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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버트 길벗 길But Mar 18. 2017

느림, 그 현기증 나는 것


1.

약속이 있어서

서울 시내 버스를 탄다

금요일 오후의 퇴근 시간 속을

버스는 한강 다리 난간을 붙잡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노인처럼

설 때마다 몸을 위 아래로 떨곤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막혔던 길이 새삼

한강 위에서 뻥 뚫릴 기미는 없다

그 느림의 속도에

몸은 은근한 현기증에 덮히고

서울을 막 덥치기 시작한 지진을 상상하다가

아득한 한강 물빛을 보고 덜컥 겁이난다

다음 생이 있다면

새(鳥)로 태어나고 싶다


2.

삼백년을 살다가

부석사 배흘림 기둥이 된 이가 있었다

그가 한평생 이동한 거리는

자신의 나뭇가지를 펼진 거리와

나이테를 밀어내며

이동한 거리가 고작이었다

어느날 벼락같은 나무꾼의 도끼날을

옆구리에 맞고는 마침내

그 긴 느림의 이동을 끝냈는데

탄식 같기도 하고 감탄 같기도 한

쿵하는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고 한다

다음 생에서는

새(鳥)로 태어나리라 다짐했단다



* 배흘림 기둥 -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에서도 나타나는 오랜 역사의 건축기법으로 엔타시스(entasis)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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