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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Sep 26. 2022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는 지금 자기 엄마아빠와 살고 있다. 자기 집에서. 할아버지의 거동이 불편해 할머니에게만 간병을 맡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할머니와 엄마는 힘을 합쳐 할아버지를 돌본다. 둘 다 할아버지한테 큰 신경을 쓸 수 없을 땐 이모가 소환된다. 비교적 간단한 도움만 필요할 땐 나나 동생이 집에 가기도 한다. 나는 주로 할아버지 옆에서 휴대전화를 보다가 경민아 물 좀 갖다줘라 하시면 물을 떠다 드렸다. 다른 걸 주문하시면 꼭 엄마나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이거 어딨냐고 물어봐야 했다.


엄마 집 거실에는 커다란 병상이 자리한다. 할아버지는 그곳에 티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누워있다. 초반엔 식사시간에만 힘겹게 일어났지만 최근에는 양치도 하러 화장실 앞까지 가고, 목욕도 자주 하는 걸로 안다. 걷기 운동을 하는 반경은 ‘식탁부터 거실까지’에서 ‘부엌부터 베란다까지’로 늘어났다. 걸음도 힘차졌고 왕복하는 횟수도 늘었다. 걷기 연습을 도울 때 혹시 할아버지가 넘어질까 긴장하고 조심해야 할 상황도 줄어들었다. 긴장되고 한숨 나오는 시간이었던 걷기 연습시간이 이제 조금은 희망찬 시간이 됐다. 몇 미터를 걷고 나서 할아버지가 몇 번 제자리 걸음을 하면 오랜만에 곧아진 몸 속에서 장기들이 기지개를 켠다. 큰 소리를 내며 방귀가 생산되는데 그것도 가족들에게 웃음을 준다.


좋고 만족스러운 순간은, 이렇게 아프기 전만큼은 찾아오지 않아 할아버지는 웃음이 줄었다. 그는 예전만큼 웃지는 않지만 예전만큼 매서운, 영원한 독설가다. 목소리는 그때나 저때나 호탕하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라서 밥을 할머니가 떠먹여도 맛 없는 반찬은 맛 없다고 안 먹는다고 한다. 그를 여러 번 간병한 엄마에게는 마음이 약해져 맛 없을 때 “먹을 만하다”고 하신다고 한다. 아무튼 거짓말로 맛있다고는 안 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꽤나 재밌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몇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1. 초등학교 숙제로 조부모에게 편지쓰기를 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께’라고 썼다고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라고, 할아버지를 먼저 쓰라는 취지였다. 그 이후에는 편지를 쓰지 않아 표기 순서를 고민한 적은 없다.


2. 할아버지는 밥을 전혀 차릴 줄 모르고 전혀 치울 줄 모른다. 아프지 않았을 때도 행주질 한번을 하지 않았다. 퇴직을 하고 나서야 겨우 부엌에 들어와 자기가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어쩐지 “우리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이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야!”라는 말 정도로 정리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2-1. 할아버지한테 여자가 어쩌고 남자가 어쩌고 같은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지방정부에서 공보담당으로 오랜 시간 지내며 기자들의 천태만상을 다 봤을 사람이다. 내게 기자가 되어보는 건 어떠겠냐고 했던 건 할아버지다.


2-2. 할아버지에게 애인이 있냐거나 결혼을 하라거나 그런 말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기자가 된 후에는 “이제 ~만 하면 되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는 ‘결혼’이 아니라 ‘유명해지기’였다.


2-3. 엄마가 나보고 뚱뚱하다고 할 때 할아버지는 튼튼한 내 다리를 보고 다리가 튼튼해야 오래 건강하다고, 오래 살겠다고 했다. 난 그에게서 진심을 느꼈다.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할머니 심시선도 ‘오대양 육대주를 다닐 수 있는 다리’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 부분을 읽을 때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3. 내가 칸영화제 출장을 위한 원피스를 할머니 앞에서 입어봤을 때 할머니는 우아함의 최상급 표현으로 “김건희 여사 같다”고 칭찬했다.


3-2. 할아버지는 칸영화제에 가서 내가 쓴 기사를 한 종편 뉴스프로그램에서 읽어줬을 때 “경민이 아주 대단하다”고 특히 좋아하고 반가워했다. 동료들과 종편 기자가 됐어야 했나 농담했다.


4. 할아버지는 욕을 하지 않고, 남들이 그 상황에서 잘 안 쓰는 말로 불쾌함을 표현하곤 했다. 병원에서 뭔가가 뜻대로 안 됐을 땐 “방정맞은 놈들”이라며 혀를 찼다고.



여기까지는 8월에 쓴 글이다.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졌다.

할아버지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영혼은 이미 몸을 떠났을지도 모르지만 몸은 여전히 숨을 쉰다.

얼마 전 갖가지 미신과 유사과학을 비판하는 서적을 감명 깊게 읽어서 지양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음 앞에서는 운명론이나 영혼의 의지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우리를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시는 것 같다고

너희가 생사여탈권을 결정하는 게 싫어서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거야, 하시는 모양이라고

할아버지답다 하며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도 한다.

가족들은 이별의 과정을 천천히, 서로 도와가며 겪고 있다.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그가 복 받은 사람이었다는(이렇게 남처럼)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가족이라서 우리도 복 된 것 같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왔다. 파워 가녀장 장례를 치르고 왔는데 할아버지 보기에 어땠을까 싶다. 할아버지는 그냥 웃고 말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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