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 내로 유니폼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으시오. 5초 내로...(못 찾으셨음 글 읽고 오세요)
버스가 공항에 도착한다. 가방에서 이름표와 견장, 윙을 꺼냈다. 비행이 시작되는 공항부터는 승무원의 상징들을 유니폼에 부착해야하기 때문이다.
견장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집을 나서기 전 견장 두 개를 비행 가방에 분명히 넣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니폼 바지를 뒤져보지만 역시나 없다.
"자기야, 집에 견장 떨어져 있어?" 아내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현관에 하나 떨어져 있네. 가져다줄까?" 급하게 나오면서 주머니에서 떨어뜨렸나 보다. 아내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냥 갈게"
견장 하나로 어떻게 비행을 가지? 남은 견장을 손에 들고 고민에 빠졌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카운터로 갔다. 운송 직원이 있다. "혹시, 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칼은 없고 가위는 있단다.
하나 남은 견장을 반으로 잘랐다.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어깨에 붙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어색하지만, 봐줄 만하다.
게이트로 가서 동료 승무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비행 브리핑을 하는 동안 내 어깨 견장의 특이점을 발견한 승무원은 없다. '이대로 비행을 가도 되겠군'
문제는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견장이 잘 붙어 있냐는 거다. 비행 중 수시로 화장실 거울을 보며 견장 상태를 확인한다. 접착력이 좋은지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견장은 그 자리를 고수해 주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견장을 확인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팀원이 한마디 한다. "견장 하나가 없어요!" 이런, 어디서 떨어졌지? 비행기에선 잘도 붙어 있더니만..... 낭패다. 비록 반쪽 짜리 견장이지만 한국 돌아가는 비행 편에서도 이걸 써야 하는데..."그래도 신에게는 1/2의 견장이 남아 있습니다"하면서 이미 1/2로 나눠진 견장을 또 잘라 (1/4이 된다) 쓸 수는 없다.
방에 돌아와 유니폼을 벗으며 고민에 빠졌다. 문득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방금 벗은 양말이 눈에 띈다. '저거라면?' 호텔 직원에게 가위를 빌려 양말 목 부위를 자르고 그 위에 양면테이프로 나의 직급을 붙여 넣었다.
내 직급 (SP - SENIOR PURSER 선임 사무장)은 두 줄 반인데 반 줄이 너무 얇아 양면테이프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냥 한 직급 셀프 진급 (SP/SENIOR PURSER -> CP/CHIEF PURSER) 해버릴까?
돌아오는 비행편 비행을 위해 호텔 체크아웃을 한다. 카운터 옆에 승무원들이 모여있다. "다들 잘 쉬셨어요?" 인사를 건네는 데 일곱 명 승무원들의 눈길이 모두 내 어깨에 올라가 있다. "견장, 어디서 구하셨어요?" 한 승무원이 묻는다. 수제 견장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니 다들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비행 전에 내가 웃겨 주는 겁니다". 유쾌한 분위기로 비행을 시작했다.
그래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비행 중 혹시나 견장이 떨어질까, 두 줄 반이 세 줄처럼 보이까 자꾸 화장실 거울을 본다. 승무원 의자 (점프씻)에 앉을 때마다 짧아진 검은 양말 때문에 하얗게 드러나는 내 발목이 오늘따라 더 하얗게 느껴졌다.
수제 견장 만들기 재료 (검은색 양말, 양면 테이프, 가위)....견장 색깔이 검은색과 흰색 경우에만 가능하다.
민간인은 잘 모르는 승무원 직급 체계 : 항공사마다 다르나 우리 회사는 아래와 같다.
* 남승무원 : 한 줄은 남승무원 (CREW/사원), 한 줄 반은 부사무장 (AP - ASSISTANT PURSER/대리), 두줄은 사무장 (PS - PURSER/과장), 두줄 반은 선임 사무장 (SP - SENIOR PURSER/차장), 세 줄은 CP (CP - CHIEF PURSER/부장)
* 여승무원 : 남승무원과 동일하며 AP 이상부터 청자색 재킷을 입는다.
* 사무장 (PS - PURSER) 직급부터 팀 관리자 TP (TEAM PURSER), TA (TEAM ASSISTANT PURSER) 직책을 발령받고 비행 중에 해당 편 사무장으로 근무 가능하다.
* 관례적으로 AP 직급부터 '사무장'이라는 호칭을 불러준다. 즉, CP, SP, PS, AP 상관없이 모두 다 '사무장'이다. (일반직으로 말하면 부장하고 대리랑 호칭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