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색조화장보다 기초화장에 신경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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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니까, 개천절인 데다 주일인, 공휴일이 두 번 겹친 날이라 공공기관은 문을 닫아 버렸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발길을 향하기가 꺼려져서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문을 닫아버린 공공 도서관 근처에 있는 동네 마트에 들러서, 덕분에 한참을 고민했다. 근데 뭘 사 먹어야 기분이 풀릴까.


우선, 커피 중에서는 스위트 아메리카노와 블랙커피 중에 한참 고민한 뒤 블랙커피를 골랐다. 블랙커피 덕분에 다음에 고를 초콜릿 과자의 선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졌다. 달지만 양이 많지 않은 과자가 좋을 것 같았다. 이 둘의 조합은 이런 날, 그러니까 약간 사소한 상실감 같은 기분을 달래야 하는 날에 실망스럽지 않은 조합이었다.


블랙커피와 초콜릿 과자를 들고 문 닫아버린 공공 도서관 근처의 공원 벤치로 향하는 길에, 마스크가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공공 도서관 내의 멀티미디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잠깐 답답해서 마스크를 턱까지 내렸는데 제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죄송하다고 목례를 한 뒤 속으로 백신 접종도 했고 거리도 유지했는데 엄청 엄격하다며 살짝 투덜거리다가 다시 마스크를 썼던 기억과 함께, 오늘은 제지받을 공간마저 문이 닫혔구나 싶었다. 그렇게 공원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마스크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은 전망이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하천이 보이는 장소로, 하천 양쪽엔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다 갖춰져 있었다. 그렇게 하천 전망이 보이는 공원 벤치에 자리 잡은 뒤 블랙커피와 초콜릿 과자를 먹기 위해 마스크를 벗었다. 순간, 언제쯤 2년 가까이 지속되는 펜데믹이 정상화되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 싶었다. 백신 접종이 완료되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


블랙커피와 초콜릿 과자의 조합은 역시 실망스럽지 않았다. 카페모카를 자체 조합해서 아주 천천히 음미하는 것 같은 맛이었달까. 혹은 카페모카를 해체해서 먹으면 블랙커피와 초콜릿 과자가 분리되었다가 합쳐진 뒤 이런 맛이 날 것 같았다. 갑자기 하천 너머로 엄청난 무리의, 제법 장비를 갖춘, 자전거 라이더들이 지나갔다. 저쪽 삶은 생동하고 내 삶은 관조적인 게 지금 현재 상황과 겹쳐지는 바람에 다시 사소한 상실감이 느껴지려다가, 블랙커피와 초콜릿 과자의 찬찬한 조합으로 인해 갑자기 입에서 깊은 단 맛이 느껴졌다. 그래, 근데 마스크 써서 좋은 점이 뭐더라.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 ‘화장’하느라 시간을 더 썼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은 피치 못하게 아침과 점심 사이, 혹은 점심에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지만, 아침에 하루를 시작했을 때는 ‘화장’하는 시간을 포함시켜야 했다. 그러고 보니 ‘기초화장’은 여전히 하고 있으니, 아니, 덕분에 오히려 여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으니 정확히 말하면 그땐 ‘색조 화장’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지금은 ‘색조 화장’하는 시간이 더 줄었다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진행되던 중에도 여전히 ‘색조 화장’을 하긴 했다. ‘색조 화장’의 넓고 넓은 세계 중에서, 여기까지는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예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선이자 루틴이 있었다. 그러니까 기초화장 후에 ‘비비 크림’을 바르거나 ‘파우더 팩트’를 발라서 피부톤을 정돈한 뒤 입술에 색조를 바르는 것까지였다. 그런데 마스크 착용 덕분에 ‘비비 크림’이나 ‘파우더 팩트’를 바르는 단계가 단축, 아니 생략되었다. 마스크에 자꾸 피부색이 묻어 나와서 불편하기도 했거니와 실리적인 이유로는 마스크 착용 후 눈 아래가 사각지대가 되는 바람에 피부톤 정돈을 하나 마나 한 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루틴이라 코로나19가 한창 진행되던 중에도 그 루틴을 버리지 못했음에도 어느 순간, 하나 마나 한 일이 되었다는 것과 하지 않았을 때 편해지는 바람에 미련을 놓게 되었다. 지금 집에는 사놓았던 색조 화장품 중 ‘비비 크림’과 ‘파우더 팩트’가 줄어들지 않은 채로 쓰임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 ‘색조 화장’ 단계 중 입술에 색조를 바르는 일은, 마스크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 아직까지는 개인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선이자 루틴이라 이건 계속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색조 화장품 중 이건 유일하게 줄어들고 있다.


대신 이상하게도 ‘기초화장’에 쓰는 화장품 구색인 토너, 수분 크림, 영양 크림이라던지 뭐 그런 종류와 ‘기초화장’ 단계에 쓰는 시간은 늘어났다. ‘기초화장’의 세계도 넓고 넓지만 ‘색조 화장’으로 덮어버리면 안 보이는 화장이라 보통 ‘색조 화장’에 신경을 쓰곤 했는데 말이다. 펜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바람에 ‘기초화장’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 일이 작심삼일이 되지 못하고 다시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화장품 광고 중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카피가 유행하면서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 생각난다. 피부에 해로운 ‘색조 화장’을 ‘지우고’ 다음 날 다시 ‘화장’ 작업 루틴을 반복해야 할 본래 피부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였던 것 같다. 나의 루틴은 광고 카피가 아니라, ‘마스크 착용’이 강제적으로 변화를 준 셈이 되어버렸지만 비슷한 강조점이 있는 듯하다.


그렇게 블랙커피와 초콜릿 과자를 다 먹은 뒤, 기분이 좀 나아진 상태로 다시 불편하게 마스크를 쓰면서 마스크를 써서 좋은 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곤 멍하니 하천 너머의 여러 길들을 바라보았다. ‘기초화장’처럼 해봤자 눈에 잘 띄지 않는 루틴도 계속 이어지다 보면 저 길들처럼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까. 그리고는 마냥 관조만 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내 자전거를 세워 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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