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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Dec 06. 2019

이사 하는 날 생긴 일

혼자 사는 여자의 이삿날

한달 전 이사를 했다. 나는 1인 가구 치고 짐이 굉장히 많은 편이기에 이삿짐센터와 전화 견적을 낼 때마다 그 부분을 언제나 강조한다. “12평에서 10평으로 가는 거고, 방 하나에 거실 하나 있는 집이고요. 큰 짐은 없지만 대신 책이랑 옷이랑 잔 짐이 굉장히 많아요.” 상담을 할 때마다 이삿짐센터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유, 걱정 마세요. 우리가 그런 이사 한두 번 해보나. 아가씨 혼자 사는 집들이 짐 많은 거 잘 알죠.” 내 집 구석구석을 사진까지 찍어 보내고, 견적을 받고 난 후에도 나는 항상 거기에 플러스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를 덧붙여본다. 이사하는 날 아침에 분명 아저씨들이 “아유 이거 말이랑 다르네. 사람 하나 더 써야해”라고 견적과 다른 추가 금액을 요구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사하는 날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지끈 거렸지만, 악몽은 그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혼자 오래 살던 사람에게 이사가 힘든 이유는 누구의 참견도 받을 일 없던 내 살림이 남에게 다 까발려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 7시 반에 우리 집에 도착한 이삿짐센터 팀장 아저씨는 책이 쌓인 내 방문을 열자마자 한숨을 쉬며 ‘놀라는 연기’를 시작했다. 이사 경력 5번 동안 늘 겪었던 일이기에 나 역시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에서 들은 거랑 규모가 다르네. 사람 하나 더 쓰셔야 겠어. 20만원 추가되는데 괜찮아요?”


  자, 여기서 내가 ‘안 된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저씨들은 대개가 ‘그럼 못 한다’, ‘센터랑 직접 얘기 하시라’고 말한다. 한명 더 추가하되 제가 그릇장 정리를 할 테니 얼마 깎아 주시면 안 되냐, 등등의 딜을 해볼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아침부터 실랑이하기 싫어서 항상 그들의 요구에 수긍하는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오늘 하루 종일 내 짐을 날라줄 사람과 괜히 낯붉히며 싸우기 싫어서 매번 ‘그냥 20만원 더 주고 말자’라고 스스로와 타협하고 마는 것이다. 마음 불편하고 싫은 소리 듣고 싸우느니 포기하는 금액 20만원. 언제부턴가 내 속에서 10만원에서 20만원은 감정노동 가격으로 쉽게 책정되는 금액이 되어 버렸다. 소심하고 만만한 인상을 가진 여자1은 이렇게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호구 잡히기를 자처하게 된다.

  그렇게 처음부터 20만원을 추가 지불하겠다고 약속을 했음에도 그로부터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의 잔소리는 내내 이어진다. “뭐하는 사람이냐?”, “공부하는 사람이냐?(책이 왜 이렇게 많냐)”, “패션 일 하는 사람이냐?(옷이 왜 이렇게 많냐)”, “에이취, 고양이 키우나보다(고양이 털이 날려서 힘들다)”, “이거 정말 다 가져갈 거냐. 이거 다 안 들어가니까 여기서 버려라” 등등. 


엄마와 이삿짐센터가 함께 부르는 노동요

“이건 뭐냐?”(엄마), “드림캐처…”(나), “그게 뭔데?”(엄마), “악...악몽을 쫓아주는 거야.”(나),  “니네 집 꼬라지가 악몽이다.”(엄마)


  매번 이사 때마다 혼자 이사를 하다 보니 무시를 받는 건가 싶어 이번에는 엄마가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엄마가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평소에도 내가 사는 삶의 방식을 탐탁치 않아했던 엄마가 한숨을 쉬며 내 짐을 욕하기 시작하면 아저씨들은 짐을 나르다 말고도 추임새를 넣으며 엄마의 잔소리를 부추겼다. 그러면 양쪽에서 “왜 이러고 사느냐”는 돌림노래 타령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마가 내 냉장고를 보고 “니가 백종원이냐? 무슨 양념통이 이렇게 많어? 엄마 살림보다 그릇이 더 많네”라고 말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나타난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저희도 이런 집 이사는 1년에 한번 할까 말까예요. 아까 문 열었다 그냥 계약금 돌려주고 가려고 그랬잖아”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자진방아를 돌려라~’라고 엄마가 선창하면 옆에서 ‘에헤야 어절씨구 에헤야’라고 장단을 넣는데, 어느 지방에서 유래되었을지 모를 그 타령에서 비난하는 대상은 ‘나’이고 해석해 보면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이사 내내 엄마는 내 짐 중 일부를 들어올리고 “이건 뭐냐”라고 묻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건 이러이러한 용도로 쓰는거야”를 설명하다가 스스로도 ‘근데 저걸 왜 샀더라’ 반문하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 이사 때 이삿짐센터의 무례함을 엄마에게 한탄한 적이 있다. 엄마는 “그게 다 어른이 없어서 그래. 다음엔 나라도 가야겠다. 그러게 결혼을 해야지. 넌 이사 도와주러 올 남자친구도 없냐”로 잔소리를 이어갔는데, 부득불 상경하겠다는 엄마를 말리지 않았던 며칠 전의 나를 잡아 족치고 싶었다. 엄마 눈에도, 이삿짐센터 아저씨의 눈에도 우물쭈물하는 삼십대 1인 가구 여성은 어른이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가 나를 한심해 하는 이유는 뻔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몇 년이나 했음에도 여태 돈도 못 모으고 남의 집에 월세 살며 떠도는 딸내미가 한심한데, 더구나 와서 보니 쓸데없는 걸 잔뜩 사모은 것이다. “왜 돈을 못 모으는지 이제 알겠다”고 한숨을 쉬던 엄마는 답답해서 더는 못 보겠다며 짐 정리도 끝나기 전에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한끼도 못먹고 이삿짐을 나르다 고향으로 내려간 엄마 때문에 나 역시 속이 상해서 정리도 덜 끝난 집에 털푸덕 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12평에서 10평, 더 좁고 깨끗하고 시내에서 멀어진 집으로 이사를 왔다. 2년 후에는 또 어디로 갈지 모른다. 


나는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고향에 도착한 엄마에게 “잘 도착했어?”라고 문자를 보내자 답문이 왔다. “너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 집이 없어서 서러운 게 아니었다. 나름 나 자신을 책임지고 사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내 삶을 부정 당하는 소리를 들었더니 나 역시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두통이 심해서 맨 바닥에 누워있다가 ‘이사 잘했느냐’는 친구의 안부 전화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다 더 분노한 친구가 이삿짐센터에 항의 전화를 해야겠다며 나섰다. “싸우기 싫어. 그냥 넘어가자”는 내게 친구는 “혼자 사는 여자라서 더 만만하게 본 거야. 니가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 다른 사람이 또 당해. 왜 돈 내면서 안 들어도 될 소리를 들어?”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감정적 줄다리기가 싫어서 돈을 더 지불하겠다고 약속했고 사다리차도 두 번이나 불러서 총 이사 비용이 100만원에 육박했다. 내 돈 100만원을 쓰고도 하루 종일 남에게 잔소리를 들은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를 대신해 이삿짐센터에 항의 전화를 걸어준 친구 덕분에 10만원을 돌려 받았다. 센터에서는 ‘그 팀이 실수한게 맞다’면서 사과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처음으로 이사 후 내가 받은 고통에 대해 타인에게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있다. 고민하다 산 집이 몇 달 사이 1억이 올랐다더라…하는 한 다리 건너 친구의 도시 전설을 들을 때조차 ‘나도 집 사고 싶다’는 꿈을 감히 갖지 못하는데, 이사할 때마다 생각한다. 내 집 있으면 이 짓 안 해도 되겠지. 무엇이든 자주 할수록 ‘스킬’도 상승한다고 하는데, 이사에 있어서만큼은 이삿짐센터 비용과 사다리차 비용이 상승할 뿐이다. 반대로 이사 때마다 나의 대응력은 갈수록 줄어든다. “지난 번 이사 때 당한 일을 이번엔 당하지 말아야지” 이런 다짐을 해봤자, 이삿날 아침 너저분한 내 집에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흙 묻은 신발을 신고 들이닥치면 사고 회로가 새하얗게 정지되고 마는 것이다.   


**한겨레 토요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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