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속이 있어서
서울 시내 버스를 탄다
금요일 오후의 퇴근 시간 속을
버스는 한강 다리 난간을 붙잡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노인처럼
설 때마다 몸을 위 아래로 떨곤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막혔던 길이 새삼
한강 위에서 뻥 뚫릴 기미는 없다
그 느림의 속도에
몸은 은근한 현기증에 덮히고
서울을 막 덥치기 시작한 지진을 상상하다가
아득한 한강 물빛을 보고 덜컥 겁이난다
다음 생이 있다면
새(鳥)로 태어나고 싶다
2.
삼백년을 살다가
부석사 배흘림 기둥이 된 이가 있었다
그가 한평생 이동한 거리는
자신의 나뭇가지를 펼진 거리와
나이테를 밀어내며
이동한 거리가 고작이었다
어느날 벼락같은 나무꾼의 도끼날을
옆구리에 맞고는 마침내
그 긴 느림의 이동을 끝냈는데
탄식 같기도 하고 감탄 같기도 한
쿵하는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고 한다
다음 생에서는
새(鳥)로 태어나리라 다짐했단다
* 배흘림 기둥 -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에서도 나타나는 오랜 역사의 건축기법으로 엔타시스(entasis)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