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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imi Oct 26. 2021

자기 자신만의 공간


"우리 집에 책상이 너무 많아. 의자도 너무 많고."


언젠가 남편이 했던 말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다 필요한 건데, 왜?


심지어 나는 아직도 책상과 의자가 하나씩 더 필요하다. 휑한 베란다에도 하나 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지금 내가 노트북을 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공간은 거실의 책상이 아닌 부엌의 식탁.


그래, 이제는 나도 인정한다. 내가 책상과 의자에 집착한다는 것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집착하는 것은 공간, 그 자체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공간. 그리고 집안에서 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대변되는 곳이 바로 책상인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내 방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방 두 칸 짜리의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 엄마와 오빠와 함께 셋이서 오랫동안 살았다. 작은 방은 오빠가 썼고, 거실 겸 안방 역할을 하는 큰 방을 엄마와 내가 같이 썼다. 그리고 조그마한 화장실 하나, 밥상을 펴기도 비좁은 부엌, 이것이 우리 집의 전부였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종종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옹송그리고 있기를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가끔은 책상 위에 큰 담요를 덮어 고정시켜서 책상 밑으로 들어오는 빛을 아예 차단하기도 했다. 좁고 어두운 곳. 그때의 나는 미처 자각하지도 못했으나, 돌이켜보면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는 그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아무리 작은 체구라고는 해도 더 이상 그 좁은 책상 밑에 웅크리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제 집에서 나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내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집착적으로 일기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빨간색 일기장, 유일하게 내가 나 혼자일 수 있는 나 자신만의 공간.


내 방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순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 혼자 어렵게 우리 남매를 키우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일 텐데, 우리 형편에 방이 3칸이나 있는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나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억울한 건, 그래서 내가 견디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사춘기 소녀였고, 때로는 혼자 스탠드 불빛 아래서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또 멍하니 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도 싶었다. 엄마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공부 안 할 거면 빨리 불 끄고 자!'


물론 지금의 나는 충분히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엄마는 오랜 불면증 때문에 요즘도 가끔 수면제를 드셔야만 깊은 잠에 드실 수 있다. 그즈음의 젊은 엄마는 늘 피곤하고 항상 예민했으니, 공부도 안 하면서 책상에 스탠드를 켠 채 멍하니 앉아있는 속을 알 수 없는 사춘기 딸이 더욱더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이제는 다 지나간, 슬픈 이야기들이지만.


결혼하면서 나는 시가의 도움은 거의 받지 않았다. (남편의 월급을 전적으로 시어머니께서 모두 관리하고 있던 상황이라 정확한 내막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그 당시 남편 본인도 자신의 재무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지경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결혼을 했다.) 당시 예비 시어머니셨던 지금의 시어머니는 시가의 아파트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바로 옆 아파트 단지를 말씀하시며, 우리가 거기에서 살겠다고 하면 아파트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리 어리숙해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그러니까, 우리가 시부모님과 한 동네에 딱 붙어서 살겠다고 하면 집을 사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우리는 대출 없이 최소한의 금액으로 아주 오래된 작은 아파트의 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때의 내가 살던 집과 놀랍도록 비슷한 아파트였다. 거실 겸 안방, 작은 방, 자그마한 식탁을 놓으면 꽉 차는 부엌, 화장실 하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하나도 서글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좋았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작은 방에는 부부의 침대와 화장대가 꽉 맞게 들어갔고, 큰방에는 장롱, 옷장, 책상, 선반장 위의 텔레비전 등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병원에서 첫아기를 낳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산모인 내가 이부자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곳은 안방이었다. 신생아와 함께 침대에 눕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안방뿐이었다.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내 이부자리 옆에 아기의 벙커침대를 나란히 놓고 생활했다. 안방에는 이미 발 디딜 여유 공간이라곤 없었다.


시부모님께서는 첫 손주의 탄생을 몹시 기뻐하셨고 또 행복해하셨다. 시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기를 보러 집으로 찾아오셨다. 오겠다는 연락도 없이 말이다. 그때 마침 인터폰이 고장 난 상태였는데, 내가 쉬려고 누워만 있으면 갑자기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곤 하셨다. 그럼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시어머님이 앉으실 자리 마련을 위해 누워있던 이부자리를 걷어올렸다. 이틀에 한 번은 빼놓지 않고 항상 들르셨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덜컥 내려앉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그리도 괴로웠을까. 시어머님이 오시든 말든 내 이부자리를 걷어올리지도 말고 그냥 내 집, 내 공간, 내 자리를 스스로 지키며 누워있었어도 되었는데, 나는 차마 그러지를 못하고 매번 일어나 앉았다. 몸도 마음도 괴로웠다.


나는 시어머님이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불쑥불쑥 내 공간을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때론 내게 미리 묻지도 않으시고 큰시이모님과 동행하시거나, 막내시이모님과 동행하시거나, 또 자신의 조카인 사촌시누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셨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부자리를 걷고 일어나 앉아 원치 않는 대화와 원치 않는 미소를 지어야 하는 것이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어느 주말 저녁에 또 불쑥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던 날. 그날은 주말이라 평소와 달리 남편이 옆에 있어서 갑자기 용기가 났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아무렴 될 대로 돼라 싶었던 것인지. 나는 억지웃음을 짓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억지로 꺼내지도, 맞장구를 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셨던 시어머님은 일주일 동안 오지 않으시더니, 그다음 주말에 다시 우리를 찾아와 한참을 소리치셨다. '내가 내 손주 보러 오는 것이 너는 그리도 못마땅하니?!'


그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펑펑 울기만 했다. 옆에서 같이 아무 말도 안 하는 남편도 너무 미웠다. 시어머님께서는 내 울음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내가 너를 다 이해해주마, 내가 너의 잘못을 용서해주겠노라, 는 태도로 화를 풀고 돌아가셨다.


그때의 내 울음의 의미는 평생 나 자신 밖에는 몰라줄 것 같아서 나는 더 서러웠다. 결국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찾아가게 된 곳이 심리상담센터였다.


나는 내 공간에 집착하는 예민한 고양이 같은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내 집에 누군가가 찾아온다고 하면 그게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일단 긴장이 된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우리 집에 오세요, 라는 말은 차마 쉬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내 공간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나도 어찌할 수는 없다.


첫째 딸아이에게는 일찌감치 제 방을 만들어 주었다. 서랍장 침대와 책상, 책장, 피아노, 어린이용 헹거까지 모두 구색을 갖춘 진짜 자기 방을 만들어준 것은 여덟 살이 되면서 였지만, 그 전에도 늘 아이 자신의 방으로서의 공간은 마련해주었었다.


자기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절실함을 가져본 엄마로서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에게도 아이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딸아이가 제 책상에서 한 팔로 앞을 가린 채 몰래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지만 못 본 척한다. 숙제부터 하라고 했는데 몰래 책상 밑에서 마법천자문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아도 못 본 척 해주곤 한다. 엄마나 아빠에게 꾸중을 들어 시무룩해져서 제 방으로 들어갈 때는 눈치 없이 따라가는 동생을 만류한다. 누나한테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정확하게는 자신만의 시간과 자신만의 공간.)


요즘의 고민은 둘째의 공간이다. 둘째에게도 침대와 책상을 따로 넣어주고 제법 예쁘게 방을 꾸며주었지만 아직은 다섯살, 어리다보니 혼자 잠을 자지 못하고, 온갖 장난감들만이 방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가 네 방이라고 알려주어도, 그곳은 '장난감방' 이라 지칭하며, "나도 여덟살 되면 누나랑 '똑같은' 방 만들어 줘!"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옛날식 판상형 구조라, 거실과 안방만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방 두개는 모두 좁다. 첫째 딸아이의 방은 원래 딸려있던 발코니를 확장해서 그나마 여유로운데, 둘째의 방은 침대와 책상 만으로 이미 꽉 찬다.


아이들이 자라면 서로의 공간에 대한 주장이 더 커질 수도 있을 듯 한데 이걸 어쩌나, 싶은 것이 이른 고민이다. 서로 큰 방을 갖겠다고 한다면. (어릴 때의 나라면 크든 작든 그저 내 방만 있다면 그게 뭐라도 좋았을텐데.) 좀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또 요즘 하고 있는 다짐 하나.


벌써 첫째 아이때로 방문을 닫고  공간으로 숨어드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엄마인 나는  문을 열어제끼고만 싶은 충동에 자꾸 휩싸이곤 한다. 절대로,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내게 너무나도 절실했던 나만의 공간, 그리고 지금도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나만의 공간. 아이들에게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잊지 말고 지켜주어야지, 하는 다짐이다.




이미지 출처 / pinter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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