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는 곧 실패주의로 연결된다
대학 때 나이가 두 살 많은 동기가 있었다. 조금 늦게 들어온만큼 학위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다전공이 가능했는데 보통은 복수전공까지만 하는데 그 동기는 전공을 세 개나 선택해 학위 따는 것에 도전했다.
언론홍보학과 수업을 함께 들었을 때의 일이다. 팀 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동기는 매번 자신이 맡은 과제를 해오지 않았다. 과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팀원들이 그 동기의 몫까지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지각도 점점 잦아졌다. 왜 그렇게 과제도 해오지 않냐는 질문에 동기는 말했다. “꼭 해오려고 했는데 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고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 결국 그 동기는 수업 중간에 결석을 하기 시작했고 해당 수업에서 F학점을 맞았다. 그 수업뿐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수업에서 F학점을 맞았고 1학년 1학기부터 학사경고를 받았다.
동기는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렸기에 주어진 시간 안에 과제를 다 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더 최악은 자신이 이미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려우니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완벽하게 듣겠다며 중도에 수업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남들보다 일년 반이나 더 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시간관리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완벽주의’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에 빠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완벽한 게 뭐가 나쁘냐고 말한다면 맞다. 완벽주의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완벽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생각 외로 많은데다 그렇게 시간을 쓰더라도 완벽이라는 것 자체가 이루기 어렵다. 게다가 완벽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나는 자격증 시험에서 단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물론 국가고시처럼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지만 국가자격시험에서도 그랬고 금융관련 자격증 취득에서도 그랬다. 공부기간도 길지 않았다. 짧게는 한 달, 길게 공부한 것도 네 달이 채 넘지 않는다. 적은 시간으로 단 한 번씩의 시험으로 자격증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비법은 단 하나였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 말이다.
자격증 시험은 대부분 절대평가다. 그리고 합격선은 과락 없이 전 과목 평균60점이다. 조금 더 난이도가 있는 시험도 평균 70점이면 된다. 따라서 시험점수의 목표가 100점일 필요가 전혀 없다. 목표는 60점 합격시험에서는 60점에서 65점 사이, 70점 합격시험에서는 70~75점 사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국가기술자격 시험의 필기시험 점수는 고작 62점이었다. 하지만 합격했으니 100점 맞은 사람과 나의 차이는 없었다. 단지 결과는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나뉘니까.
시간관리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그동안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시간관리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하자. 연간목표를 세우고 주간과 일간목표를 세웠다. 삼일 정도는 아주 의욕적으로 계획된 일정표대로 시간을 썼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의도치 않게 피로 혹은 지인과의 만남으로 인해 일정대로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이번 일주일은 글렀어. 다음 주부터 완벽하게 다시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시간관리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완벽주의의 다른 말은 실패/포기주의인지도 모르겠다.
완벽주의는 독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단 한가지의 역할만 하고 살지 않는다. 집에서는 부모나 자식, 나가서는 프리랜서 혹은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또 사위나 며느리의 역할이 있기도 하고 종교적인 역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루 24시간은 동일하게 주어지는데 이러한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잘 해낼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절대 아니다. 특히 프리랜서를 선택한 이유가 아이양육과 돈벌이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완벽주의는 버려야한다.
나는 아이양육 때문에 프리랜서가 되지는 않았지만 프리랜서가 된 후에 아이를 갖게 되면서 완벽주의의 함정에 괴로워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기에 당연히 절대적으로 시간은 빠듯했다. 전업주부보다 살뜰하게 아이를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초반에는 아이를 두고 일을 하러 나간다는 죄책감 때문에 일을 하고 피곤한 날에도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겠다고 재료를 삶고 다지기부터 만드는 일까지 하려고 애를 썼다. 몸은 피곤했고 수면부족으로 커피를 하루에 7잔씩 마시는 경우도 많았다. 시판 이유식을 사서 먹여도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도 엄마가 아이의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야 완벽한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힌 시기가 있었다. 멍청한 생각이었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100점짜리 엄마가 되기 위해 피곤에 절어 괴로워하는 엄마보다 여유를 가지고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70점짜리 엄마가 더 만족감을 줄 터였다.
그 후로는 욕심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칼질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유식을 만드는 대신에 잘 다져진 야채와 고기를 구입해서 이유식기에 넣고 뚝딱 만들었다. 시판이유식을 먹이는 날도 있었다. 대신 남는 시간에 아이와 좀 더 눈을 맞추고 함께 있어주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아이에게도 좀 더 부드럽게 대할 수 있었다.
앞에서 이미 파레토법칙도 다루었지만 목표를 이루는 데는 100이란 힘이 가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이룰만큼의 시간만 기울이면 된다. 그게 20%의 집중력이든 70%의 노력이든 말이다. 시간관리를 하는 목적 역시 여기에 있다.
*위 글은 (미래경제뉴스: http://www.mirae.news/news/curationView.html?idxno=4755)에 먼저 기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