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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imi Sep 25. 2021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요즘 엄마랑 아빠랑 좀 자주 싸우는 것 같은데...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여덟 살 딸의 기습적이고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왼쪽엔 남편이, 맞은편엔 시어머니가 앉아계셨다.


나는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는 시댁에, 제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추석 연휴 5일 중에 3일이나 가야 했다. 아침 일찍 가서 함께 아침밥을 먹고 상을 치우는 자리에서 시어머님은 '저녁도 먹고 가야지.' 하셨다.


짜증을 부리는 내게 남편은 무심하게도, '밥만 먹고 오는 건데 뭘.' 이란 말을 내뱉어서 내 울화통에 불을 붙이기 직전이었다. 딸아이에게 아빠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같은 대답은 절대 해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너는 어때? 결혼할 거야? ㅇㅇ이는 엄마한테 결혼 안 할 거라 그랬대.' 괜히 딸아이의 친구 얘기를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아이의 할머니이신 시어머니는 '결혼은 당연히 해야지.' 라고 하셨다. 내 마음속에는 또다시 '당연한 게 어딨어요.' 라는 불퉁함이 솟아올랐다.


아니 그러게, 나는 남편과 왜 결혼했을까.


이 질문을 꺼낸다는 건 어쩌면 이미 '후회' 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하고 행복하다면 '왜' 라는 건 무의미할 테니까.


어릴 때 나 역시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왜 결혼했느냐고.


그때  질문의 기저에 깔린  안타까움이었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정말로 속상했다.  질문을 직설적으로 바꾸자면 이런 것이었을 테다. 엄마는 똑똑한 사람인데  그런 못난 사람하고 결혼을 했어?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엄마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린 나를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날이었던지, 하루는 나를 데리고 출근을 감행했다. 2021년인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하물며 그때는...


아무튼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가본 엄마의 회사 사무실은  넓었고, 책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엄마가 앉혀놓은 자리 위에 놓인 온갖 서류들이 신기했다. 절대 만지면  된다는 엄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구석에서 엄마가 미리 사준 종이인형을 오렸다. 어린  눈에 자체로 엄마가 대단하고 멋진 사람 같았다.


그런 내게 엄마가 해준 대답은 또 의외였다.


"그때 엄마 눈에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사람 같았지."


평소에는 빚만 남긴 채 우릴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비난하고 저주하며 온갖 욕을 다 퍼붓는 엄마였는데 말이다.


엄마는 아버지를 원망할지언정 결코 자신의 선택에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원래 그랬다. 달동네에 살아도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았고, 가난을 무기로 삼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버텨내려 했다. 그래서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서, 나는 남편과 왜 결혼했을까.


사실 몇 해 전 심리상담센터에 갔을 때 받았던 첫 질문이기도 했다. 남편 분하고 결혼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그때 내 대답은, '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변하지 않을 사람 같아서요.'


상담사는 내 대답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했다. 내가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것, 그리고 요구하는 것, 그것이 충족되지 않아 분노하는 것, 등의 모든 것이.


그렇다, 나는 남편이 나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3일 내내 시댁에 오라 하시고, 아침 일찍 와서 저녁밥까지 먹고 가라 하시는 불편한 시어머니로부터 나를 좀 지켜달라고.


하지만 남편은 효자인 데다가,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로부터 무기력감이 학습된 상태다. 무어라 반항을 해봤자 어머니로부터 더 크고 더 강한 압박이 있을 거라는 걸 알아서 '엄마는 어차피 말이 안 통해. 평생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실제로 내게 했던 말이다.) 라고 생각하며 애초에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시댁에서 남편은 말이 없다. 이렇게 말이 없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없다. 그런 사람이 어머니에게, '아니오.' 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여기서 내 분노가 치민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20년 지기 친구가 말했다.


'그냥 니가 말을 해. 아니오, 가볼게요, 라고 해. 니가 말을 해야 해. 왜냐면 그 상황이 제일 불편하고 힘든 사람은 바로 너잖아.'


댕.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 그러게, 그 상황이 제일 불편하고 힘든 건 바로 난데, 왜 남편에게 나를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걸까.


내 나약함과 비겁함을 인정하자. 내가 맞서 싸우지 못하면서 남편에게 요구하지 말자.


'그러게, 내가 왜 니 아빠랑 결혼을 했을까. 그땐 몰랐지.' 따위의 말로 변명할 생각도 말자.


'나를 지켜줄 사람' 은 아니지만 '변하지 않을 사람' 그거 하나는 해당되는 사람이니까, 그 정도면 성공했지 뭐.


딸아이에게 말해줘야겠다. 그때 엄마한테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어서 좋았어. 지금도 그렇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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