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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버트 길벗 길But Aug 15. 2017

유행(流行)



요즘 시작법(詩作法)의 유행(流行)을 보면

은행(銀杏)은 은행(銀行)을 품고

전갈(傳喝)은 전갈(全蠍)을 담았으며

바이크는 부당(不當)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복(全鰒)은

전복(顚覆)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계란 프라이나

뜨거운 호떡처럼

쉽게 전복(顚覆)되는 세상이란

얼마나 자유로운 세상일까


오늘

바위에 붙은 전복(全鰒)처럼

내 손이 꼬옥 붙들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 은행을 털다,

   전갈이 왔는데 전갈이 들어 있었다,

   오토바이가 부당부당 하다




은행 털기 / 고진하

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복면과 총 따위가 필요하지만
은행을 털기 위해 그는
모자와
고무장갑과
비닐 깔개를 준비했다.

나무를 잘 타는 그는
다람쥐처럼 뽀르르 기어올라가
은행을 털었다 우박처럼
은행이 후두두둑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 가마니 빛나는 은행을 얻기 위해
열 가마니 똥물을 뒤집어써야 한다.

(똥물이 된 육질 속에
금화가 숨겨져 있다니!)

구린내는 진동을 하지만
똥물을 뒤집어 쓴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은행을 다 턴 은행털이가
주르르 나무를 타고 내려오다 털썩 엉덩방아를 찧는다.
황금방석이 얼른 그를 받쳐준다!




전갈/류인서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잘생긴 한 소식에 물려 내 몸이 붓고 열에 들떠 끙끙 앓고 있으니

아무튼, 당신이 내게 등이 푸른 지독한 전갈을 보냈으니
그 봉투를 그득 채울 답을 가져오라 했음을 알겠다
긴 여름을 다 허비해서라도
사루비아 씨앗을 담아 오라 했음을 알겠다




오토바이 / 류흔

부당하다
부당부당, 부당한 시동 뒤에 달린 배기관의
떨림은 부당하였다
그러나 출발은 온당했으며
질주는 당당하였다
oh! 오토, 오토바이여
달려라!
백마력으로, 백오십 마력으로, 최대의 마력으로
마력이 넘쳐 매력으로
다당다당, 달려나가라
길을 달리다가 길을 만나면
길을 잡아채서 뒤로 던지라
나뒹군 길들이 툭툭 먼지를 털며 일어선다
(백미러로 다 보인다)
더 당기니 가로수가 쓰러진다
쓰러진 가로수를 일으켜 세우면 세로수가 되나?
뭐든 다, 다당다당, 다 감당할 테니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온 것은 뒤에도 있다)
등에 얼굴을 묻은 채
허리를 으스러뜨리는 애인이여
긴 머리칼을 휘날리느라 안전모도 쓰지 않았구나
이대로 영원히 달렸으면 좋겠어요, 뭐 이런 종류의 대사는
영화처럼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뽈뽈뽈뽈
생각만으로 흐뭇한 나는
수쿠터를 타고

시집 「꽃의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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