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폭력
영화 줄거리는 없고, 스포일러는 있습니다.
그 많던 홍콩 영화들, 특히 홍콩 누아르라 불렸던 영화들은
그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죽지 않을 수는
너무 허망하고 너무 덧없게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그 홍콩 누아르의 한 축을 담당했었던,
담당했다기보단 그 장르에 기대어 지내왔던 두기봉 감독이
내놓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홍콩 누아르가
아마도 <흑사회>인 것 같다.
의리의리한 의리도 없고,
성냥개비 문 입가 사람 좋은 미소도 없으며,
느릿느릿 코트 자락 휘날리며 담배 피우는 사내의
황소 같은 눈에서 떨궈지는 눈물도 없다.
연기 속에 날아오르는 비둘기도 없고,
내가 널 끝까지 지켜줄테다라는 비장함도 없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어마어마했던 쌍권총도 없다.
영화의 폭력은 돌덩이 짓이김, 칼 휘두름이나,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확연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의미심장하게 빛을 발한다.
삼합회 회장이 되고자 하는 두 남자 록 (임달화)과 따이디(양가휘).
삼합회 소속 원로들이 모여,
난 누구를 회장으로 뽑을 것인지 얘기를 나눈다.
사업 감각이 있어 이 사람을 뽑겠다, 내가 어려웠을 때 인간적으로 도운 저 사람을 뽑겠다, 돈을 줬으니 이 사람을 뽑겠다 등등
각자의 이유로 적임자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최고 원로가
"차 한 잔 합시다."
라고 말하자,
일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닫고, 최고 원로가 따라 준 찻잔으로 모여, 조용히 차를 마신다.
원로들의 적임자 격론을 짧게 나눠 보여 주던 카메라는
일순간 천천히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천천히 트래킹 한다.
너무나 인상적인 방법으로 주위를 환기시킨 후 최고 원로는
"난 록을 뽑겠다."
로 상황을 정리한다.
주먹다짐 없이, 쌍욕과 핏대를 세운 이바구 없이
상황을 매우 평화롭게 정리한 듯한
이 장면이야말로 매우 폭력적이다.
바로 다수결과 자유로운 의견 개시, 그리고 비밀투표로 정리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 말이다.
이 폭력이 더 익숙한 이유는 이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인데,
이는 비단 삼합회라는 조직 내에서뿐만 아니라
흔하게 경험하는 우리들의 일상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직장에서, 학교에서, 정치권에서
(예를 들면 메뉴 통일, 밀어주기, 편 나누기, 무조건 복종,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이와 같은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혼란을 일순간에 수습하는
지혜로운 원로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 가치가 얼마나 골치 아픈가 혹은 우스운 가 혹은 중요한가 혹은 위약한가를
빗대어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록은 회장이 되면서 나의 형제들을 목숨 바쳐 지킬 것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의 형제 따이디를 제거 한다.
아울러 따이디의 아내도 당연하다는 듯 제거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따이디가 다른 조직도 그러하니 우리도 2명의 회장 체제로 하자는 의견을 개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말 때문에 록이 돌덩이로 따이디의 얼굴을 짓이기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계획하고 준비했었던 방식이었을 것이다. 록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록은 회장 추대를 앞두고 아들과 먹기 위해 시장에 가서 고기를 고른다.
따이디가 본인의 회장 추대가 임박했다고 예상했을 때, 따이디의 아내는 축하파티를 열기 위해 호텔을 예약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록은 아무렇지 않은 반팔 티를 즐겨 입는 소시민 모습인 반면,
따이디는 말끔한 정장을 입는 전형적인 조폭이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항상 진중한 태도를 보이는 록은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며 자신을 배신한 자에게는 가차 없이 응징을 가하는 다혈질 따이디와
이런 식으로 항상 대비된다.
그런 점들 때문에 록의 폭력은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웃으며 때리고, 공정한 척 비열한 계획을 세우는 그런 사람을 말이다.
원숭이 무리의 왕은 언제나 하나고,
그 왕에 도전하는 이전투구가 항상 있는 것처럼,
사람의 무리에서도 우두머리는 하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가차 없이 제거돼야 함을,
원숭이 떼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가해지는
주변에서 쉽게 볼 법하게 생긴 록의
돌덩이 짓이김과 삽 휘려 침은,
똑같이 대낮에 이뤄진 텍사스 연쇄 살인마보다
그래서 더 무섭고 잔인하다.
그들은 삼합회라는 조직이 하나로 묶여 서로 싸우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청나라, 명나라 기원 등을 통해 장황하고 거창하게 설명했다.
서로를 배신하면 벼락을 맞고 칼을 수십 번 맞을 거라며 엄숙했었다.
최고 원로는 하나의 의견으로 뭉치는 것이 중요함을 여러 번 피력했다.
그것이 그들의 전통이며, 그것이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 말했다.
그러나
록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것이 속 편하고,
내 잇속을 챙기는 것이
칼에 백번 찔리고 벼락을 맞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몸소 보여 준다.
장황하게 설명했던 그 기원의 역사가 얼마나 부질없고 그 기원 속의 혁명적 사고가 결코 내 밥그릇을 챙겨주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에서 중국 문화혁명의 향기가 강하게 풍겨 나온다.
곁가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 배역 이름이 입에 착착 붙지 않고,
그 배우 얼굴도 낯설다면
영화는 말 그대로 카오스가 된다.
게다가 전화로 누구누구야 네가 그걸 해라라고 지시하게 되면
누구를 부르고 누구에게 지시하는 건지,
그 누구가 이 사람 편인지, 저 사람 편인지 알 수가 없다.
외국영화의 어려움이 단순히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영화는 <흑사회 2>로 이어진다.
전편보다 욕심, 명예욕 등 등장인물들 개인에 더 집중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