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가현에서 엄마와 브런치.

by 남자승무원 정킴


외국이다. 엄마의 평가가 시작되었다.

“이건 여기 돈으로 얼만지, 그럼 한국 돈으로 얼만지. 이건 너무 짜고 저건 너무 느끼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걸 먹느냐” 등등. 혹독한 평가가 여행 내내 이어진다.

이어지는 신랄한 평가가 툭 끊기는 때가 있다. 브런치를 먹을 때다. 이 시간만큼은 눈앞의 초라한 풀때기가 얼만지 물어보지 않는다. 이것이 돈값하는지 계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와의 브런치 시간은 중요하다.


엄마와 일본의 소도시 여행이 결정되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 “후기 100개 이상의 4점대가 넘는 브런치 집은 어디에 있는가..!”였다. 역 근처에는 다행히 높은 별점과 괜찮은 평들이 적혀있는 브런치 집이 하나 있었다. 든든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엄마와 함께 기대했던 그곳을 방문했다.




카페를 들어서니 부드러운 우드톤의 내부가 차분하고 아늑했다. 적당히 어두운 통로를 지나 끝으로 향하니, 주황색의 따뜻한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려앉은 테이블들이 있다. “아, 이거지, 이래서 일본 소도시로 오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나는 공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현지인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나 오픈시간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한 외지인들 밖에 없겠지. 아침부터 좋은 장소를 찾아 한시라도 많은 걸 누리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자 사장님은 바빠 보였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가게는 열었다만, 도대체 왜 이렇게 빨리 왔느냐는 느낌이기도 했다. 웃지 않고 눈에 힘을 빡! 주며 우리가 하는 주문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는 얼굴에서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뉘앙스가 오히려 더욱 편안했다. 모든 걸 숨기고 마냥 웃고 있는 얼굴보다는 적당히 힘들 때 웃지 않는 얼굴이 더욱 편안한 편이다.


메뉴를 주문하고선 내부를 다시 둘러본다. 내가 아까 본 게 맞다면, 이 카페 안에는 미용실이 있었다. “아, 맞는구나”. 어렴풋이 보았던 익숙한 미용실 표시등은 미용실을 위한 것이 맞았다. 성인은 3900엔, 학생은 3000엔. 미용실 표시등이 돌아가는, 한쪽에서는 머리를 자르고, 한쪽에서는 커피를 내리는 그림이 떠올랐다. 와중에도 이게 뭐가 그리 웃기냐는 듯 차분한 표정을 하고서 머리를 자르고 있을 현지인들을 생각하며 잠시 피식 웃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미용실은 오픈하지 않았지만, 미용실을 운영하는 낮에도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문했던 메뉴가 나온다. 내가 주문한 건 햄과 치즈, 계란이 올려진 토스트가 있는 브런치 세트. 엄마가 주문한 건 단호박 수프와 부드러운 식빵, 그리고 신선하고 아기자기한 채소가 있는 브런치세트였다. 어지간히 먹다 느끼하다 싶으면 간간히 사이드에 올려진 당근라페와 시큼하게 절여진 채소들을 함께 먹었다. 토스트를 크게 잘라 함께 나온 따뜻한 커피를 곁들여 먹으면, 아주 근사한 식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신했다.




엄마와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해전, 대만을 여행했다. 그때 여행이 끝나갈 즘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여행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

엄마는 조금 고민하더니, “음.. 아침밥 안 해도 되는 거?”라고 대답했다.

조금 놀라웠다. 엄마에게 아침밥이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하니까 하는 거 아니었나? 그냥 내가 학교 가듯 하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그 일이 실은, 안 해도 되어서 너무 좋다는 것이다


브런치 식사란 보통,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늦은 아침을 말한다. 엄마에게는 평생, 늦은 아침이란 없었다. 주 7일 출근. 일곱 시 반이면 서둘러 출근해야 했고, 열 시 전에 집에 들어오면 빠른 퇴근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열두 시에 자면서. 브런치란 다른 나라 말이었다. 엄마에게 아침이란 ‘빨리빨리’ 그리고 ‘뚝딱뚝딱’이었을 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걸 해낼 수 없을 때였으니까.

그때의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긋지긋했을까. 벗어나고 싶었을까. 아니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살았던 걸까. 아니면 언젠가 이렇게 외국에서 아들과 브런치를 먹을 상상을 하면서 잠시 웃기는 했었을까?


이토록 느린 아침을 어색해하면서도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 조금 많은 생각이 든다.


괜스레 나는 “어우, 근데 이 집은 좀 달다. 엄마는 이렇게 단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엄마는. “왜, 맛만 있구먼.” 하면서 여유롭게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얼마 전 엄마는 우리 가족의 신년 운세를 보러 갔다. 아빠의 건강, 형의 이사, 나의 직장 등등을 물어보러. 그리고 그곳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원래 당신은 온실 속 화초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제 가족 걱정하지 말고, 본인을 좀 생각하며 살라고.”


온실 밖 화초는 분명,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을 테다.

온실이 아님을 감내해야 했을 테고, 화초이기를 포기해야 했을 테다.


지금. 엄마의 브런치 시간이,

그녀에게 온실이었으면 좋겠다.


“김여사 님! 온실 속 화초처럼 살게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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