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회사에 출근했던 날이 기억난다. 정직원도 아니고, 한 달짜리 인턴 자리였다. 열심히 잘 하면 정직원 전환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선심성 발언을 면접 때 들었는데 그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당연히 내가 일을 잘할 줄 알았다. 아침 일찍 일하고 싶었던 회사의 정문 앞에 서자 심장이 북소리를 내며 뛰었다. 출판사를 대표하는 잡지의 그달 표지가 대형 현수막으로 건물 에 걸려 있었고 직원카드를 내면 할인을 해주던 1층의 카페에서는 은은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다. 그 모든 게 나를 압도하면서도, 잘못된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된 기분이었다. 선배가 지나가듯 하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위축됐다. 한 달짜리 인턴직이었기 때문에 책상 자리도 임시로 주어졌는데, 복도에 가장 가까웠던 비좁은 책상조차도 당시에는 매우 황송하게 느껴졌다.
졸업반 시절에는 서울의 고층빌딩을 볼 때마다 ‘저 많은 빌딩 사이에 내 자리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던지라, 출근할 자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선배들은 불친절했고, 나는 작은 질문 하나 하는 것도 두렵기만 했다. 일은 서툴렀고 모두가 차가웠다. 딱히 나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얼마나 여기 다닐지 모를 후배한테 친절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모두가 피곤에 절어 있었다. 다정함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니까. 나만 빼고 모두가 거기 익숙해져 있는 곳에, 나 홀로 이방인이었다. 그래도 적응을 해야 했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것 또한 사회생활이라고 여겼다. 일은 서툴고, 의자는 삐걱거리고 마음은 서걱대기만 하던 첫 직장.
겨우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지만
특성화고교의 졸업반 창우(유이하)와 우재(양지운)는 선생님으로부터 실습 나갈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M&H 엔지니어링이라는 중소기업에 둘은 현장학습을 나가고, 면접을 본다. 이전에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창우는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보자는 선생님의 제안에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되묻는다. “저를 좋게 봐줄까요.” 내신 성적도 별로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격증도 몇 개 없어 자신감이 없는 창우가 내세울 거라곤 출결 점수가 높다는 것 뿐이다. 창우와 우재는 함께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지만, 총무팀 과장으로부터 “합격”이라는 말을 듣자 어리둥절한 표정부터 짓는다.
똑소리 나게 자기소개를 할 줄도 모르고 묻는 질문에 겨우 네, 아니오 정도의 대답을 하는 게 다인 창우는 어딘가로부터 ‘선택’받아본 경험이 처음이다. 처음엔 회사가 창우의 성실함을, 우재의 활기찬 개성을 알아봤나 싶었지만, 사실 이 회사는 공장 실습생으로 창우, 우재가 아닌 어느 누가 지원을 했어도 뽑았을 것이다. 공장에 그 흔한 나사, 볼트만큼이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노동력. 아니나 다를까 우재는 첫 출근날 자신의 락커에 ‘김오재’라고 써있는 이름표부터 받아든다.
<3학년 2학기>는 특성화고교생 창우가 3학년 2학기에 학교 대신 회사로 출근 해 첫 사회 생활을 하는 몇 달의 시간을 좇는다. 이 영화를 설명할 때마다 비슷한 소재로 더불어 호명되는 영화가 있다.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다. 특성화고교생이 실습 현장에서 일하는 풍경을 촘촘히 그려냈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다음 소희>가 허술한 취업 실습 시스템과 그저 취업률 숫자로만 치환되는 노동현장과 학생을 보호할 줄 모르는 교육 기관에 대한 목소리를 직설적으로 내는 반면 <3학년 2학기>는 열아홉 일하는 아이들의 마지막 10대 시절을 좀 더 길고 부드럽게 응시한다.
한부모 가정의 장남인 창우는 일찍 철이 든 소년이고, 자신이 어디에도 특별한 재능이 없음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공부 잘하는 동생과 달리 일찌감치 취업을 목표로 한 창우는 뭐든지 잘 참는다.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는 우재에게 창우는 “여기 그만두면 뭐 할 건데?”라고 묻는다. 창우의 이 물음은 우재가 아닌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린다. 입사를 고민할 때, 이 회사가 맞나 확신이 없었던 창우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나 거기 가?” 그 회사에 대한 정보가 창우보다도 없을 엄마는 아들이 전해 준 몇 개의 단서만을 듣고 무심히 흘려 답한다. “괜찮네. 가” 진지하게 마주 앉아 진로에 대한 논의조차 한 적이 없는 모자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란 듯 각자 할 일을 하며 대화한다. 엄마의 답을 듣고도 창우는 다시 묻는다. “나 정말 가?” 일찍 철이 들었다 해도 겨우 고3인 창우에게는 확신과 명분이 필요하다.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집에서도 멀기만 한 그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할 명분이.
일반 고교생들의 수능 날, 수능 시험장 대신 회사에 간 창우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수능 소식을 뉴스로 본다. 회사 대신 수능을 보고 대학생이 될 다른 또래들에 대해 창우는 딱히 부러운 감정이 없다. 함께 식사 중이던 실습생들 역시 식당 TV에서 흘러나오는 수능시험 뉴스를 날씨 뉴스 보듯 무심하게 내다본다. 10대가 주인공임에도 <3학년 2학기>의 아이들은 제 입으로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꿈이 무엇이라는 등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창우와는 달리 활달하고 수다스런 우재도 꿈이나 직업에 대한 계획은 없다. 선생님은 창우에게 지금 회사에 정식 취직되면 추천으로 전문대에도 입학가능하고 병역특례도 갈 수 있다고 독려한다.
재학 중에 책으로 기술을 배웠지만 실제 일한 경험은 전무한 아이들은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실습생일 뿐이다. 일하느라 바쁜 선임의 어깨너머로 눈치껏 일을 배우고 빠릿히 움직여야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 학생이었던 창우와 우재는 공장일에 서툴고 아둔하다. 아이들의 교육 담당인 송대리는 사람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다. 자기 일도 해가며 신입을 가르치고 업무 분담까지 해줘야 하는 것이 귀찮고 피곤한 어른. 일이 서툰 창우와 우재는 빠르면 빠르다고 혼나고 느리면 느리다고 혼이 난다.
그 지적들이 선배의 부질없는 잔소리만은 아니다. 잠깐의 방심으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공장에서는 경험이 축적되어야만 감각으로 체득되는 것들이 있다. 어린 노동자는 여기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감각이 전무해 매사에 안전사고에 대한 꾸중을 듣는다. 심지어 창우가 공장에 입사하기 1년 전부터 도제 실습생으로 일한 성민은 모든 일에서 우위에 있어 사내 에이스로 불린다. 선임의 뒷담화에서 ‘폐급’으로 불리던 우재는 금세 그만두고 창우만이 묵묵히 공장에 남아 “용접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을 회사에 전한다.
좋아하는 것이 없다면 잘하는 것을 찾기
취업 실습생들은 실습일지를 쓴다. 종일 눈치만 보고 단순 노동만 하던 창우는 실습일지 두 줄을 겨우 채워 왔다. 하지만 용접을 하며 난생 처음으로 “잘 하네. 머리가 좋네.”라는 선임의 칭찬을 듣고 그날의 실습일지는 처음으로 길게 채워진다. “오늘 처음으로 용접을 배웠다. 한주임님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다. 용접은....” 그날 배운 용접 기술에 대해 길게 쓴 창우는 취업 후 처음으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자발적 의지가 생긴다. 일하며 처음으로 기술이나 지식을 체득해본 사람은 안다. 그때의 성취감이 얼마나 나를 고무 시키는지.
학교나 회사에서 “다 좋습니다. 괜찮습니다”라는 대답만 하고, 웃지도 울지도 않고 무덤덤한 표정만 짓는 창우가 극 중 처음으로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웃는 장면이 있다. 창우와 성민, 다혜의 회사보다 더 위험한 공정을 하는 하청회사에 다니는 선배 수호가 배달을 온 날. 같은 고교 출신의 수호와 성민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다혜가 혼자 뒤처져 가던 창우의 등을 밀며 “우리도 함께 가자”며 무리에 슬쩍 창우를 끼운다.
동갑임에도 오래 일해 인정받는 성민과는 달리 어색하게 겉돌던 창우가 또래 동료 무리에 처음 어우러질 때 소년은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질 못한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또 혼날까봐 눈치 보고 주눅 들었던 창우가 처음으로 웃는 순간. 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서먹한 관계를 맺고 있던 동료 사이에 껴서 점심을 먹으러 가며 창우는 오랜만에 소속감을 느낀다. 매일 팔목에 파스를 붙이며 번 실습비 60만원으로 막내 동생이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브랜드 치킨에 치즈볼까지 추가해 가족들에게 먹일 때, 공부하는 동생의 고장난 무선이어폰을 새 것으로 바꿔 줄 때에도 창우는 뿌듯하게 미소짓는다. 매일 공단으로 출퇴근하며 일해서 번 월급. 창우는 그 돈으로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인이 된 것에 작은 충족감을 느낀다.
사회에 채이고 상처도 받으며 굳은살이 생기고 자기의 판단 기준이 생긴 성인과는 달리 10대는 작은 타격에도 쉽게 흔들리고 크게 영향받기 쉬운 연령이다. 그렇기에 10대의 노동이란 지나치게 이른 것이거나 또 아직은 보호만 받아야 할 나이라고 여기기 쉽다. <3학년 2학기>은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법적 보호를 받아 가며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노동을 하며 얻는 이들의 성장이 헛된 것이 아니며 매 순간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제 나름의 고민을 하며 노동자로서 제 몫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어떤 동정이나 연민도 없다. 영화에선 여러 번 창우의 손이 클로즈업 된다. 첫 시퀀스에서 일하는 창우의 손을 보여준 후, 더듬더듬 기타를 치는 손, 계약서를 쓰기 위해 꾹꾹 눌러서 이름을 한 자씩 써내려 가는 손, 장례식장에서 방문록을 쓰는 손을 보여준다. 영화는 창우의 손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손을 지켜본다. 혹은 지켜주고 싶어하는 것도 같다. 학생의 손으로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쓰던 창우의 손은 이내 노동자의 손이 되어 여기저기 상처가 난다. 상처는 손 곳곳에 머무르고 창우는 이조차 무심하게 여기고 그 손으로 기타를 친다.
일하다 죽은 이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창우가 우는 대신 기타를 친다. 연주곡은 <울게 하소서>다. 여러 일을 겪고도 회사에 남기를 선택한 창우와 다혜, 진작 도망친 우재, 그리고 누구보다 잘 견뎠지만 더는 자신을 속이지 않기를 선택한 성민. 3학년 2학기의 시절에 이들은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한다. 이런 열악한 회사를 빨리 그만둔 사람이 현명하고, 남은 사람이 미련하다거나 하는 판단을 영화는 하지 않는다. 그저 담백하게 각자의 미래를 선택한 아이들의 내일을 응시하고 지지할 뿐이다.
<3학년 2학기>이 무조건 아이들의 노동을 긍정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란희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고자 처음 결심한 것은 현장실습 나간 직업계 고교생의 사고사 뉴스 기사를 보았을 때라고 한다. 영화에는 젊은 노동자들이 현장을 바꾸기 위해 작은 노력을 하고, 또 현실에서도 허깨비일지라도 규칙과 제도가 있음을 나지막하게 전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일하는 이들의 피로한 매일의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간식을 나눠 먹고 점심 식판에 돈까스를 가득 담는 일상을 담는다.
입시 학원에 가고 수능을 치고 대학에 가는 청소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졸업식날에도 회사에 가고, 그곳에서 기술을 배워 가며 노동하는 청소년도 있다고. 그리고 거기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긍지를 지키며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3학년 2학기>는 어린 청년들의 노동과 내일의 삶을 차분하지만 굳건하게 기록하고 응원한다.
-고교독서평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