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다카세 준코 지음 /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조직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 일이 몰릴까.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업무의 경계가 불투명해서 정확히 구획을 나누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못하거나 일을 안 하려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업무까지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부족한 아이, 월등한 아이가 있어 서로 협동심을 쌓아 사회로 나가는 것은 훈훈하겠지만 그게 회사라면 경우가 다르다. 민폐 직원은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고, 그 결과가 고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불공정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또 이런 질문도 있다. “일을 잘하지만 성격이 나쁜 동료, 일은 못하지만 성격이 정말 좋은 동료. 당신이라면 누구와 일하겠습니까?” 일터에서 밥을 먹고 잡담을 나누고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는, 그 시간의 일들을 ‘작가가 내 회사 생활을 들여다봤나’ 싶게 쓴 것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이다. 식사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 음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니타니는 점심을 대충 컵라면으로 때우고 싶다. 물론 팀장은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지”라며 제멋대로 메뉴를 정하는 사람이다.
아시카와는 입사 6년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업무에 소극적이고 최소한의 일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얌체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 연약한 그녀의 체력과 여린 심경을 상사들이 먼저 헤아려 배려하기 때문. 팀원들이 잔업을 하는 때에도, 아시카와는 약한 체력과 두통을 이유로 정시 퇴근을 한다. 대신 미안하다며 매일 화려한 디저트를 가져와 오후 3시마다 모두에게 나눠준다. 다수의 독자에게 미움을 살 법한 아시카와이지만, 소설은 그렇게 인물을 단순하게 정의 내리고 네 편, 내 편으로 회사 생활을 그리지 않는다. 다 함께 전골을 먹는 회식 자리, 퇴근 후 친근한 동료와 이자카야에서의 맥주 한잔, 지친 오후 3시에 나눠 먹는 타르트….
회사에서 나누는 식사에는 복잡한 눈치 싸움과 말 한마디에 서로를 재보는 욕망, 사내의 알력 관계까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맛있게 재밌다. 너무 맛있는 걸 먹을 때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처럼,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소설 속 특정 메뉴로 비교하자면 퇴근 후 마시는 생맥주의 첫 모금처럼 짜릿하게, 맛있다.
51쪽
자기 일 때문에 하는 야근과 남의 일 때문에 하는 야근은 좀 다르다. 뭐가 다른가 하면, 힘듦의 정도다. 몸이 힘든 게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힘든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역시 몸이 힘든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