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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Jul 05. 2022

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소설집


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 읽으면서 <파친코> 선자가 자꾸 연상됐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일 동포와 조선족, 탈북자의 삶은 자주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이들은 타민족에게 차별당할  아니라 같은 동포에게도 ‘너는 우리와 다르다  그어진다.


<세상에 없는 나의 > ‘ 중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조선족이다. “한국인이냐 묻는 닝에게 나는 “아니죠. 중국이에요. 조선족이라고 답한다. 앞은 국적, 뒤는 자신이 속한 민족이다. 나는 중국인 닝과 사귀고, 한국인 연주와 교류하면서 자신이 연주보다는 닝과  닮았다고 여긴다. 닝은 “  나라 말을  잘해서 좋겠다 하지만 나는  나라 언어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설 안에서 한국 독자들이 피식할 장면이 있다. 인물들은 자주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데, 마라탕을 ‘얼얼할 정도로 매운 쓰촨성 유명  요리라고 설명한다. 지금 쓰촨 사람들보다 마라탕을  자주 먹는  한국인 아니던가. 나는 조선족보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연주에게 “너도  한국스럽다 웃는다. ‘하고많은 중국 요리들 중에서도 유난히 강하고 자극적인 매운맛의 사천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이라는 문장이 뒤잇는다.


한국에서 일하며 조선족이라고 멸시당한 <옥화> 시숙과 <노마드> 박철이의 울분은 매우 직접적이다. <옥화> 등장하는 탈북 여성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조선족 공동체에서 도움을 받지만 정착하지 않고 한국을 갈망해 떠난다. 아니, 이들이 갈망하는 것은 떠남  자체이고  나은 삶이 있을 거라 믿는다. <옥화> ‘ 자기 가족에게 도움만 받고 몰래 떠나버린 탈북자 옥화의 얼굴에 ‘자기에 대한 굳은 믿음 강했던 것을 떠올린다. 금희 작가의 소설은 타자화되고 소외당한 이민자의 삶을 소회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남이 무어라 하든  집을 찾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 중국인도, 조선족도, 탈북자도 아닌 그저 나이고 싶은 의지가 거기 있다. 작가는 중국어도, 한국어도 아닌 조선어로 소설을 쓴다. 된소리를 그대로 받아적은 소설  단어는 오타가 아니라 조선어다. 이것이 금희의 언어일 것이다.


책속에서

<옥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형네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자신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람이 말이야, 그 상황에 들어가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자기는 안 그럴 것 같지? 흐흐. 아니야. 사람은 다 같애.” 시형의 발랄한 웃음 속에서 홍은 자기편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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