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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Feb 04. 2020

내년의 나에게

기자가 못 되는 건 두렵지 않다

생일이면 내년의 내게 편지를 쓰곤 했다. 내년에는 공감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겠구나, 내년이면 독일에 있겠구나, 그렇게 희망을 예언처럼 중얼거리는 편지들이었다. 대학생의 나는 1학년, 2학년, 쌓여가는 학년에 비례하게 다양한 경험을 했다. ‘스펙’이라 하기엔 일관성이 전혀 없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교환학생, 인턴, 여행, 심지어는 연애같은 ‘경험’들을 쌓아가는 재미로 스스로가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예언을 실천했을 때마다 조금 놀랐다. ‘내년이면 48kg였으면 좋겠다’ 같은 부질 없는 욕망이나 어떤어떤 사람과 어떤어떤 관계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내 힘만으로는 안 되는 주문도 있었지만 대학생의 나는 꽤 많은 목표들을 마리오게임 스테이지처럼 뽀개나갔다. 시간이 계단식으로 흐르던 시기였다.


일 년 뒤, 잘하면 이 년 뒤까지 뭘 할지 하고 싶은지 알고 있던 나는 졸업을 전후로 기자 준비를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한치 앞을 모르게 되었다. 당장 이번 공개채용에 합격해서 일하고 싶다는 것은 다음 달, 다음 주의 일을 전혀 계획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필기에 합격해 면접이 생기면 면접을 준비해야 하고, 떨어지면 다른 회사 서류와 필기를 준비해야 한다. 내 모든 일정은 다음 전형 합격 여부에 달려있었다.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고 해도 가지 않았다. 계획을 도무지 세울 수 없었으니까. 공채 게시판이 잠잠해질 때 쯤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 혼자 짧은 여행을 떠났다. 여행 스케줄도 설거웠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어야 했다. 전에 치른 전형의 합격 소식이 들려올 수 있었고, 내가 희망하는 회사의 채용이 언제 뜰지도 알 수 없었다. 편도로 제주도에 갔다가도 시험 소식에 곧장 돌아왔다. 모스크바에서도 세 통의 자소서를 냈다. 돌아오자마자 시험을 치렀다. 시간이 불규칙한 양의 생리처럼, 혹은 타피오카펄이 예고 없이 습격하는 버블티처럼 흘렀다. 입 벌려 시간 들어간다, 그렇게 가늠할 수 없이.


거듭의 거듭의 거듭을 거듭하는 탈락 통보를 마주하며 내년의 나에게 편지 쓰는 것을 그만 두었다. 졸업했니? 기자가 됐니? 안 그래도 탈락의 연속에서 허우적거릴 내가 그런 명절에 친척들이 하는 질문을 받았다간 또 일 년을 ‘허송세월’했다는 이유로 속상할까봐 더이상 묻지 못했다. 공채는 떨어지면 사라져 버린다. 서류전형 탈락이든 최종면접 탈락이든 상관없다. 다음 공채를 다시 서류부터 준비해야 한다. 음 자네는 그 회사 최종에 떨어졌군, 우리 회사는 세 번째 전형부터 치르도록 하게, 라고 말하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가차없는 공채만 바라보는 동안 내 삶은 지체 혹은 유예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쯤에서 이슬아 얘기를 해야겠다. 기자 준비 기간 동안 내가 못 했던 건 계획 세우기나 편지 쓰기뿐 아니라 ‘이슬아 읽기’를 포함한다. 그의 글을 너무너무 읽고 싶었지만 꾸준히 읽지 못 했다. 몇 장 넘기다 보면, 그의 인스타 소식이 피드에 찾아올 때면 질투가 타올랐다. 글 써서 멋지게 먹고 사는 그, 자신의 능력으로 독립해 고양이를 키우는 그, 제 힘으로 물구나무를 설 줄 아는 그, 심지어 내 평생 소원인 라디오 디제이까지 하는 그를 상상하면 열등감이 나를 덮쳐왔다. 그가 그렇게 멋져질 때까지 나는 뭘 했냐!


하는 마음이 들까 두려워서 좀처럼 읽지 못했지만


최근 이슬아를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불쑥 용기가 나 그의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글은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고 안전해서 자책보다 힘을 얻었다. 그가 글을 써서 먹고 살게 되기까지, 독립해서 고양이 집사 3년차가 되기까지, 물구나무를 서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감화됐다. 그를 보며 혼자서도 생활과 집과 인연들을, 삶을 잘 쌓아 나가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금까지 무슨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냐 되게 짜증나! 라고 생각했던 신형철의 문장,

“그를 질투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냥 그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의 간증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굵직굵직하게 느껴지지 않는 성취, 그러나 소리 없이 쌓여가는 매일매일의 것들을 이뤄나가고 싶다. 돌아보니 그새 나는 채식 지향 3년차다. 요가도 3개월째 하고 있고, 최근에는 브런치 연재도 시작했다. 띄엄띄엄쓰던 일기도 올해부턴 매일 쓴다. 그러니 1년 뒤의 나에게 물을 수 있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여전히 채식 지향을 하고 있니? 어떤 태도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직 매우 소심하게 실천 중이거든. 요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올해 안에 반-물구나무를 서는 게 목표였어. 요가가 아니더라도 뭔가 재밌는 운동을 하고 있으리라 믿어. 글은 요즘 어디다 쓰고 있니? 간격을 늘리더라도 공개적인 곳에 연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2020년 상반기에는 무엇이든 꾸준히 써보는 게 목표였어. 하반기에는 좀 잘 팔리는 글이 뭔지도 알아보고 실천해 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됐어? 요즘은 어떤 책을 읽니? 여전히 새 옷을 사지 않니? 어디에 살고 있니? 방에는 여전히 초록섬(2세, 내 방의 유일한 생명체, 선인장)이 있니? 묻고 싶은 것이 많다. 기대도 된다. 기자가 되지 않는 것은 이제 두렵지 않다. 이제 나의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 물은 이런저런 굴곡을 따라, 장애물을 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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