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는 중에 ‘이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아, 우리나라 드라마나 시트콤에서도 대놓고 캐릭터의 성격이 눈에 보이게끔 이름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눈에 뻔히 보이는 ‘작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드라마’나 ‘소설’마저도, 아니 오히려 더더욱 ‘작명’을 허투루 하지는 않지 않던가.
‘작명’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내 세대까지 자주 사용했던 한자식 이름 말고 영어식 이름 혹은 다른 국가의 어떤 이름들도 ‘이름’때문에 생기는 어떤 운명 같은 게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운명을 바꾸고 싶을 때 ‘작명’을 고민하기도 하는 것 같다.
각설하고, 연역식 말고, 귀납식으로 생각했을 때, 내 생애에서 내가 알던 이름 중 유난히 좋은 ‘운명’이었던 이름을 생각해보면, 여자의 이름으로는 ‘보람’이 있었다. 내가 알던 ‘보람’은 유년기에 두세 명, 그리고 청소년기에 다수가 있었다가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현시점에 그간 인생에서 마주했던 ‘보람’ 중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보람’의 수를 정리해보면 세 명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이름 따라가는 것인지, 다들 잘 되었다. 아니 잘 되었다기보다는 그 ‘보람’들의 인상이 좋았다. 잘 풀리고 그랬던 것보다, 뭐랄까 호감형이었다고 할까.
뭐,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14)’처럼 내가 그 ‘보람’들을 평생 지켜보거나 혹은 그 ‘보람’들이 적어도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는 지켜봐야 ‘운명설’에 대한 반증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실해지겠지만 아쉽게도 내 인생과 그들의 성인 시점까지 교차점이 생기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건 정말 ‘설’ 혹은 ‘사견’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호감형’이라 좋았고 급기야 ‘보람’들은 ‘호감형’이라고 일반화하게 됐다.
이름은 뭐랄까, 핸드폰 번호처럼 한번 정해지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쓸 일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핸드폰 번호도 한번 정하면 자신은 그 번호로 전화를 걸 일이 별로 없고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오기 때문에 막상 본인의 번호를 바로 기억해내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것처럼, 이름도 아이러니컬하게 자신의 것인데 남들이 더 많이 사용하고 더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의 작명 방식은 주로 한자식 작명이라, 한자식 뜻의 ‘보람’과 직관적인 한글 뜻의 ‘보람’이 동일한 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여하튼 한자식 이름이라 한자 뜻과 한글 뜻 간의 차이가 같던 다르든 간에, 계속 평생에 걸쳐 남들이 ‘보람’이라고 부르면, 그러니까 ‘보람’들이 ‘보람’이라고 불리는 바람에, 인생에서 보람 같은 것 찾아볼 수 없다가도 그냥 어떻게든 ‘보람’ 있어야 할 것 만 같아서 '보람'들이 호감형이 되어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 정말 사견이기는 하다.
해서, 언젠가 지인이 개명을 고민하면서 이름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바로 ‘보람’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람’이 요즘식 이름이 아니거나 혹은 약간 센스가 없는 이름인 것 같다. 지인에게 추천하자마자, 약간의 말 줄임표가 지나간 뒤 지인에게 바로 그 이름이 반려된 것 보면 말이다.
아, 미국 시트콤 ‘프렌즈’로 돌아가서, 이 ‘시트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들이 눈에 들어오는 한편, 언젠가 영어회화 모임에 다닐 적에 사람들이 주로 이 시트콤의 캐릭터에서 영어식 이름을 가져와 작명을 한 경우가 많았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꼭 이 시트콤만이 아니더라도, 주로 셀러브리티나 영화나 미드 속 인물에게서 이름을 빌려온 경우가 대다수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한 시기에 가장 유행하는 이름의 느낌과 맞거나, 혹은 본인이 닮고 싶어 하는 캐릭터와 맞는 이름인 것 같다.
그때 나는 내 영어 작명을 성경 속 인물인 ‘사라’라고 지었다. 마침 생각난 이름이 그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알파벳을 ‘Sarah’로 표기하면 ‘세롸’로 발음되어서 내가 의도하던 약간 단아한 ‘사라’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원어민 선생님께 ‘사라’로 발음 나게 하거나 그렇게 발음해 줄 수 없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건 말이 안 되고, 그럼 이름을 추천해주겠다고 하면서 ‘패티(patty)’라는 이름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그런 느낌이 싫어서 ‘사라’로 발음 나는 Sarah를 고집했다. 원어민 선생님은 끝까지 그럴 경우엔 사라로 발음하는 동시에 ‘sara’로 표기하는 걸로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근데 사실 그렇게까지 고집할 일은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사라’는, 요즘의 한국식 이름 ‘보람’처럼, 그러니까 ‘보람’이라는 이름이, 지금은 약간 이모 세대 느낌의 이름같이 느껴지듯이, 영어식 이름으로 치면 할머니 세대의 이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즘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는 중에, 에피소드를 하나씩 격파할수록 그 캐릭터들이 너무 친숙해지는 한편, 나도 사실 그 시트콤 속에서 대화에만 참여하지 않고 병풍처럼 있을 뿐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그 미국 시트콤 ‘프렌즈’와 무관하지만 또 무관하지 않은 ‘레이첼(Rachel)’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레이첼(Rachel)’이라는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그 영어 회화 모임에 있었던, 엄청 직설적이었던 ‘레이첼(Rachel)’이 생각나는 동시에, 그녀와 떨었던 반박성 수다와 시니컬한 대화들이 기억나곤 하는 것이다.
'이' 레이첼(Rachel)과 '그' 레이첼(Rachel)은 캐릭터가 겹쳐진다기보다는 오히려 겹쳐지지 않는 부분이 많고, 오히려 내가 '그' 레이첼(Rachel)에게 영어식 이름을 추천해줬다면 '이' 레이첼(Rachel)을 떠올렸을까 싶기도 하다. 근데 시트콤의 에피소드 회가 거듭될수록 그게 ‘레이첼(Rachel)’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느낌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리고 왜 ‘그’ ‘레이첼(Rachel)’이 ‘이’ ‘레이첼(Rachel)’로 작명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