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잃은 엄마는 울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 둔 채 흘린 눈물 한 줄기가 전부다. 서핑을 하다 상어에 물렸다는 그의 죽음이 황당해서였을까,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복잡한 가정사가 있는 걸까. 짐작과 추측이 머릿속을 떠돌기 시작하지만, 조금 화가 난 듯한 그녀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리고 10년동안 매년 같은 시기에 아들이 죽은 '하나레이 베이'에서 야외용 의자를 펼쳐 앉곤 비슷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다.
받아들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아들에 대한 감정과 상실의 현실은, 장례식에서 돌아온 그녀가 상복을 채 벗지도 않고 박스에 밀어 넣은 아들의 물건들처럼 증오와 애정 사이 어딘가 구겨진 상태로 굳어버린다. 아들이 죽은 바다 앞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어 내릴 동안에도, 아들 또래의 서퍼들과 보내는 시간에도 그녀의 마음은 아들에 닿지 않는다. 모든 것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던 그녀를 흔든 건 '일본인 외다리 서퍼'를 봤다는 젊은 서퍼들의 이야기였다.
햇빛이 일렁이는 해변을 무엇인가에 홀린 듯 걷고 또 걷는다. 올곧게 유지되던 그녀의 시선은 정처없이 흔들리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단정히 올려 묶었던 모습은 땀과 모래로 뒤섞여 흐트러진다. 꿈쩍없는 덩치 큰 나무를 있는 힘껏 밀어 보고, 늘 제자리에 있던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고는 비로소 아들의 손도장 위에 눈을 포개고 눈물을 떨군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과 아픔에 닫아버린 그녀의 마음은 우연한 계기로 무너지고 성난 폭풍우가 할퀴듯 자책과 그리움, 미안함, 원망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간 후에야 그 안에서 다시 숨을 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아내의 흔적을 남김없이 분해하고 해체해가면서 상실을 마주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영화 <데몰리션>을 연상시킨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흐느껴 울고 절망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시선 사이에서 자신만의 방식과 시간으로 이를 마주하는 두 주인공의 솔직함이 특히 닮았다.
먼 발치에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가 바다에 발을 담근다.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멈춤 버튼을 누르듯 억지로 누르고 끊어내던 아들의 기억을 이제는 웃으며 사진과 함께 꺼내든다.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에 비해 많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거친 영화의 결 사이사이로 비친 평온한 하와이의 태양과 해변은 누군가를 잃고 아픈 기억들을 온화하게 어루만져 준다.
- 영화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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