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이에게 가족이란 적당히 훌륭해도 부족해 보이기 마련이지 않을까. 희생적인 엄마와 나름 '가정적인' 편이지만 어쨌든 집안일은 '돕는 것'에 머무는 아빠, 어쩌면 아빠보다 더 이상한 형태로 가부장적인 남자 형제를 보고 있자면 말이다. 나름 서로를 이해하고 시류에도 적당히 발맞춰 가는 가족 안에서 오래전부터 나는 배려 없이 떠드는 페미니스트를 맡고 있다.
저번에 어떤 놈이 저랬어, 이번엔 저 새끼가 어쨌어는 나의 단골 주제다. 내가 너무 불만이 많다던 엄마는 어느새 "어우 야 걔는 어디 가서 분리수거도 못하겠다" 맞장구친다. 나만 예민한 것 같아 더 이상 부모님 집에 가기 싫은 시기를 지나 처음으로 '엄마도 변했구나' 여긴 때가 있다. 바로 <응답하라 1988>이 방영할 때다. 극 중에 택이 아빠랑 선우 엄마가 결혼하는 것에 대한 아이들 반응을 담은 장면이 있다. 택이가 자긴 아빠가 재혼하는 거 좋다며 아빠가 혼자 자기 밥 소홀히 차려먹는 게 보기 싫다(대사는 정확하지 않음)고 한 순간, 엄마랑 나랑 둘 다 “니 밥은 니가 차려 먹어!”(이 말은 정확함)라고 역정을 냈다. 그때부터인가 엄마랑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게 얼마나 자만한 생각인가. 내가 이렇게 어디 가서 입만 산 꼴페미 소리라도 듣는 건 다 엄마 덕분이다. 처음부터 난 페미니스트의 딸이었다. 우리 엄만 내게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주려 노력했다. 그 바람은 잘 실행돼서 나는 성별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졌다. 또 엄마는 내게 억지로 분홍색 옷을 입히지도, 인형을 사주지도 않았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분홍색도 인형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 덕분에 좋아하지 않을 기회를 얻은 셈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그때나 지금이나 초록색이다. 내가 제일 좋아한 장난감은 그림 그리는 칠판과 소리 나는 컴퓨터 모형이다. 이모가 로봇도 사줬지만 난 로봇도 별로 안 좋아해서 유일하게 생물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내 장난감은 거실 스피커 위에 올려진 채로 버림받았다. 엄마는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 꼭 와야 할 때만 왔다. 선생님이 은근히 불러도 일부러 안 오는 것 같았다. 치마도 잘 안 입혔고, 공주라고 부르지도 않았으며 내 앞에서 결혼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네 집에는 다 디즈니 공주 비디오가 있었는데 우리 집엔 없었다. 우리 집엔 라이온킹이랑 은비까비, 이상한 스쿨버스만 있었다. 가장 많이 읽어준 동화는 <용감한 아이린>이다. 지금 보면 은근히 ‘여성적’인 외모 특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린은 눈밭을 뚫고 과제를 완수하는 그런 애다. 또래를 평균 낼 수는 없으나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 좀 특이했던 것 같다. 그렇게 페미니스트의 딸은...자라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이제 엄마는 나를 만나기 전에 불만을 아껴놨다가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말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행사 때 성당 가서 봉사를 하는데 어떤 남자 구역장이 '여자 봉사자들이 좀 방긋방긋 웃으면서 음식 좀 나눠주시라'면서 일손을 하나도 돕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아유 그 사람 지는 하지도 않으면서 아주 멍청한 소리 하네"하며 화를 냈다. 한편으론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혼자 속으로 씩씩댔을 생각을 하니까 웃기기도 했다. 엄마는 좀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기가 다음에 구역장 되면 아주 앞에서 창피를 줘야겠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집에서도 뭐 하나 바로 잡지 못하는 것 같을 땐, 엄마를 본다. 엄마는 이런 나를 만들었고, 나도 엄마를 조금씩 바꿨다. 그리고 엄마는 나보다 더 많이 집안을 바꾼다. 주말에는 곧잘 집안일을 하다 명절만 되면 누워있던 아빠는 이제 명절 때도 알아서 일을 척척해서 친척들 사이에선 '유난'이란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동생은 모르겠다. 아직 제대를 안 해서. 아무튼 나는 페미니스트의 딸이니까, 엄마의 지지가 있으니까 어디 가서 '꼴페미' 소리에 기죽지 않는다. 너 지금 우리 엄마 욕했니.
제목 이미지 출처: 비룡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