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 베넷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이런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피부색이 밝은 유색인 쌍둥이 자매가 있다. 이중 한명이 자신을 백인이라 속이고 새 삶을 살게 된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에게조차 가짜 과거를 지어낸다. 쌍둥이 중 한명은 백인으로, 한명은 흑인으로 살게 된다. 이 소설이 재미가 없을 리가.
1950년대, 인종차별이 심하던 미국 남부에는 피부색이 밝은 유색인들만 사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결혼을 통해 자기보다 더 밝은 피부색의 자식을 낳는 것을 목표로 해왔고 덕분에 아이들은 ‘거의 젖지 않은 모래색’의 밝은 피부로 태어난다. 백인들의 린치로 아버지를 잃은 쌍둥이 자매 스텔라와 데지레 역시 백인만큼 밝은 피부색을 지녔다. 답답한 현실을 도망쳐 자매는 대도시로 떠난다. 거기서 스텔라는 ‘백인만 지원 가능’한 회사에 거짓말로 취직하게 되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데지레는 자기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남자와 결혼하고 딸 주드를 낳는다. 사실 스텔라는 백인 상사와 결혼해 유복한 백인 사모님으로 살게 된다. 한편 데지레는 남편의 폭행을 피해 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데지레와 달리 피부색이 ‘블루블랙’인 주드를 차별한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 데지레와 스텔라는 한쪽이 백인 패싱을 하면서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그들의 딸 주드와 케네디 역시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2세대를 아우르는 소설 <사라진 반쪽>은 인종, 계급,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이 화이트 패싱을 정치적인 장치로 사용했다면 이 소설은 인종을 정체성 중 하나로 소환한다. 주인공들은 어디에서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규정지어진다. 마을에서는 유색인이던 데지레가 남편 샘에게 ‘당신은 저쪽(백인)에 가 있다’고 평가받는 것처럼. 스텔라의 거짓말 역시 정체성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누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소설은 스텔라의 선택조차 쉽게 판결하지 않는다. 뻔하지만,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들이 축적되어 완성되는 것이니까.
책속에서..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청춘이 일으키는 전율이었다. 그것이 오래전 부적 액세서리 가게에서 그녀를 사로잡았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인기가 오면, 선택은 견고해진다. 지금 자신의 모든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동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남은 인생은 그 여파였다.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