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되어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
꽃 없는 양치식물.
기다란 줄기에 잎이 달려 있고 홀씨로 스스로 세대를 이어감.
상징적 의미로 새로운 삶, 새로운 출발 등을 뜻함.
노매드는 유목민을 뜻한다. NO Mad는 아니지만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관계로 일반적인 사회 기준으로 보면 미친 거 아니냐는 말 듣기 십상이다. 한때 21세기 새로운 인간형이라며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디지털 기기들로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소통한다 해서 그렇게 불렸다. 그럼에도 그 유목민조차도 사실 따져보면, SNS에 자신의 집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디지털 집으로 오게 하고, 좋아하게 만드는 걸 보면 유목민이라는 말이 무색하긴 하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주인공 Fern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유목 생활을 다룬다.
석면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자 그 원료를 만드는 광산이 문을 닫게 되고,
그 광산이 유일한 경제적 기반이던 도시 (이름도 거창한 Empire)는 사라져 버린다.
남편까지 세상을 떠나고,
Fern은 홀로 떠돌아다니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만난다.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
Fern은 홈이 없는 것이 아니라 House가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새삼 Home과 House가 동의어로 당연시되는 현재를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Fern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래서 그와 함께 있었던 Empire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Dave (데이빗 스트라탄)는 그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고,
그녀에게 먼저 춤을 청하고,
그녀가 길을 잃었을 때 휘파람을 불어 나 여기 있고 당신 거기 있음을 알려 주고,
그녀를 돕겠다 다가서다
Fern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어렸을 때 아빠가 줬던
꽃무늬 접시를 깨뜨리고 만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공기가 돌 안에 갇혀 있으므로
그 돌은 작은 외력에 쉽게 바스러지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Fern의 삶에 균열을 만들던 그는,
급기야 유목민의 삶을 청산하고 아들 내외의 집에 정착한다.
정착한 Dave 집에 초대받은 Fern은 그에게서 여기서 함께 하자고, 나는 당신이 좋다는 고백을 받는다.
그 후,
Fern은 영화의 처음과 같이,
지금은 사라진 Empire로 다시 돌아와,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옛 물건들을 모두 필요 없다는 듯 처분하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지냈던 지금은 폐가가 된 그 집, 그리고 넓게 트인 그 집의 뒷마당으로 나간다.
그리고 뒷마당을 지나
아무것도 없는 그 넓디넓은 사막으로 걸어간다.
과연 그녀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자생하며 살아갈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그렇게 남편과의 기억이 만들어낸 그 구멍을 다른 무언가로 메우기 시작할 것 같다.
이는 Fern이 동생 내외의 집을 방문했을 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른다.
동생이 Fern의 삶을 초기 미국 정착민들의 삶과 같이 새로운 것을 개척해 나가는 것 같아 좋다고 말하면서도, 언니가 그렇게 떠났을 때 자신의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유목민의 삶에 대한 예찬이나 동경 혹은 생경함을 얘기한다기보다는,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
구멍이 만들어낸 외로움을 무언가로 메운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이 반드시 어떤 대체물 (주로 어떤 사람, 혹은 안정적 기반 아마도 집)이지는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기억하는 시로 메울 수 있고,
고백하는 기억으로 메울 수 있으며,
담배 한 개비로도 메울 수 있다.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낄 바에야
아마 홀로 외로움에
몸을 웅크리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제작의 비하인드를 보니, Fern과 Dave 이외의 배역은 대부분 실제 유목민들이 실제 자신의 이름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놀랍지만, 반대로 이 두 명의 인위적 캐릭터들이 영화의 큰 뼈대가 되어 카라반이나 밴처럼 움직이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의 뼈대라는 점이 흥미롭다.
조금만 뒤로 가고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조용하고
또 조용해
돌을 만지고, 그 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늘을 올려 보며 노을을 감상하고 별을 노래할 수 있음을 말하는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Fern이 일하는 아마존 물류센터 내부 장면이었다.
매우 인위적으로 생긴 물류센터에서 기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인간적인 얘기를 나눈다는 설정 (출신지를 문신으로 새기고, 그 문신의 의미를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든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제철 생선마냥, 그 잠깐을 보내고 어딘가로 사람들은 제 갈길로 떠난다.
어두운 밤 모닥불에 모여 앉아 별을 노래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며 일시적일지라도 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