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없어도 비행은 한다 – 내려놓는 연습

무거운 걱정 속에서 가벼운 삶을 찾는 법

by 남자승무원 정킴

그날도 카페를 갈 예정이었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스케줄이었으니까.

“퇴근까지 공항 안에 있는 카페에서 할거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노트북, 충전기 등 짐을 챙겨서 공항에 도착했다.



카페에 도착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노트북을 켜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00 씨~ 지금 로마 가셔야 해요. 바로 가세요.”

“네? 네….” 바로 게이트로 달려갔다. 그렇게 나는 스케줄에 불렸다. 무려 로마를.



“아 근데 짐…? 짐!” 생각해 보니 짐을 안 쌌다. 공항 대기에서 비행에 불릴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짐을 챙기지 않았다. “캐리어에 기본적인 건 있으니까. 짐 챙겨봤자 풀기 귀찮아. 어디 불려 가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진짜 속옷 양말 빼곤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겨울이라 평소에는 짐이 세 개나 되는데, 지금 내 옆에 있는 한 개의 캐리어에는 들어있는 것이 없다. 너무 비어 있어서 이동 중에 휙휙 날아갈 정도였다. 그 안에는 쓸모없는 노트북과 마우스가 있었다.



하여튼 간에 13시간짜리 비행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누웠다. 다행히 1박 체류라 바깥에 나갈 일은 없었지만, 잠옷도 없어서 거의 나체로 방에 있었다. 고개를 돌려 텅 빈 캐리어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짐이 없어도 비행은 한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이 짊어졌던 걸까?

평소에 짐을 싸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모르니까 양말도 하나 더 챙기자. 어떤 옷이 마음에 들지 모르니까 이것도 챙기자. 갑자기 날씨가 추워질 수도 있으니까, 겉옷을 챙기자. 라면도 챙기자.” 그러다 보면 내 캐리어는 늘 터지기 직전까지 꽉꽉 채워졌다.



3년 전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도 똑같았다. 몸집만 한 배낭을 두 개나 매고, 유럽 전역을 다녔다. 나중에 보니, 배낭에 넣었던 물건 중 반은 여행 중 쓸 일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여행을 했다 보니, 배낭이 힘들게 느껴지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물며 기차 시간이나 버스 시간이 촉박해 그 큰 배낭을 메고 달릴 때면 과거의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냥 다 버리고 작은 가방 하나만 메고 다니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말을 듣던 친구는 말했다. “그래~ 그거 다니 걱정의 무게야. 하등 쓸모도 없는 삶의 짐이라고.” 그 말이 얼마나 잊히지 않던지.



그동안 나는 짐을 싸면 얼마나 많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했을까. 설레는 여행을 앞두고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안돼! 이걸 챙기자. 아냐 챙길 필요 없나? 내가 너무 걱정한 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여행을 즐겁게 하면 될 것을, 와중에도 나는 참 자신을 무겁게 만들었다.



오늘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지어진 필요 없는 짐들이 없는지.

그리고 나를 무겁게 만드는 짐들을 내려놓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걸음으로.

삶도, 여행도 가벼워야 즐기며 더 멀리 갈 수 있으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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