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여름에, 삼단 우산과 장우산을 샀다. 삼단 우산은 자주 망가지지만,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니면 유사시에 쓰기가 좋았다. 장우산은 예쁘고 튼튼한 게 많지만 담아둘 곳이 없어서 잘 잃어버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삼단 우산과 장우산 중 뭘 사야 할까, 두 개를 번갈아가며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다가 한참 동안 고민한 뒤 결국 베이지색 삼단 우산과 베이지색 장우산을 사 두었다.
이번 여름 장마철에 큰 비가 왔을 땐 생각보다 반가웠다. 베이지색 장우산을 펼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장우산을 쓸 때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 우산이 뒤집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튼튼하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까만색 천장이 아닌, 베이지색 천장 너머로 툭툭 비 내리는 소리가 지나갈 때도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러다 비가 언젠가 그치겠지 하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가 그쳐도 기분이 좋았다. 베이지색 장우산은 잘 마르는 소재라 장우산을 금방 말린 다음 접어서 지팡이처럼 짚고 다니면 불편하긴 해도 그만큼 존재감이 느껴졌다. 특히 담아둘 곳이 없어서 지팡이처럼 짚고 다니는 번거로움 때문에 자주 잃어버리면서도 동시에 어떤 소품과 같이 보폭을 맞추고 있다는 게 자각되었다.
오늘은 지난밤부터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늦은 아침까지 비가 오고 있었다. 그냥 집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장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덕분에 오늘은 장우산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베이지색 장우산은 생각보다 비가 내리는 날의 우울감을 상쇄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우산을 펼쳤을 때, 우산이 경쾌하게 펼쳐지는 소리에 이어서 베이지색 천장이 시야에 들어오면 그래도 한 발 딛고 다시 다른 한 발을 디딘 뒤, 빗길을 가르고 나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니 말이었다.
우산과 함께 요즘 아지트로 삼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어제오늘 소음에 시달려서 귀가 얼얼하기도 했고, 비 까지 오니까 잠깐이라도 조용히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었으면 했다. 주로 상가 밀집지역에 위치해 있는 그곳은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대에 가면 제삼자에게 눈치 보지 않고 혼자 앉아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곤 했다. 오늘 같은 날도 따뜻한 커피를 한잔 하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커피는 머그컵에 담겨 나왔다.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일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기분과 전혀 상반되는 여유를 주곤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그 기분을 알게 되는 것은 굉장히 의외이기도 한데, 그렇기 때문에 그곳이 나의 아지트이자, 그곳이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커피를 머그컵이 아닌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에 담아 줄까, 그래서 내가 아지트를 잃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따뜻한 커피의 맛과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은, 공간을 오래 탐할 수 있는 카페에서 가능할 것 같으니 말이다.
머그컵에 담긴 커피가 삼분의 일 정도 남아서 차가워질 때쯤, 주변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커피를 급하게 다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워진 커피는 더 쓴 맛이 나고 급하게 마신 터라 머리가 얼얼했지만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다.
곧 평소 자주 다니던 공공 도서관으로 향해서 평소 하던 루틴을 반복했다. 문득 지난밤 비가 내리기 전에 보고 싶어서 찾아둔 책들이 생각났다. 키워드는 ‘유목민’이었다. 해당 키워드로 찾아봤을 때 검색되는 책들이 여럿 있었는데, 정말 역사적인 ‘유목 민족’과 그들이 세운 국가를 다룬 책도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목민에 투영한 에세이류도 있었다. 요즘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목’ 혹은 비슷한 말인 ‘노마드’에 빗댄 책도 있었다. 그중에 어젯밤에 유독 눈에 띈 책은 생각의 흐름이나 변화를 ‘유목’에 빗댄 책이었다.
마침 그 책만 평소 자주 다니던 공공 도서관에 없었다. 그 책을 찾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어떤 ‘비효율’과 ‘만족의 지연’이 주는 완급 조절과 ‘설렘’에 대해 생각했다. 그 책은 두 정거장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른 공공도서관에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더 비효율적으로 차라리 걸어가 볼까 싶었지만 문을 닫을 시간 전에 가느라 그것까지 실행하지는 못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그곳, 다른 공공 도서관, 에 도착했다. 그 책이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책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온 김에 해당 키워드인 ‘유목’으로 검색된 책을 욕심껏 여러 권 빌리려다가 그냥 그 책만 찾아서 나왔다. 이런 비효율 끝에 손에 쥔 책이 단 한 권이라면 뭔가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미련 없이 걸어 나오다가, 문득 비는 오지 않고, 손에는 이 책 말고 다른 뭔가가 잡히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아차, 지팡이처럼 짚어지고 같이 보폭을 두고 있어야 할 베이지색 장우산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베이지색 장우산을 잃어버렸다. 먼저 든 생각은, 우습게도 지금 몇 시인가와 다시 우산을 되찾는데 걸리는 ‘효율’과 ‘비효율’에 대한 것이었다. 동선을 되짚어봤을 때 베이지색 장우산을 되찾을 시간이 있는지, 되찾을 시간이 있다면 찾으려 노력해볼 것인지, 노력하는 일이 얼마나 ‘효율적 일지’ 혹은 ‘비효율적’ 일지에 대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찾아보기로 했다. 계속 손에 두고 있던 때가 언제까지였던가. 자주 다니던 공공도서관으로 되돌아가서 하루 동안 지나쳤던 곳을 다시 되돌아봤다. 베이지색 장우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최후에 안내데스크에 가서 혹시 분실물 접수된 것이 있느냐고 여쭈어보니 오늘은 들어온 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올해 초여름 샀던 베이지색 장우산을 그렇게 잃어버렸다. 비가 오는 날에 험한 길을 나설 때 한 걸음 내딛을 힘을 준 장우산이었는데, 늦가을에 와서 이렇게 잃어버렸다. 아직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다시 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나는 장우산을 잘 잃어버린다. 이번엔 좀 늦게 잃어버린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