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인데 일부만 보게 되었다. 역사 강사인 설민석이 나와서 징비록을 설명하는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징비록이란 서애 유성룡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쓴 7년 간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다. 징비록의 기록에 의거하여 설민석 강사가 제시하는 임진왜란 승리의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누구나 인정하는 이순신의 존재 그리고 선조의 도주 속도, 마지막으로 의병을 꼽았다. 이순신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이미 관군이 무너진 상황에서 의병의 활약 또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선조의 도주 속도라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다양한 이순신
일본인의 특유한 화문화(和文化)란 것이 있다. 모시는 마음가짐, 배려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문화라는 설명을 찾을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조화로울 화(和)를 써서 조화롭게 지내자는 것이다. 이것은 섬나라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전쟁이 일어나서 한쪽이 패하면 달아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이 없으므로 패배한 쪽이 멸문지화 하기 쉽다. 그래서 이러한 폐해를 줄이고자 확립된 문화로서 개인적으로는 쇼토쿠 태자 때부터 그 시작이라고 알고 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또한 잦은 전쟁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하카라는 춤으로 전쟁을 대신한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면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조화롭게 지내는 길은? 아예 건들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악수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패배는 바로 죽음뿐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한 나라의 왕인 선조의 도주는 생각지 못한 것이었을 게다. 나라의 백성이야 적들의 손에 남든말든 혼자 달아나 버리는 짓을 차마 그 누구도 전략상 후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선조에게는 또한 최후의 보루인 명나라에의 망명 또한 추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아니니까. 그리고 숱한 의병장이 고문을 당하거나 김덕령 장군은 아예 선조에게 죽임을 당한다. 오죽하면 전쟁 중에 이몽학이 난을 일으켰을까.
하카춤
1950년 포화 소리와 함께 시작한 625 전쟁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3일 만에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남하한다. 그리고 일본에로의 망명을 시도한다. 이승만은 전쟁 중 독립운동가였던 정적 최능진을 사형한다. 묘한 오마주가 아닌가!
목종이 죽고 왕이 된 고려의 현종은 재임 초 거란의 침입을 맞고 강조가 패한 후 남쪽으로 몽진을 하게 되는데 도중 많은 지방 향리와 도적들이 제 나라 왕을 위협하거나 재물을 털어먹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재임 초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은 강조였다. 전쟁이 끝난 후 현종은 권력자 강조가 없는 상황에서 여러 개혁정치를 펴는데 피난 중 자신에게 무례를 범했던 이들을 용서하고 포용하여 진정화 화(和)를 이룬다. 그리하여 3차 거란 침입에서 소배압의 허를 찔린 개경 공략을 맞게 되나 2번의 몽진은 없다며 성 주위에 목책을 쌓고 결사항전, 끝내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고려는 평화시대로 접어든다. 전쟁 후 위정자들이 어떻게 다음을 준비하였냐를 보면 그들의 행동이 도주였는지 전략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드라마 '천추태후' 중 현종과 강조, 강감찬
대통령 특권 중 임명권, 불소추 특권이란 게 있다. 헌법 제84조에서는 내란이나 외환의 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재직 중 대통령이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명권은 대통령이 공무원의 임명, 파면 권한에 대한 독자권한이다.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재량행위(裁量行爲, Ermessensakte)는 행정 법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행정청에서 일정한 선택이나 판단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 즉 행정청이 법률에서 규정한 행위 요건을 실현함에 복수(複數) 행위 간의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어 있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재량행위에는 자유재량행위(공익재량, 편의재량)와 기속 재량행위(법규 재량)가 있다. 자유재량(自由裁量)이란 재량행위 중에서도 무엇이 공익목적이나 행정목적에 좀 더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재량을 말한다. 즉, 행정 기관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법에 구속됨이 없이, 어떤 행위나 판단 등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반면 무엇이 법인지를 판단하는 재량을 기속재량(羈束裁量)이라 한다. -위키백과
기속재량과 달리 자유재량에 대해서는 법적인 구속이 느슨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행위와 같은 고도의 전술은 사후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정재량이 축소, 즉 재량행위가 제한받는 것은 법익에 현저히 제한받을 때일 뿐, 정책결정권자의 고도의 정치적 재량은 언제나 인정된다. 임명권 또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서 국정운영자의 결정재량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사청문회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러한 공무원의 면책특권이나 임명권, 청문회 절차 등이 항상 국익에 부합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기에 각자의 당리당략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쉽게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특권은 국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데 이러한 수단이 변질되어 목적 또한 변질되어버리는 것이다.
현재의 조국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검찰개혁이라는 강력한 의지의 천명이다. 그래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리하게 임명을 추진하고 야당은 인사청문회라는 수단을 통하여 개인의 인신공격을 통하여 국익과는 상관없는 사익의 비리를 부추겨 대통령의 개혁을 발목 잡으며 반면 이미 드러난 비리에도 무시하고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으나 이미 개혁의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이다. 이럴 때 과연 대통령의 재량은 어떤 식으로 사용되어야 할까? 이익형량을 해보기엔 고려되어야 할 사안들이 너무나 많다. 강력한 개혁의 의지 표출이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냐? 그 밥에 그 나물이란 인상이 짙다. 윗 대가리의 어깨싸움에 국민들이 분열된다.
정부는 영어로 government이다. govern 지배하다. 무엇을? ment(al).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곳이 정부이다. 요즘은 작은 정부라 하여 민간이 정부의 역할까지 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IT 기술이 발달하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국민들 개개의 정치적 역량이 커진 현재, 내가 내뱉는 말이나 댓글들이 빅데이터의 형태로 쌓여 대중들의 평균적인 정치 사회적 역량들을 재고하는 것이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역사의 데이터들을 쭉 훑어보면 과거의 데이터가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말 그대로 나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 또한 정부에 지배되는 것이다. 육체의 감옥은 철창으로 둘러있으나 정신의 철창은 주로 미디어를 통해 전염된다. 공통점은? 둘 다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중 더 힘든 것은 정신의 감옥이다. 육체의 감옥은 형량이 정해져 있으나 정신의 감옥은 정해진 형량이 없다. 밖에서 구명활동을 해 줄 사람도 없으며 오로지 본인의 현재에 대한 자각만이 나를 government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공산당은 빨갱이요 김일성은 돼지로 표현하던 반공사상을 온 나라에서 주입하던 시대엔 모두가 옳다고 믿었지만 사실 모두가 틀린 것이었다. 모두가 틀릴 때 혼자 맞다고 생각하는 것 -반대도 마찬가지- 은 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미친 짓이었다. 때론 미친 놈이 세상을 바꾼다지만 대부분 미친 놈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죽임을 당한다. 그럼에도 목숨을 담보로 미친 짓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그릇된 역사의 시계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란 명제는 이래서 항상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