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잡지사의 디지털 부서의 인턴으로 일했을 때 일이다. 인턴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력서에도 안 쓸 짧은 경력이다. 회사의 디지털 부서에서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친 후 정규직 입사 가능 여부를 타진해보자고 팀장은 말했다.(이후 거친 몇 개의 직장에서 항상 들었던 말이다.) 잡지기자가 꿈이었던 나는 유명 패션 잡지의 커버가 대문짝만하게 내 걸린 건물로 매일 출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디지털 부서의 업무는 사실 잡지를 만들고 기사를 쓰는 일도 아니었다. 잡지에 있는 글들을 디지털로 옮기는 단순 업무와 기업 외주 광고 기사를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사원증도 아닌 보안 출입증을 주었는데, 그게 뿌듯해서 깜빡한 척 하고 버스에서도 목에 걸고 퇴근한 적도 있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 잡지사들에는 기업 홍보를 외주로 맡는 ‘돈 버는’ 부서들이 있다. 기업 사보를 만드는 부서의 디지털 업무가 내 일이었다. a백화점의 웹진과 블로그를 대행하는 우리 팀에는 블로그를 운영해줄 통통 튀는 젊고 더불어 저렴한 인력이 필요했고 팀에는 나 외에도 세 명의 인턴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은 그 부서에서 인턴을 1년 6개월째 하고 있다고 했다. '인턴을 왜 1년 넘게 하는 거지?' 3개월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준다고 했는데...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 내가 가엾어 보였던지 인턴 언니들은 내게 회사 생활 노하우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말이 인턴이지, 그냥 알바라고 생각해야 해. 나도 단순 알바라고 생각하고 퇴근 후엔 잡코리아 뒤져."
당시 나는 알바는 꿈과 별개로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었고, 잡지사 업무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꿈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은 의아하게 다가왔다. 인턴 언니들은 나와 업무 내용이 달랐기에 나는 그들과는 다른 케이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 나는 같은 팀의 선배 기자들과 점심을 먹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턴 언니들이 나를 데리러 와서 말했다. "너는 저 사람들이랑 밥 못 먹어."
정직원과 인턴의 차별이 카스트제도처럼 명확했다. 어차피 오래 안 다닐 인턴, 아르바이트생에게 정직원들은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친해져봤자 금세 그만둘 일용직이니까 친해지는 것조차 번거로운 것이었다. 인턴들은 따로 모여 도시락을 먹었는데, 인턴끼리 친해지면 정직원 선배들은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인턴끼리 함께 커피 타임을 가지다 팀장의 눈에 띄면 주의를 받았다. 직장은 대학 동아리가 아니니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꾸중이었다. 이 회사에 빠삭한 1년 6개월 인턴 언니가 그들이 왜 우리의 친분을 방해하는지 알려줬다. "우리가 몰려다니면서 자기들 욕할까봐 그러겠지. 지들 보기에도 정상적인 구조는 아니니까."
그들은 직원 커뮤니티에는 끼워주지도 않으면서 인턴끼리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정직원들만 한달에 5만원씩 이용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 카드로 커피 한 잔 사준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인간 심리라는 것이 외부의 적이 있을 수록 더 끈끈해지는 법. 회사와 정직원 선배들에게 서러움을 당할수록 인턴들의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우리는 메신저로 수다를 떨었고, 퇴근 후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a백화점의 블로그 운영이 내 업무였지만 회사에서는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기획안도, 일주일 업로드 계획표도 다 내가 짰지만 회의는 정직원 선배들끼리 참여하고 클라이언트의 수정사항을 나에게 따로 지시했다. 지금은 '송희씨는 회의 안 들어와도 돼'라고 들으면 휘파람 불며 공중돌기라도 할 것 같은데, 그 때에는 내 업무의 회의에서 배제된다는 게 더 없이 서러웠다. 인턴에게 주어지는 업무 외 숙제를 처리하고, 영수증 처리도 안 되는 트렌드 기사 용 물건이나 간식거리를 구매하면서도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나 자신이여, 너는 너무도 순진하였고 멍청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블로그만 주구장창 하는 게 싫어서 점차 회의가 들었고 그때 마침 다른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다.
여기서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만둔다'는 말을 하려 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안 하면 이 블로그 업무는 다른 사람이 나눠서 해야 할 텐데, 다른 인턴 언니들도 업무량이 많은데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입사할 회사에서는 당장 와달라고 하는데 이 회사에 한달 전에는 말을 해야 정식 퇴사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일을 꽤 잘했으니 정규직 제안을 하면 어쩌지. 뭐라고 좋게 거절할까. 나는 이미 두 회사에서 정규직 채용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3개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 가는데도 회사에서는 나의 거취에 대해 일언반구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다. 메일로 팀장에게 '오늘이 인턴십 마지막 날'이라고 정중하고 긴 메일을 정성 들여 썼다. 팀장에게 곧장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후에 회의실에서 보지요."
4시에 나를 회의실로 부른 팀장은 오전에 일찍 말하면 내가 '오늘 업무'에 집중하지 않을 것 같아 오후에 불렀다며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이미 이직할 회사도 정해졌으면서, 내가 먼저 때려칠 생각이었으면서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팀장은 고향을 운운하며 나를 위로했다.
"송희 씨가 나랑 고향도 같고, 목소리도 사촌 여동생이랑 비슷해서 내가 마음이 안 좋네. 더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요."
팀장은 왜 내 목소리가 자기 사촌 여동생과 비슷하다고 했을까. 내 말투에 고향 사투리라도 묻어 있었던 걸까. 울면서도 그 생각을 하며 세련된 말씨에 신경 쓸 걸 그랬다고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자존심 상하게 왜 그들 앞에서 미련을 떨며 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머리를 짓찧고 싶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열심히 일하고 똑같이 약속을 믿고 똑같이 울 것 같다. 내가 없으면 이 일을 누가 하지. 이 일의 과정은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서 나보다 잘할 사람이 없는데. 나 아니면 팀원들이 고생할 텐데. 팀장에게 퇴사한다는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더 정중해 보일지, 주말에 나와서 일한다고 할까 고민했던 내가 창피해서 울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회사를 걱정해도 회사는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원은 한달 전에 퇴사의 뜻을 밝혀야 하지만, 회사는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을.
아마도 직장에 큰 기대를 갖지 않게 된 것은, 성공의 경험보다는 배반당하고 실패한 경험이 쌓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에 있어서는 최대한 냉소적인 척, 주어진 것에만 최선을 다 하고 더 나서지 않아야 뒤통수 맞았을 때 덜 아프다고 사회 초년생의 아픈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인턴, 계약직, 프리랜서 일을 할 때 특히 회사는 나에게 가혹했다. 사람에게 요구는 무진장 하면서, 내가 주저하다 겨우 말을 꺼낸 작은 권리 사항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을 때 사람은 크게 상처받는다. 트위터에 월요일 아침만 되면 지옥이라는 이름의 직장에 끌려나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밈'이 쏟아진다. '빨리 한탕 벌어 이 바닥 뜬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라는 <무한도전>의 박명수 짤이라던가...모두 한 마음이 되어 직장을 지긋지긋해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100만 주면 알뜰하게 아껴 살면서 집에서 누우만 있고 싶다. 인간의 몸은 집순이로 설계되어 있는데, 왜 매일 회사라는 무서운 곳에 끌려 가야 한다는 말인가.
사실 일의 가치가 내게는 사람과의 연결이기도 하다. 일이 없으면 나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질 않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녔고, 대학에서는 아웃사이더여서 친구도 별로 만들지 못했던 터라 지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전부 사회에 나와 사귄 사람들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같은 취향이나 취미를 공유하는 소중한 친구들. 10년, 20년 후에도 이 사람들과 만나고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즐거운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기도해 마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대화가 서로 끝 없이 이어지는 친구들을 나는 모두 직장 생활을 하다가 사귀었다. 상처 받고, 후회하며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면서 회사를 박차고 나올 때마다 적어도 사람이 남았다. 앞서 소개했던 인턴 언니들 중 한 명도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낸다. 역시 누굴(주로 회사) 욕하면서 돈독해지는 관계는 짜릿하다. 돈이 안 될지라도 재미있어 보이면 무작정 달려들고 봤던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친구를 사귀었다.
<월간 잉여>라는 독립잡지에 참여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소중한 사람들이다. 백수로 미래가 불투명해 보따리 싸서 낙향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선배가 갑자기 연락해와 일자리를 소개해준 적도 많다. 내게 일을 줬던 PM(프로젝트 매니저)의 소개로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현 직장 역시 첫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친한 선배의 소개였다. 그러니까 회사에는 크게 기대를 갖지 않아도 되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나를 내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일을 할 때 '남보다 적게 일하려'고 잔머리를 쓴다거나 남의 공을 가로채거나 내 실수를 남에게 덮어씌우는 등의 '양아치'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사람조차 얻을 수 없다. 사실 일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뭘 안다고 여기에 이러쿵 저러쿵 다 안다는 듯이 쓰겠는가. 대단한 직장에서 욕심나는 직위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일에서의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도 없다. 일을 역시 피곤하고 힘들고, 남과 함께 해야 하니까 번거롭고 내 맘 같지 않다.
얼마 전 매호 쓰는 편집장의 말에 '최소한의 생활비가 보장될 때 일을 안 하고 놀면서 사는 삶이 과연 진짜 행복할까 의문이'라고 썼는데, 의문이니까 한번 그렇게 살아보게 누가 나한테 100만원씩 매달 입금 좀 해봐주시면 제가 몸소 입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