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출근해 남편이 만들어 놓은 포카치아를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정말 이것만 먹고도 살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 이런 마음이 든 건 처음이 아니었다. 피자를 만들 때도, 쌀국수를 만들 때도,
함께 자영업을 하며 만들었던 남편의 모든 음식 앞엔 늘 같은 마음이었다.
"이것만 먹고도 살 수 있겠어."
남편은 뻔한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자본주의 세상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을 '능력자'라 부른다. 하지만 내가 곁에서 지켜본 진정한 창작자는 다르다. 창작은 단순히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그 과정에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고유한 상상력이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의 결과물은 때로 대중의 기호나 효율성이라는 잣대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는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물질주의와 능력주의의 논리에 따라 세상의 가치들을 주류와 비주류로 성급히 나누곤 한다. 효율적이면 주류가 되고, 독특하거나 느리면 비주류로 밀려나는 세상. 하지만 크리스천인 나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애초에 '비주류'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다.
모든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단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으셨고, 우리 각자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니크함'을 심어두셨다. 따라서 창작이란 내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나만의 색깔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과정이다.
남편이 뻔하지 않은 맛을 고민하며 정성을 쏟는 그 시간 또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타인을 대접하는 창조의 행위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눈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비주류의 고집으로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 사람만의 진심으로 빚어낸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하나님이 만드신 다채로운 창조 세계 안에서 우리 각자는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특별함이다. 나는 오늘도 남편의 포카치아 한 조각에서, 우리를 이토록 유니크하게 빚으신 창조주의 풍성한 사랑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