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친구의 추천에 쉽게 현혹되는 소비자의 고백
아뿔싸, 내가 또…. 배달된 종이 향초를 뜯자마자 기시감을 느꼈다. 집에 있는 책을 못 찾아서 같은 걸 또 사고, 이미 있는 컬러의 셔츠나 팬츠를 못 찾아서 또 사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또 저질러버리고 말았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종이 향초를 뜯어서 태우자마자 연기가 자욱하게 좁은 방을 채웠다. 맞아, 내가 이래서 이걸 싫어했어! 서랍을 뒤져보니 수년 전에 해외 직구로 사놓았던 같은 브랜드의 종이 향초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과거에 선배 집에서 보고 따라 샀다가 우리 집엔 맞지 않는 물건이라는 걸 이미 확인했으면서 또 사고 만 것이다. 굳이 태우지 않아도 은은한 향이 퍼져서 책갈피로 써도 좋다는 이 종이 향초를 다시금 사게 된 것은 트위터 친구의 리뷰 때문이었다.
“디퓨저나 인센스처럼 흔한 제품보다 나는 이 페이퍼 향초가 좋다. 파리에서 산 이후로 잘 쓰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 셀렉트 숍에서 살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종이를 태우면 향이 난다는 신박함과 ‘파리’라는 멋스러운 장소 정보는 나의 허영심을 자극했다. 나는 곧바로 그 이름도 어려운 브랜드 ‘파피에르 어쩌고저쩌고’를 검색해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말았고, 물건이 도착하고 나서야 서랍장에 같은 물건이 처박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먹다가 기억이 소생되는 것처럼, 나는 매캐한 종이 타는 연기를 맡고서야 아차차 실패한 소비의 추억이 떠오르는 뭐 그런 망한 인생이다.
트친이 좋다기에…
요즘 나는 대개 소비 정보를 이런 식으로 얻는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인친’과 ‘트친’들의 피드에 올라오는 추천 상품에 쉽게 현혹된다. 내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 중인 사람들은 대체로 나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추천하는 제품은 믿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튜브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유튜버가 먹고 입고 사용하는 물품을 많이 구매한다는데, 그 때문에 얼마 전에 ‘유튜브 뒷광고’가 논란이 되지 않았나. 아니 광고면 광고지 뒷광고란 또 무엇인가. 드라마 주인공들이 시도 때도 없이 ‘서브웨이’에서 데이트를 하고, ‘공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물로는 홍삼을 주고받는 PPL에 익숙한 나로서는 유튜브 광고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내 최근 소비 패턴이 주로 인친과 트친의 추천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진행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하는 말이라 믿고 샀는데, 이게 거짓말이었다니! 부들부들’이라는 분노 버튼이 눌린 것으로 분석해볼 수도 있다.
종이 향초 말고 인친과 트친이 좋다기에 최근 일주일간 구매한 물품 목록을 나열해보겠다. 팔로우 중인 인스타 빈티지 숍에서 원피스를 구매했고, 인스타에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직접 띄운 청국장’을 구매했으며, 인스타 광고에서 본 쿠캣마켓 매운 주꾸미를 샀고, 트친이 진짜 맛있다고 추천한 오곡 닭소시지와 치즈맛 우유, 가을이면 쟁여놓는다는 허니 마스크와 홈카패용 액상 흑임자맛과 쑥맛도 구매했다. 심지어 홈카페용 액상 제품은 일주일에 단 두 번 구매창이 열리는데, 열리자마자 3분 안에 매진되는 통에 두 번의 실패 후 알람까지 맞춘 끝에 겨우 구매했다. 이 외에도 뭐가 많은데, 냉장고를 살펴보며 참고하기 귀찮아 일단 생각나는 것만 적었다. 트친과 인친을 믿고 샀는데, 그 물건들이 실제 사용해보니 어땠는지는 아직 적을 수가 없다. 너무 많이 사서 다 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식품류는 처음 먹었을 때 ‘내가 또 트들갑(트위터 호들갑의 줄임말)에 당했군.’싶었다. 왜 알면서도 매번 따라 사게 되는 것일까. 내 트친과 인친들은 전부 마케팅의 도사인가? 그들이 맛있다고 괜찮다고 쓰면 왜 다 좋아 보이지?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광고를 고이 즈려밟아
지출 비용 중 엥겔계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나는 SNS에서 정보를 접하고 ‘궁금해서’ 구매하는 것이 대부분 식품류인데 최근에는 다이어트 중 먹으면 좋은 식품군이 많은 것 같다.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은 아니고, 인스타그램에 너무나 높은 비율로 미용과 다이어트 관련 식품군이 노출되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자꾸 이런 것만 사게 되는 것이다. 사실 SNS 광고가 소름 끼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예를 들어 ‘GI 지수가 높은 식품 다섯 가지’ 뭐 이런 뉴스를 아침에 봤다면, 망할 알고리즘이 나의 정보값을 부지런히 SNS에 실어 날라 관련 상품 광고만 내 피드에 끊임없이 올라온다. 아침에 가을 정장 바지를 검색하면 그 후 이틀 정도는 어떤 사이트와 SNS에 가도 쇼핑몰의 정장 바지 이미지만 내 눈에 보이도록 세팅된다. 광고의 타깃이 되는 대상이 관심을 가지고 검색하거나 관련 기사를 본 상품을, 그 사람이 지나가는 모든 인터넷 길목마다 노출하는 그 성실함은 그야말로 징글징글할 정도다.
특히 내가 팔로잉 하는 피드에 새로운 게 없어서 심심할 때마다 눌러보는 돋보기 버튼(익스플로어)은 인스타그램에 광고비를 결제한 브랜드와 뉴스채널 위주로 세팅된다. 뉴스나 쇼핑몰 이미지를 보다가 손가락을 몇 번 튕기면 결제창까지 일사천리로 모실 수 있도록 광고가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단식원 들어갔다가 문 뜯고 나온 사연’이라는 제목에 혹해서 읽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식욕 억제제 광고가 링크되어 있고, ‘발레리나가 무대 올라가기 일주일 전에 하는 일’처럼 다이어트와 상관 없어 보이는 글조차도 읽다 보면 일주일 만에 약 먹고 살을 뺐다는 광고 글이다. ‘서른한 살 언니가 20대에게 하는 충고’ 이런 글도 마찬가지다. 읽다 보면 20대 때 피부과를 꾸준히 다니라는 게 핵심이고, 그 밑에는 가성비 좋은 피부과 시술이 볼드체로 강조되어 있다. SNS라는 게 내 취향대로 정성껏 가꿔놓은 정원 같지만 그 정원 곳곳에는 이렇듯 광고라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거기 쉽게 속아 넘어가서 결제창을 누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다이어트 약이나 미용 관련 제품을 검색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다이어트 식품과 약이 뜨는 것일까. 몇 번 그런 뉴스를 눌러서 읽었더니 이후 심각하게 몸매 관련 뉴스만 노출되는 게 짜증스러웠다.
당신의 피드는 안전합니까
나만 이러나 싶어서 주변 친구 몇 명(여성)의 휴대폰을 잠시 빌러 인스타그램 앱을 켜고 돋보기 창을 눌러봤다. 그들의 창에도 연예 뉴스를 가장한 미용 광고 창이 무수하게 떠 있었다. 실명과 몸매를 전시하며 ‘OOO이 컴백 전에 한다는 운동’, ‘OOO가 영화 촬영 전에 꼭 먹는 음식’ ‘요요 탈출하고 30키로 감량 성공한 개그맨 OOO이 매일 먹은 것’ ‘20키로 감량하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뮤지컬 배우’...대부분 비만 탈출에 성공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 아이돌의 몸매 비법을 전시하는 내용이다. 이 피드들은 광고가 아니더라도 결국 ‘날씬한 것’이 여성에게 최상의 목표이자 삶을 반전시키는 무기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너무 자극적으로 보일까봐 마지막 줄에는 꼭 ‘건강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새 삶을 찾은 OOO 파이팅’과 같은 위선적인 응원글이 달려 있다. 건강을 위해 살을 빼고 운동하라고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아름다움이란 마르고 날씬한 몸매임을 위시하고 있는 것이다. ‘55kg 통통이가 건강한 45kg가 된 사연’과 같은 카드뉴스 어디에서 건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개말라인간’을 200만 300만 팔로워를 가진 연예뉴스 채널들에서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광고판들에게 ‘여성 사용자’들은 주요 광고 타깃이다.
채털리 부인의 블로그
김세희의 단편소설 <가만한 나날>에는 마케팅 회사에 취직했으나, 블로그 마케팅 글을 쓰는 게 주 업무가 된 주인공이 나온다. ‘채털리 부인’이라는 ‘부캐’를 이용한 블로그를 만들고, 거기에 직접 사용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물건들의 리뷰를 진짜 좋은 것처럼 쓰는 주인공은 사람들이 리뷰를 진짜로 믿어준다는 데 점차 희열을 느끼고, 그것이 업무 실적으로 연결되자 초반의 ‘찜찜함’마저 잊게 된다. 실제로는 미혼의 20대지만, 블로그 속 채털리 부인은 현명한 소비를 하는 30대 유부녀 여성으로 캐릭터가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은 홍보 요청을 받은 물품들의 리뷰를 쓰면서 점차 윤리 의식마저 희미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채털리 부인을 진짜로 믿고 있는 블로그 친구에게 쪽지가 날아온다. 채털리 부인님이 포스팅을 올린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라며, 당신은 괜찮으냐고 안부를 묻는 쪽지였다. 이후 주인공은 자신이 쓰는 광고 글이 결국은 거짓말이고, 그 글 때문에 누군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더 이상 업무를 지속할 수 없게 된다.
과거 채털리 부인처럼 블로그 마케팅 업체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나는 30대 주부인 척 글을 쓰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광고 뒤에도 매일 출근해서 이런 글을 하루 몇 개 이상 쓰고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 세 개 이상, 이러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링크를 정리해 과장과 클라이언트 업체에 메일을 보내던 날들. 가습기 살균제는 아니었지만, 크로켓이나 찹쌀떡을 먹어보지도 않고, 구둣주걱이나 수세미는 사용해보지도 않고 까슬까슬한 감각이나 편리한 쓰임새까지 실감 나게 쓰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공감 수와 댓글이 많으면 업무 실적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던 나날. 거짓말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었고,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뭐든지 그럴싸해 보이던 시기였다.
진짜 건강해지고 싶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예쁜 옷을 예쁘게 입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몸매에 신경 쓰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내가 정한 나의 기준으로 의식하게 된 가치일까. 장기간에 걸쳐 TV와 SNS를 비롯한 미디어에게 주입받은 생각은 아닐까. 보기 싫으면 그냥 채널을 돌리면 그만인 TV 광고와 달리, SNS 광고들은 나의 취향을 분석해 광고가 아닌 척 가면을 쓰고 길목마다 버티고 서서 ‘그것이 나의 원래 욕망’인 것처럼 부추긴다. 그릇된 가치와 편견을 보편의 정서인 양 “넌 사실 네가 뭘 원하는지 잘 몰라. 이게 진짜 좋은 거야. 우리가 네가 진짜 원하는 걸 알려줄게.”라고 떠든다. 예쁜 사진과 공감 가는 글을 읽고 싶어서 시작한 SNS가 왜 이렇게 광고 밭이 됐을까. 그러니, 결국 중요한 건 남의 말에 쉽게 현혹되지 않기. 물건도 광고도 너무 많은 세상에서 진짜 좋은 것을 분별해내는 능력이다. 광고와 소비로 점철된 SNS 세계에서도 결국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