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로 만난 안중근
마나베는 자신의 질문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우덕순은 마음속의 사실을 들이대며 질문에 답했고, 사실을 들이대며 질문을 부수었다. 우덕순은 행위와 관련된 사실을 말했고, 동기와 관련된 사실을 말했다. 우덕순은 마나베의 질문이 미리 설정한 틀에 갇히지 않았다.
마나베는 안중근에게 물었다.
…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고,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힘주어 말했다. 진술은 유불리를 떠나 있었다.
―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p.232-236
미조부치는 분도에게 안중근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분도가 안중근의 사진을 보면서
― 이것은 나의 아버지다.
라고 말했다고 미조부치는 청취서에 기록했다.
김아려는 이토가 이미 죽었으므로 남편은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던 이 년 전에, 남편은 돌아올 수 없을 것으로 김아려는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하자 결정은 사실처럼 굳어졌다.
… 김아려의 마음속에서 남편은 죽었다. 죽음은 바뀔 수 없었다. p.201-203
탈고한 지 열하루 뒤에 안중근은 집행되었다.
아침에 옥리들이 감방에 새 옷을 넣어주었다. 안중근은 집행 절차가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명주 두루마기와 바지가 개어져 있었다. … 명주 두루마기는 부드럽고 포근했다. 새 옷의 향기가 몸에 스몄다. p.276
반도의 면면촌촌에서 죽음을 잇대면서 무너지고 또 일어서는 의병 부대들을 안중근은 생각했다. 계통이 없고 대열이 없는 복받침이었다. 한없는 죽음이었고 한이 없을 죽음이었지만, 국권회복은 죽음을 잇대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었다. p.93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筆生)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p.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