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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Jan 04. 2021

모두가 유산슬이 될 순 없잖아요

1인 브랜드라는 듣기 좋은 함정, 각자생존법의 세상


시대마다 성공의 법칙, 혹은 취업 시장에서 자주 쓰이는 자기 계발서 용어들이 있다. ‘라떼에는’ ‘자기 PR 시대’라는 말을 자주 썼더랬다. 겸양의 자세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미덕이라 배워온 유교의 나라 국민이건만, 계속 겸손하게 자기를 낮춰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셀프 자랑을 잘해야 자기 가치가 빛난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젠 이 말 역시 너무 낡았고, 2020년의 사람들은 SNS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데에 충분히 능숙하다. 특히 취업 준비생에게 SNS는 나를 회사에 마케팅하는 '광고판'의 역할을 한다. 


이런걸 인스타에 올리면 안된다.......


취업 특강에서도 '인스타그램은 자기 홍보의 장'이라 가르친다. 미래의 직장, 클라이언트에게 나를 어떻게 보여줄지 계산해 이미지를 업데이트 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별도의 콘텐츠만을 고심할 것이 아니라 모바일로 첫눈에 보일 9개의 이미지창이 컬러 통일성을 갖도록 운영해야 한다고 컬러팔레트'팁'을 전수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으로 '인플루언서'가 되고 포토그래퍼로 데뷔하고, 개인 작업물로 기업에서 '제안'을 받기도 하니 인스타그램은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자 개인 홍보 채널이자 전시장이고 포트폴리오이다.     


물건 팔 듯이 나를 잘 팔아야 한다

이렇듯 누구나 개인 채널을 쉽게 운영할 수 있는 시대에는 '자기 PR'이라는 말조차도 새삼스럽다. 대신 요즘은 취업 시장에서 '1인 브랜드'혹은 '자기 브랜딩',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업에게 선택받으려면 차별성이 있어야 하고, 나를 브랜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물건을 팔 때에만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 역시 브랜드가 되어야 '선택' 받을 수 있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기계발서들에서 강조하는 긴긴 용례들을 한 단어로 다듬어 '퍼스널 브랜딩'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 '1인 브랜드'가 '취뽀'(취업에 성공)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자기 계발에 손을 놓는다면 그때부터 도태된다. 


직장인이라면 직장이 나를 버렸을 때에도 혼자 생존할 수 있게, 개인이 매력적인 '1인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즘 ‘퍼스널 브랜딩’ 서적들의 주장이다. 그것이 유튜브가 됐든 인스타그램이 됐든 나를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포장지를 구비하고 직장 밖에 '멀티 페르소나'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이 어렵다면 <놀면 뭐하니> 유재석의 부캐들을 떠올리면 된다. ‘유고스타’가 잘 안되더라도, ‘유산슬’ ‘지미유’등이 있다면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더 크라운' 대처 연기 솔직히 도랏.....


그래, 다 좋은 말이다. 전 국민이 트레드밀 위에 올라가 쉼 없이 뛰기를 자처하는, 향상심이 넘치는 한국에서 이처럼 개인이 생존을 위해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데,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나.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4>에는 대처 총리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조를 억압하는 강력한 노동 정책으로 실업률이 2배 높아진 것을 우려하는 여왕에게 총리는 국민을 더 강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기 이익을 꾀하는 사람이야 말로 국가에 불을 지피는 원동력”이라고 말이다. 대처의 아버지 역시 사업에 실패했지만 당시에는 의지할 정부라곤 없었고 오직 책임감만으로 혼자 일어났다며 자꾸 정부에 기대려 하는 약한 국민을 비판하며 ‘라떼는’에서 더 나아가 ‘우리 아버지때에는’을 시전한다. “모두가 총리의 아버님처럼 비범하진 않죠”라는 여왕에게 총리는 덧붙인다. “그게 저와 여왕님의 차이점이죠. 전 모두에게 그런 점이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다 잘 할 순 없는 거잖아

하지만 정말 모든 사람에게 그런 강인함이 내재되어 있을까. 모두가 노력만 하면 1인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 자기 계발을 하고, 나만 할 수 있는 특성을 살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인스타그램에 작업물을 올려 외주 작업 요청을 받는 그런 특수한 능력과 의지력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까. 설령 그렇더라도 나는 '살아남고 싶으면 1인 브랜드가 돼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데에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캐........트로트.............나만 지겹나요


일단 '1인 브랜드'는 왜 되어야 할까. 살아남기 위해서다. 더 이상 평생 직장은 없고, 안전성이 보장된 직업 또한 없다. 긱 이코노미 시대가 되면서 기업 내에서 하청이 '가능한' 일들은 정규직을 채용하기 보다는 외주 작업자에게 의뢰하고 설령 채용이 가능한 상황이더라도 정규직보다는 계약직 채용을 선호한다. 말이 좋아서 프리랜서이고, 인디팬던트 워커이지 실은 조금도 자유롭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은 별건 계약직 업무자에 불과하다. 디지털 노마드, 유연성 높은 뉴노멀 재택근무? 실은 언제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또한, 1인 브랜드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백종원이 빠질 수 있나? 유튜브 <도티TV>에 도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진행자로 나오면 사람들이 그 채널을 볼까? 직원이 볼트이자 너트가 되어 협업하는 조직은 누구 하나가 빠져도 문제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갑자기 모 차장님이 그만뒀는데 회사가 갑자기 안 굴러간다? 그런 일은 제대로 된 기업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든 부품 교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조직과는 달리 내가 주체가 된 '1인 브랜드'에서는 누구도 나를 해고하지 못한다. 


20대에 창업해 자수성가한 모 대표는 자기 회사보다 본인이 유명하다. 때문에 회사의 얼굴마담이자 모델도 대표다. 내 후배는 그 직장에 출근한 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금요일 오후마다 대표의 (자기 자랑으로 점철된) 역량 강화 강의를 들어야 하는 그 직장은 해고도, 퇴사도 쉽다고 한다. 왜냐하면 대표 외에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 인력이라고 대표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이여 브랜드가 되어라!'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1인 브랜드가 될 수 있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노동 강도에 적합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개인의 능력치'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대처 총리의 주장처럼 누구나 비범한 개인이 되어 나를 성공시키면 되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에 기댈 필요도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고, 은퇴 후 미래를 걱정하며 나를 다그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안정적인 사회가 아닌가?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게 ‘생존법’이 되어버린 분위기가 싫다고, 나는 개인 홍보에 자신이 없다고 하자 1인 출판사의 대표이자 편집자이자 마케터인(혼자 다 해야 한다는 소리다) 친구가 손뼉을 치며 공감했다. “회사에서 분업을 해서, 마케팅은 마케터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회계는 회계팀한테 맡기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게 개인이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로 번지면 나 혼자서 모든 걸 잘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가 돼. 근데 모두가 다 잘할 순 없는 거잖아.” 비범한 능력자는 비범하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만 강조되면, 브랜드가 되지 못한 범인들이 받는 차별은 당연한 것이 된다. 1인 브랜드가 된 특별하고 유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존에서부터 차별을 받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거라고? 아니꼬우면 유명해지라고? 네. 


**이 글은 한겨레 주말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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