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이 창작을 할 수 있도록
햇볕이 유독 뜨거웠던 8월, 한남동의 한 갤러리에서 나의 롤모델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무나리의 작업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자연스레 상상이 간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장난으로 그린 <무나리의 쓸모없는 기계>에는 엉뚱하지만 나름 논리가 있는 설계도를 볼 수 있는데, 가령 '나비 날개 펄럭이게 하기' 방법은 박스 안에 들어있는 송어를 술 취하게 해서 꼬리를 힘차게 흔들게 하고, 꼬리에 묶인 줄과 연결된 꽃이 흔들리면 그 안에 있던 나비가 날개를 펄럭인다는 식이다.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한 설계도에서 그의 유쾌한 상상력과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읽을 수 없는 책, LIBRO>은 당연히 책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고방식을 깨부수고 촉각/시각의 감각으로 책을 경험하게 한다. 그의 탐구심과 표현력, 남다른 관점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 그래서 더 좋다.
사실 브루노 무나리를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림책 작가라고만 생각할 정도를 그를 얕게 알았지. 물론 아직 그를 깊이 알지 못하지만, 피카소가 이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할 만큼 조각, 영화, 산업/그래픽 디자인, 문학, 창의성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90세가 넘은 나이까지 꾸준히 연구하고 작업했다고 하니, 앞으로 그를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다.
감동스러운 포인트 중 하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는 것이다. 하버드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디자인 이론 책에 있는 저자 사진에는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모습이 담겨있는데 그의 변하지 않는 엉뚱한 상상력과 유쾌함에 반했다.
내가 브루노 무나리에게 푹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작업물 자체도 훌륭했지만, 알부스 갤러리의 기획력도 한 몫했다. 관람자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게 한 전시 구성, 책 속의 한 장면을 실제 공간에 재현한 포토존 등 책 한 권 한 권을 개별적인 전시 콘텐츠로 녹여낸 점이 인상 깊었다. 입장권 조차도 하나의 콘텐츠였다. 무나리의 <말하는 포크> 그림을 활용해서 단순한 입장권이 아닌 투명 책갈피로 만들었는데 참 예뻐서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을 원한다면,
우리는 쉽게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는 동시에 모든 이에게 창작을 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위대한 예술이라는 부르주아적 사고, 선택된 몇몇만을 위해 만들어진 천재의 작품은 현대의 세계에서 의미가 없다.
- 브루노 무나리 <오리지널 제로그라피> -
너무 늦기 전에, 모든 개인은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꾸고, 창조적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의 작업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에게 창작을 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했던 그의 말은 딱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표현한 문장이었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며,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면서 산다면 좀 더 삶이 풍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느끼는 건, 말하지 않으면 말하는 법을 까먹듯이 모든 것이 그렇다는 점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창작의 기반이다. 그렇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표현하는 걸 잊고 산다면 창작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꾸준히 말로, 그림으로, 글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