 됐다. 우리는 계속 밖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이미 집 안에 우리가 찾던 것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왔다는 사랑앵무.
이 작은 새들은 원래 더 넓은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집 안에서 살아간다. 더 멀리 날지 못하도록 날개를 정리한다. 짧아진 날개로 푸드덕거릴 뿐이다. 나도 가끔은 답답하고, 멀리 날아가고 싶다. 가볍게 어딘가로 떠나던 예전의 생활이 그립기도 하다. 그 먼 길을 돌아와, 나는 지금 우리 집에 머물러 아이들을 키우고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멀리 날지 못해도,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찾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 집은 따뜻하다. 나는 지금 멀리 날지는 못하지만, 대신 더 깊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행복은 얼마나 멀리 갔는지가 아니라,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랑 반대로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