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그 시를 감싸고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시인의 사정, 시인이 쓴 다른 산문을 빌려와 함께 읽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백은선 시인이 그걸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백은선의 세 번째 시집 <도움받는 기분>을 읽기 전 우연찮게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먼저 읽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자기 시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썼다. ‘나는 알레고리로 가득 찬 내 시가 징그럽고 무서워. 부릅뜬 눈들이 싫다.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내 시집 <가능세계>가 피해자의 거대한 진술서 같아서 진절머리나게 싫을 때가 있다.’(67쪽) 그가 세 번째 시집은 통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통독하지 못했다.
<도움받는 기분>(30쪽)을 읽다가는 한 10대 여성의 지옥도 속에 같이 사는 것 같아서 잠시 쉬어야 했고 <연결 지점>(34쪽)에서는 ‘꽃도 열매도 없이 오래 살자/ 누구의 꽃도 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의 비장함에 사로잡혀 입으로 되뇌었다. 그래, 오래 살자. 살아남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다정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양경언 평론가는 해설에서 “첫 시집 <가능세계>에서 ‘발악의 현장성’(조연정 해설, <소진된 우리>)을 개시했던 백은선의 시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서는 후일담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의 결기를 조금 더 명료하게 드러낸다”고 정의한다. 나는 발악보다는 비명을 여러 번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만히 있음으로 반을 얻는 사람은 싫어/ 허점투성이 요동치는 파도 속 비명의 숲이 더 좋아/ 가장 중요한 질문은 계속할 수 있을까와 괜찮냐는 것’(<졸업>, 148쪽)에 언급되듯이 침묵보다는 촉수를 뻗어 질문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이 시집의 비명이다.
그리고 특이한 4칸 7줄 표로 그려진 형식의 시 <픽션다이어리>(166쪽)의 마지막 빈칸은 비어 있다. 그 옆에 시인은 이렇게 쓴다. ‘마지막 칸은 당신이 직접 채워주세요. 당신의 시작도 끝도 반복도 절망도 좋아요.’ 빈칸에 나는 힘주어 쓴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킬게, 함께 있자.
문장을 숨기기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많은 말속에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그냥 두는 거야 제자리에 그러면 풍경이 되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거야 우리 듣자 같이 이 노래를 듣고 또 듣자 손을 잡고 한밤의 거리를 쏘다니자 차에서 식탁에서 길에서 어디서든 듣자 들려오지 않을 때는 직접 부르자 소리 지르자 다 끝날 것처럼 소리치자(97~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