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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Mar 18. 2018

저녁을 대접받는다는 것

어느 날, 준에게 저녁을 초대받았다

누군가에게 초대받는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비슷한 일을 하고, 결이 잘 맞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있다. 그중에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준'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맛집 블로거의 글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는 기쁨을 알게 된 그는 어느 날 외국 레시피 영상의 번역을 시작하더니 또 어느 날부터 주말마다 음식을 해 먹곤 했다. 그리고 몇 주 전, 누군가를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직접 만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리고 고맙게도 그 첫 번째 게스트가 우리였다. 한다고 하면 정말 해내는 그답게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몇 주 전 건대 근처의 공유 주방을 예약했고, 며칠 전 신선한 재료를 마켓 컬리에서 주문하더니, 어느새 대망의 프로젝트 당일이 되었다. 그가 말한 우리의 준비물은 간단했다. 디저트와 와인, 무엇이 나와도 맛있게 먹겠다는 마음, 그날 저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옥탑방에 있는 작은 공유 주방

이 곳 주방은 크진 않지만, 요리를 하는 이의 뒷모습이 아니라 요리하는 모습 그대로를 생생하게 보면서 서로 마주하며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준은 메뉴판까지 만들어왔고, 성대한 네 개의 코스가 준비되어있었다. 

코스의 시작은 웰컴 드링크부터. 그가 자주 가는 단골 가게에서 구해온 신선한 오렌지 생과일주스와 술, 무향의 탄산수를 섞으니 상큼하고 달달한 음료가 되었다.


준이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자, 우린 창에 다닥다닥 붙어서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영상과 사진을 찍으며 탄성에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요리에는 문외한이라.. 재료 이름과 요리 방법도 잘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떻게 요리할 건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첫 번째 요리는,

마리네이드한 올리브와 페타 치즈, 구운 샤워 도우 빵

바삭하게 구워진 올리브와 마늘은 취향저격이었고, 양젖으로 만들어졌다는 치즈를 구운 빵과 함께 곁들여 먹었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면서도 맛이 깊었다. 샤워 도우 빵은 그냥 먹으며 시다는데 구워서 그런지 신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올리브 소스랑 잘 어울렸다. (*마리네이드란 쉽게 말해서 양념에 재운 액체라고 한다.)


두 번째 요리는

세 개의 재료만을 가지고 만든 카쵸 에 페페 파스타

버터와 치즈, 통후추로 만든 간단한(?) 파스타임에도 맛은 진하니 고급스러웠다. 통후추는 씹는 식감이 재밌으면서도 맛까지 심심하지 않게 해 준 재료였던 것 같다. 


마지막 대망의 세 번째 요리는 고기다!

뼈 등심 구이와 사과 소스, 브뤼셀 스프라우트 샐러드

그의 집에서 수비드(!)해온 돼지고기를 구워서 달달한 사과소스와 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여서 먹었는데, 조화로운 맛과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육질에 감동받았다. 식어도 맛있는 고기는 흔치 않은데! (*수비드란, 밀폐된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을 물속에 오래 데우는 조리법으로 겉과 속을 골고루 가열하고 수분을 유지하는 요리 방식이라고 한다.)

 


가족 외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를 먹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준이 만들어준 요리 덕분에 오감이 행복했고, 서로를 한층 알아가는 대화들로 인해 풍성했던 주말이었다. 어느덧 밤 10시. 퇴실 시간이 가까워졌고. 우리가 준비해온 디저트는 다 먹지도 못했지만 다음 이벤트를 기약하며 마무리했다. 다음에 준은 또 어떤 프로젝트를 할지 기대된다.


서양권은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익숙한 것에 비해, 우리는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부터 낯선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지만, 문득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누군가에게 요리를 대접한다는 것은 아직 내게는 먼 얘기 같지만 언젠가는 나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도전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진구네 식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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