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스타카펠 빙하-요쿨살롱
빙하투어를 하기 위해 스카타펠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헤매다 보니 산 위로 올라가 버렸는데 버스 기사가 여기를 어떻게 올라왔냐며 올라오면 안 되는 곳이라고, 표지판 같은 거 못 봤냐고 얘기한다. 우리도 그런 거 본적 없고 누구도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큰소리 쳤더니 알았다면서 여기는 버스로만 올 수 있는 곳이니까 내려가라고 해서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승용차 출입 금지 표지판이 있었는데 우리가 못보고 지나친 거였다. 버스기사가 얼마나 어이 없었을까 생각하니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고 부디 우리가 한국인임을 눈치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리셉션으로 찾아가서 빙하투어를 신청하니 중국계 미국인 가족 4명과, 유럽 청년 2명, 그리고 우리 3명으로 한 조를 짜서 출발했다. 가이드는 스웨덴 출신의 덩치 큰 아가씨였는데 아시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눈치다. 아마도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겠지.
가이드가 브리핑을 하는데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도착했을 때쯤 아이슬란드 어딘가에서 화산이 분출되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일반적으로 1년에 약 천 번 정도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최근 이틀간은 1,600번 정도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화산 폭발 위험을 나타내는 경보가 4단계까지 있는데, 현재 오렌지 단계로서 폭발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하는 3단계라고도 한다. 듣다보니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가이드 아가씨가 아무렇지도 않게 쾌활한 표정으로 그런 얘기를 하니까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럼 우리는 보험은 들어있는 거겠죠?”라고 물으니,
“글쎄요, 당신은 들었나요? 하하”라고 오히려 나에게 되묻는다. 누가 보험 따위를 상관하냐고, 별 소리 다 듣겠다는 투로 말한다. 유쾌한 아가씨다.
빙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 올라가야 하는데 빙하 이름이 fak 어쩌고 하는데 정확히 못 알아들어서 내가 “Fuck what?”이라고 물으니 가이드들이 낄낄대며 대며 웃는다.
빙하는 도로에서 한참 들어간 위치에 있었는데 원래는 도로까지 빙하가 이어져 있었다가 뒤로 점점 물러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빙하를 좀 올라가다 보니 태양전지 판과 조그마한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장비가 있었는데 가이드가 그 장비를 가리키며 한숨을 섞어가며 얘기했다.
“이게 뭔지 아는 분 있으세요? 없나요? 이건 바로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랍니다. 빙하 투어를 와서 사진을 찍고 바로 SNS에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이런 곳에까지 와이파이 장비를 설치했답니다.”
하도 심각하게 얘기하고 심지어는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어서 한번 연결해볼까 살짝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가이드가 장난친 거였다. 실제로는 빙하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탐지하는 계측기라고 한다.
아이슬란드 빙하의 특징은 화산재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는데 얼마 전 본 인터스텔라의 행성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빙하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어서 반가웠다.
“예전에 이 지역은 호빗들이 평화롭게 살던 샤이어 같은 곳이었지만 화산 분출 이후 모르도르로 변해서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곳이 되었어요.”
라며 반지의 제왕에 빗대어 재미있는 비유를 해 주었다.
빙하에 여기저기 밤송이처럼 이끼가 둘러싼 돌맹이들이 있었는데, 이끼가 돌맹이의 한 면을 감싸는데 대략 40년 정도 걸리고 반대편까지 다 감싸려면 80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대단한 어르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끼 속에는 Water bear라고 하는 미생물이 사는데 펄펄 끓는 물이나 우주에서도 생존이 가능해서 실질적으로는 죽지 않는 불사조라고도 한다.
“이끼 돌맹이를 집에 가져가도 되나요?”라고 내가 묻자,
“이끼 돌맹이를 가져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 대신 이름을 붙여주면 내가 가끔 와서 돌봐 줄께요. 아이슬란드에서 마음껏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얼음과 화산재예요. 어차피 금방 리필 될 테니까요..”
이라며 유쾌하게 대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히 긍정적인 아가씨라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압력으로 눌린 빙하의 얼음은 잘 녹지 않아서 위스키에 넣어 먹으면 최고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얼음 조각을 챙겨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스웨덴 가이드 아가씨와의 유쾌한 빙하탐험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요쿨살롱 빙하호수 쪽으로 이동했다. 빙하가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유빙을 볼 수 있는 지역인데 해질 무렵에 가서 석양과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에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자볼까도 생각했지만 잘못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빙하 호수 속에 물개가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도 살고 있을 거 같아서 낚시를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 춥기도 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를 망치는 일이 될까봐 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