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어웨이(2021)

인종차별일까 아닐까 혹은 그게 상관있나?

by 비호

영화 줄거리는 없고, 스포일러는 있습니다.



재즈

데이비드(대니엘 김)는 재즈를 즐겨 듣는다.

마이클 (셰미어 앤더슨)은 이 요상한 음악이 낯설어 자꾸만 웃음이 난다.

데이비드는

재즈음악에서 한 명이 꼭 튀는 연주를 하는데

그 부분이 전형적이지 않아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혼란해 보이지만 그 음악 속에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조화롭지 못한 듯 하지만 결국은 모든 연주자들이 균형을 찾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재즈라는 음악...

여러 가지 서브 장르들로 나뉘긴 하지만,

재즈는 흑인이 원조다.

유명 흑인 재즈 연주가의 이름을 나열하던 데이비드에게

마이클은 운동선수 이름 아니냐고 농담을 던진다.

데이비드는 동양인, 마이클은 흑인이다.

흑인 태생 음악을 동양인이

흑인에게 설명해주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 영화의 본심을 읽어 낼 수 있을까?



사람들

영화는 오로지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한다.

(어쩌면 제작비 때문일수도 있지만, 감독의 의도라 생각하고자 한다.)


하늘을 가르며 힘차게 우주로 향하는 발사체의 장관 같은 건 없다.

오로지 그 발사체 안에서 긴장하고,

토할 것 같아 힘겹게 앉아 있는 인물들을

흔들리는 카메라로만 보여줄 뿐이다.

카운트다운의 순간,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중력을 뚫고 추진체가 분리되는 순간들에도,

카메라는 등장인물 3명의 모습만으로 구성된다.

아니다.

그 등장인물들이 있는 MTS-42라는 우주선

그 내부만 집중한다.


화성으로 가는 궤도에 진입한 MTS-42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해 지구와 교신할 때도,

지구의 저명한 문제 해결팀이 뭐라고 하는지

우리들은 알 수 없다.

오로지 그 교신내용을 듣는 커맨더 (토니 콜렛)만이 알 수 있다.


화성에 인류가 정착해 살아갈 수 있을까를 탐사하는 거대 프로젝트치곤

답답하고 의아한 구석이 많다는 이야기상의 커다란 허점이 있음에도

영화는 오로지 이 등장인물들에게만 집중하는 방법을 택한다.



소우주

이들이 있는

(영화적 설정으로는 화성에 도착하기 전 약 2년간 있을)

곳은 MTS-42라는

외계 생물체가 침입하거나,

모선을 통제하는 AI이가 반란을 꿈꾸거나,

이상한 바이러스 혹은 정신병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곳이다.

이 우주선 앞은 등장인물들이 먹고, 씻고, 자고, 연구 준비하며 또한 이 거대한 모선을 조종하는 곳이다.

우주선 가운데에는 태양열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드는 거대한 전지판이 날개처럼 달려있다.

우주선 끝자락에는 이 우주선이 추진체로 사용하고 남은 에너지가 달려 있다. (영화에서는 킹피셔라 부른다)

기존 SF영화에 나오는 모함과 비슷한 듯 다른 구조를 지닌 이 MTS-42는

중앙에 있는 태양전지판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이 기거하는 곳과 킹피셔가 공전하면서 이동한다.

(물리학은 물리도록 공부해본 적 없으므로 잘 모르지만, 아마도 우주선 내에 인공 중력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이렇게 큰 원운동을 하면서 화성으로 이동하는 듯하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기타 행성이 공전하듯,

MTS-42는 그 자체로 태양계의 모습과 흡사하다.


등장인물들이 기거하는 곳이

미래 거주지 화성을 뜻한다면,

킹피셔는 서서히 메말라가는 지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즉, 등장인물들은 MTS-42라는 소우주 속에

기거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거창하다면

우리들의 대리인이라 볼 수 있겠다.


등장인물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백인 커맨더(마리나)는 연륜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전형적인 선장이다.

조(안나 켄드릭)는 예일대 졸업 수재이며, 의학을 전공했고 가장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여성이다.

데이비드는 하버드대 졸업 수재이며, 생물학을 전공했고 자신의 오랜 연구를 화성에서 실현하고픈 남자다.

이렇게 3명은 화성으로 가는 MTS-42에 몸을 실었다.

마리나는 하이페리온이라는 MTS-42 소유 회사의 직원으로

프로젝트 (화성 개척에 대한 연구) 수행을 위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조와 데이비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 프로젝트에 참여해

꿈과 열정을 화성에서 실현하려는 실무자라 볼 수 있다.




무임승차

이 완벽하게 짜 맞춰진 공동체는

마이클이라는 대학생원생의 무임승차 (Stowaway)로

균열이 생긴다.


이 무임승차자는

상대적으로

명문대 출신 수재,

노하우 많은 선장에 비해,

어설프고 별 도움 안 되는 신분이다.


조와 데이비드가 마이클에게 뭐라도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얘기를 나눌 때,

데이비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어? 그냥 단순 입력 작업이나 시키자고 말하고,

조는

나중에 우리 논문에 마이클 이름도 넣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는다.

뭐라고 밥 값하라며 일 시켜줬더니,

나중에 집 내놓으라 하는 것 아니냐는 톤이다.


상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화상 자국을 볼 때,

줄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고 고문관 모습을 보일 때,

마이클이

기본적으로 수재이고, 육체적으로도 매우 뛰어나야만 하는

본 프로젝트에 실무자로 뽑힐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영화는 자격 없는 자가

거대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 집단에 왔음을 은연중 드러낸다.

본의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완벽에 가까웠던 소우주, 우리 사회에

무단으로 들어와,

거저 얻어먹고,

혼자만 낙천적이며,

뒤치다꺼리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한 것은 할 수 없는

그런 캐릭터가 된다.

본인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 자책하고 미안해 하지만,

본인이 결단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도 없다.

(물론 당연히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결단은 어렵다. 그러나 조의 제법 비장한 인류애, 종래에 그녀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과 대비돼 마이클의 이러한 망설임은 그를 더욱 겁쟁이처럼 보이게 한다.)


모든 인물들이 선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문제의 시발점은 마이클이 만들었으므로,

그는 SF영화 전형의 침입자, 숙주, 바이러스, 외계인 등의

부정적 이미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캐릭터일 뿐이다.

실제로 마이클은 제거돼야 하는 캐릭터,

즉 자신의 운명은 다른 인물들 손에 달려 있는 그런 캐릭터다.



차별?

영화의 정치 사회적 관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영화가 흑인에 대한 차별적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떠나,

왜 하필 어렸을 때부터 착했던 백인 여주인공의 희생일 수밖에 없느냐를 떠나,

너 때문이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계산적 행위는 왜 동양인에게서 나오냐는 부당함을 떠나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을 만큼,

영화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재즈와 같이

누군가 튀고, 부 조화스럽지만,

그 안에 알게 모르게 리듬이라는 규칙이 있고,

결국엔 모든 연주자가 균형을 찾게 되는 사회.


그런 사회처럼

영화는 정확하게 인종을 배분하고,

그들을 소우주에 넣고

부조화를 조화와 균형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지만,

튀는 사람은 흑인이기도 하고 동양인이기도 하며,

균형을 찾기 위해 두 명의 백인 중 한 명이 희생돼

인종의 수를 맞추는 방식을 택한다.

여러 인종이 나오는 영화는 이런 태생적 한계,

혹은 의도적 분석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감독은 브라질 출신 음악가이며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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