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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Mar 14. 2020

모르는 사람 이야기

너 같은 애는 아무것도 몰라.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더욱 많은 것을 욕심내던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내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나머지 내게 무언가 결여됐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나는 소위 ‘현역’으로 입학했지만 재수생 언니 오빠들과 친하게 지냈다. 재수학원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나 서너 번의 대학 지원 이야기는 나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대학에서 부어라 마셔라 놀 때 학원에서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그 마음까진 알기 어려웠다. 내겐 잘 말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술에 잔뜩 취해 안암역 계단에 털썩 주저앉은 언니가 다른 언니에게 귀엣말을 했다. 역시나 술에 잔뜩 취한 내가 내게도 말해 달라고 하니까 언니가 그랬다. “너는 재수 안 해서 말해도 몰라”


그런 말을 건넨 애인도 있다. “부모님은 화목하시니?” 신호등을 바삐 건너고 있는 중에 받은 질문이었다. “어 뭐 그럴 걸”이라고 대답했다. 이후 그 애에게 한 번이라도 되물을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나는 빨리 졸업해서 돈 벌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 애에게 난 “헐 왜? 난 지금이 너무 좋아서 영원히 술 마시고 놀면서 졸업 안 하고 싶어.”라며 안일한 반응을 하기도 했다. 누구도 그에 이어 말할 수는 없었을 거다. 같은 대학생들조차 부러워하는 새내기 때, 얼른 졸업해서 일하고 싶단 생각을 하는 그 애의 말에 어떤 뜻이 숨어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짐작하지도 못했다. 이별할 때 그 애가 그랬던 것 같다. 너는 모른다, 라고. 그리고 그 말이 맞다. 헤어지고 나서야 난 걔가 남긴 말들이 어떤 조각인지 맞춰봤으니까.


내게 주어진 것, 혹은 얼마간의 노력을 했든 간에 누구보다는 쉽게 얻은 것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일련의 일들을 겪은 이후부터는 더욱. 경제적 조건, 외모, 성적, 어울리는 친구들은 물론 성격까지 내가 가진 사회적인 조건 위에서 만들어졌으니까. 누군가는 당당함이라고 여길 붙임성 없음, 누군가는 쿨함이라 생각할 무신경함, 누군가에겐 엘리트적 사고방식으로 보일 정치적임...무엇이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내 사이에 거리감을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당연하다. 나조차도 어떤 이들과는 선을 긋는다. 이번에 합격 소식을 듣고 한 친구가 내게 “언제든 힘들면 그만 둘 생각으로 다녀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겐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기자가 되기 위해 나름 오랜 기간 공부했다. 이제는 그만할 생각으로 지원했던 대학원엔 직장에 합격했단 전화를 받자마자 등록포기 각서를 냈다. 그러니 잘 해내야만 한다. 잘 살아남아야 한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이 직장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는 능력 발휘도 잘 안 되고 안 참아야 할 것들도 참게 되니까. 억울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는 나쁜 자세니까. 그렇지만 내겐 이 직장 아니면 안 될 많은 이유들이 이미 있었다. 그런 나머지 속으로 ‘쟤는 잘 살고 능력 좋으니까 쉽게 말한다’고 단정해 버렸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말을 그 친구의 배경과 연관지어 고깝게 받아들였다.


요 몇 주 글을 쓸 수 없었다. 얼마 전 바라던 곳에 취업을 했다.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고, 입사 서류를 준비하고, 이런저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미리 쉬어두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데 도무지 이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너무 많이 얘기된 것, 누군가에겐 없는 것, 궤도 안의 삶 같은 것이 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단 말인가. '없음'은 끊임없이 나를 이야기하게 했지만 요즘 나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있음'은 내 입을 막았다.


인사팀에서 날아온 메일 속에 기본 신상정보를 입력하며 더욱 분명해졌다. 서류는 말했다. 저는 '정상가족'안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서울에 살았습니다. 공부를 잘했고, 운도 좋았습니다. 별다른 실패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인생 밖에 살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는 전혀 모르나 지금 멈추어서 보기엔 그렇다. 이런 '코스'를 선망하고 성취하는 이들을 남몰래 경멸했으나 나 역시 그런 인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많은 직업 중 나는 '듣는 직업'을 선택했다. 내가 들어야 할 수많은 이야기들을 잘 들을 수 있을까? 내가 관심 있게 들어야 할 말을 하는 이들에게 내가 잘 다가갈 수 있을까? 이 글 전체가 한순간의 자만이자 세상을 너무나도 납작하게 바라보는 편협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듣고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 가 나의 고민이다. 당분간은 현재의 나에 대해 쓸 수 없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 <런던 거리 헤매기> 중에서


그가 그려낸 요리사는 너무 상스럽고 퉁퉁하며, 농부들은 혈색이 지나치게 좋고 저속하다. 정력이나 활력 같은 단어나 주먹을 흔들고 넓적다리를 철썩 때리는 일이 남용된다. 그는 그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에 대해 쉽게 쓰지 못하는 것이다. (...) 소설가의 작품은 그의 출신에 영향을 받는다. 그는 오로지 자기 계층에 대해서만 속속들이   있고 이해심을 갖고 묘사할  있는 운명이다. 자신이 성장한 유리상자에서 탈출할  없다. 소설을 전체적으로 조감해보면 디킨스의 작품에는 신사가 없고 새커리의 작품에는 노동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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