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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ul 01. 2019

Made in Portland (3)

아트 뮤지엄보다 편집샵

남다른 '안목'을 가진 사람을 주목하는 시대

'있어 보이는 것'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너도 나도 인스타그램에서 예쁜 것을 올리면서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 카페, 음식,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겉으론 좋아 보여도 알고 보면 실망스러운 경험도 많아졌기에 무엇이 좋은지 분별해내는 '안목'이 점점 중요해진다. 흔히 안목은 미적인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의 능력인 것 같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안목이 있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포틀랜드는 저마다의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도시였다.

자신의 기준으로 가치 있는 제품을 큐레이션 해둔 편집샵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다. 아트 뮤지엄보다 더 뮤지엄 같았던 <Canoe> 편집샵부터 아름다운 오브제로 가득한 <Spartan>, 엄마와 아기를 위한 아동용품을 파는 <The Yo! Store>, 선물하기 좋은 제품을 모은 <Woonwinkel>, 이전 글에서도 소개한 로컬 제품만 파는 <MadeHere PDX> 등을 방문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을 소개하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쓰는 포틀랜드의 세 번째 이야기는 편집샵이다. 


1. 아날로그의 정석, 에이스 호텔

2. 만드는 행위가 일상인 곳

3. 로컬 마켓, 로컬 브랜드, '로컬'이 매력적인 곳

4. 아트 뮤지엄보다 편집샵

5. 일본과 포틀랜드는 무슨 관계일까

6. 미식의 도시, 포틀랜드

7. 에어비앤비를 탐험하고 싶은 곳

8. 산과 바다, 자연과 가까운 도시

9. 포틀랜드의 책방 이야기



4. 아트 뮤지엄보다 편집샵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 옆의 <Canoe>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에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색을 느낄 수 있는 희귀한 작품부터 서양 그리고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이 있었다. 다만 내게는 전 세계 디자이너의 제품을 큐레이션한  <Canoe> 편집샵이 좀 더 아트 뮤지엄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의 바로 옆쪽에 있다.


* Tip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의 입장료는 약 $20이지만 금요일 오후 5시 이후에 가면 단 돈 $5에 관람할 수 있다. CANOE는 오후 6시에 문을 일찍 닫으니, 뮤지엄을 가려면 이곳에 먼저 들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 블록 너머에는 포틀랜드의 로컬 카페 Coava 도 있으니,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다면 가봐도 좋겠다. 단 카페도 오후 6시에 닫으니 참고하길)


< CANOE >에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제품을 볼 수 있다. 간단하고 아름다우며 기능적이다. 무엇보다 '오래 사랑받고, 지속될 수 있는' 제품들로 셀렉 되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


이 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각각의 제품을 소개하는 작은 종이 설명서였다. 특히 제품명 옆에 원산지도 같이 표기되어 있어서 어느 나라의 디자이너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어디서 만든 제품인지를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의 나의 태도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는 딱히 관심이 없던 제품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서 찬찬히 보게 되었다. 참고로 제품들은 이곳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Braun Alarm Clock / Design : Dieter Rams & Dietrich Lubs, Germany
(좌) Crosscut Boards / Design : USA , (우) Cast Iron Trivet / Design : Japan



탐나는 그 가게의 오브제, Spartan

나는 오브제가 (엄청 비싼데) 실용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Spartan>에서 물건이 오브제로서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와 평범한 공간을 색다른 분위기로 채우는 오브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오브제가 단순히 비싸고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이때서야 조금 깨우친 것 같다.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오브제가 집에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5. 일본과 포틀랜드는 무슨 관계일까

포틀랜드를 여행하면서 이 곳이 일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포틀랜드 일본 정원(Portland Japanese Garden)과 일본 MUJI 브랜드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포틀랜드의 편집샵 <Beam & Anchor>에서 괜찮다 싶은 제품은 'Made in Japan'인 경우도 많았고, 일본 느낌이 물씬한 'Kiriko Made'라는 로컬 브랜드도 있었다.


무엇보다 포틀랜드와 일본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 건 'Made in portland' 제품의 품질과 디테일을 보면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Kiriko Made 창업자는 일본인이다. 디자인은 포틀랜드에서 하고, 옷감은 홋카이도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이쯤 되니 포틀랜드는 일본과 대체 무슨 관계지?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생겼다. 검색해보니 포틀랜드와 일본의 삿포로시는 1958년부터 자매도시를 맺었고, 포틀랜드 일본 정원도 그런 긴밀한 관계에서 시작되어 1963년에 계획되었다고 한다. 60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기에 포틀랜드에서 일본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던 걸까? 사실 대한민국도 1987년부터 장미도시라는 공통점으로 울산 - 포틀랜드 자매도시 결연을 맺었는데 단순히 공연과 장미 축제에 참석하는 일회성 교류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단순히 자매도시이기 때문이라기보다 깊은 정서적, 문화적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한국은 포틀랜드의 일본 정원처럼 밖으로 드러난 연결성은 없지만, 오히려 포틀랜드의 레스토랑에서 한국 음식의 인기를 볼 수 있어서 놀랐다. 포틀랜드 도심의 유명 브런치 레스토랑 <Tasty N Alder>에서도 김치를 곁들인 한국식 치킨, 비빔밥이 인기 메뉴로 표시되어 있었다. (메뉴판과 사진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Korean Fried Chicken ⓒTasty n Alder (https://www.tastynalder.com/)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유'

워낙 포틀랜드에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여행 초반의 나는 조급함으로 가득했다. 이 곳에서 많은 곳을 보고 배우고 가야겠다는 열망은 구글 지도에 저장해둔 장소(별)는 최대한 다 가보고 싶다는 욕심과 더불어 압박감을 주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으니 급하게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순간이 잦아졌고, 신호등의 깜박임을 보면 다다닥 열심히 뛰었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답답함을 느낀 시점에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여유가 없으면 그 어떤 것을 봐도, 감동을 느낄 겨를이 없구나. 이러다간 그저 '봤다' 혹은 '별거 없군'으로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자 그제야 다 봐야겠다는 욕심을 여행 2일 차 때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3일 차부터는 좀 더 여유롭게 편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못 보면 다음에 또 오면 되지~허허


딱 7-8월이 포틀랜드를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라고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7월이다. 포틀랜드의 글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줄 몰랐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써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럼, 다음 글(아마 포틀랜드의 마지막 편이 될 것 같은)도 곧 쓰러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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