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2022년 9월 말의 기록:
한동안 귀찮기도 하고 마음이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기록’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생각들은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만 맴돌았다. 사업을 해서 돈도 많이 벌고 싶기도 하고, 돈은 적당히 벌어도 되니 그냥 한가로운 삶을 살고 싶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살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고 생각을 다 내려놓기도 해 보기를 몇 번. 결국 생각들을 글로 써서 정리하면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루틴을 정리하고 노션에 뒤죽박죽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들을 정리하면서 예전 글들을 읽었다. 1년 전에도 정확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에 시간을 허비한 것 같고 죄책감도 드는 게 사실이다. 더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게,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에 자신감도 좀 떨어진다. (후아, 아직도 나는 이 놈의 비교를 하고 있다. 모두의 인생이 다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 남들하고 비교하는 게 아무 의미 없다는 것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들을 단편적으로 모아 놓고는 상대적으로 고단한 내 삶이 시합에서 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붙잡고 마흔이 되기 전에는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곧 둘째 아이가 태어날 테고 분명 삶은 더 어지러워질 것이 뻔하다. 아이가 나오기 전에 마음 정리를 하고 목표 설정을 해두지 않으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 조급해졌다. 마침 (?) 코로나에 걸려 풀타임 격리 중이라 집안일, 요리, 육아에서 해방되어 혼자 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중이라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돈을 벌고 싶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좋아하는 일, 신나는 일 하며 살고 싶다. 책과 유튜브를 뒤져보면 조언들은 한결같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돈이 되는 일로 포장해서 지금 당장 도전해 보라.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아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좋아한다 아니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인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나는 이 일이 너무 좋다’라는 것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게 함정이다. 그렇다면 경험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당장 뭔가를 일으켜 돈을 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 액션을 취하라”라고 이야기할 때 액션은 오늘 뭔가를 해서 $100을 벌어보라는 뜻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행동을 취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또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첫 아이를 키운 지난 3년 반의 시간은 최고로 프로덕티브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행복했다. 요 아이가 매일 나에게 와서 말을 걸 때마다 ‘언제 이렇게 말이 늘었지?’ 싶고 너무 사랑스럽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시간도 그럴 것이고, 곧 세상에 나올 둘째 아이도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부모로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이끌어주려면 지치지 않게 몸과 마음을 단단히 키워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취미로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을 꾸준히 하며 관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해 본다.
세상이 기대하는 것보다 느리게 인생의 마일스톤을 지날 것이 뻔하다. 40대에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어린 자녀 둘을 육아하는 것이 분명 고될 것이다. 이뤄놓은 게 없다고 생각해서 좌절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잣대는 내 인생의 잣대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같은 나이로 태어났어도 죽는 날은 모두가 다 다르고 인생의 종착지도 모두 다르다. 나는 그저 내 길을 즐겁게 감사하며 걸어가고, 그 끝에서 인생이 행복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그게 성공이 아닐까. 타인과, 세상과 비교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원하는 방향으로 매일 꾸준히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느린 것 같지만 하나밖에 없는 성공의 길이자 지름길이다.
그리고 오늘, 2023년 11월 7일.
작년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던 날, 출산 후 병원 침대에 누워 쓰다만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마무리지어 제출했고 승인을 받았는데.. 이제야 첫 글을 발행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내 모습도 보인다.
둘째 아이는 돌이 지났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 지도 모르겠다. 둘째여서 그런 것인지 딸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육아도 훨씬 수월했고, 전업으로 육아를 하면서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어서 아이의 발달을 속속들이 지켜봤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놀라웠고 즐거웠던 것 같다. 또 한국에서 두 달 정도 지낼 기회가 있어서 시판 이유식도 해보고 시부모님 찬스도 쓸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
힘들기만 했던 독박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내 몸을 돌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렇게 시작한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달리기를 꾸준히 한 지도 어느덧 5개월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나가서 5km를 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떤 날은 고민거리를 생각하며 달리고, 또 어떤 날은 그저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렇게 30분 정도 뛰고 나면 에너지가 넘치고 스트레스도 해소되어 하루를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다. 어떤 날은 피곤해서 더 자고 싶기도 하고, 날씨가 추워지니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운동을 안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아침이 아니면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기 어렵고,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은 꼭 나중에 '아침에 운동할 걸'하고 후회하기 때문에 그 뒤로는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불을 뒤로하고 일어난다. 일단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자동으로 성공이다. 운동복을 다 갈아입었는데 안 나갈 수는 없잖은가. 이렇게 '러너'가 되면서 근육량은 더 늘고 체중은 줄어서 몸무게만 따지면 20년 전쯤의 몸무게로 돌아간 것 같다. 몸이 가벼워지니 더 활력이 생기고 건강한 몸이 자신감이 되어 다른 일에도 도전하는 힘이 된다. 일 년 전 생각했던, 취미로 평생 할 수 있는 운동 습관을 실천해서 얻게 된 것이 참 뿌듯하다.
잡서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 해에만 2-3번의 라운드로 구직을 시도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연말까지 치열하게 인터뷰를 보게 될 것 같다. 퇴사 후 시간이 빠르게 흘러 벌써 2년이 지났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물론 있었다. 조건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동료들도 여럿 보았고, 회사에서 친했던 동료가 그간 여러 번 승진하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곳에서 더 버틸 걸 그랬나 살짝 후회도 들었다. 특히 임금이 피크를 치는 30대 후반에 2년 간 페이첵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건 '미션' 때문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미션'으로 퇴사하였으니 그 끝을 봐야겠다. 이왕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퇴사했으니 스스로 무얼 원하는지 여유 있게 생각하고, 그 안에서 기회를 만들고 도전하다 보면 원하는 필드에서 커리어를 다져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난 2년 동안 물론 방황도 하고 갈팡질팡 했지만 필요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시간을 겪고 나니 '좋아하는 일'에 대한 바운더리를 좀 더 알게 되었고 이제는 나의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어느 분야에서든 꾸준히 묵묵히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존경할 만한 부분이 항상 있더라. 나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누군가에게,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고,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글쓰기는 언제나 어렵고 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내가 이걸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복잡한 머릿 속도 정리가 되는 것 같고 늘 끝 마무리는 '퐈이팅'으로 끝내기 때문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게 된다.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글쓰기이지만 앞으로 꾸준히 기록을 남기다 보면 이 또한 누군가에게 닿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브런치에서는 '작가'라는 명칭을 쓰니 왠지 모르게 정말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또 일 년 뒤에는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즐거운 마음으로 브런치 첫 발을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