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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n 09. 2019

알튀세르의 독법과 정치적 무의식

2019년 6월 9일

알튀세르는 <자본론을 읽는다> (1991)에서 자본론을 읽는 문제는 독해 방법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언급하며, '말해졌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 그리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말한 것'에 대해 언급한다. 또한 그는 이것을 가시성과 비가시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알튀세르의 자본론 독법은 텍스트를 '결여'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었지만 텍스트 내부에서 외부로 표현되지 못한 대상과 관계를 연결짓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독법을 처음 수행한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고전경제학이 제기한 노동의 가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주목한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노동(  )의 가치는 노동(  )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의 가치와 같다."

그런데 고전파의 대답에는 하나의 결락이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이라는 '대상'과 그것을 재생산이라는 생산 '관계'에 주목한다. 즉 '노동'이라는 '대상'과 재생산이라는 생산 '관계'가 사이에 분명 작동하면서도 비가시적인 대상을 찾아내는데 바로 노동력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위의 문장을 읽는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의 유지와 재상산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의 가치와 같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고전파의 노동가치론에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비가시적 대상인 노동력을 내부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생산관계를 다시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자본론을 구성해가는 것이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데 독법의 중요성을 시작부터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알튀세르의 독법은 스피노자의 사유와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실체와 속성의 관계가 전체론적 총체성의 관점이 아니라 표현적 총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제시된다.

여기서 표현적 총체성이란 부분들이 전체의 일부를 구성하기 위한 부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은 이미 전체를 담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한다. 부분과 전체는 둘 사이에  관계론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마르크스가 노동력이라는 '속성'을 통해 노동이라는 '실체'를 다시 규정하며 노동과 생산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과 같다.

알튀세르가 <자본론을 읽는다>에서 보여준 독법은 이후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라는 텍스트에서 구체적으로 이론화되며 그 특유의 갈등론적 관계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피에르 마슈레는 형식주의와 구분되는 구조주의에 대해 해명하는데 이것의 핵심은 관계론적 사유의 맥락에 있다. 구조는 형식적 환원이 아니다. 거칠게 정의하면 구조주의란 실체와 속성 사이에 작용하는 힘들에 대한 관계론적 해명인 것이다. 이는 들뢰즈의 논문 <구조주의란 무엇인가>에서도 해명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굴절이 일어나는데 미국의 마르크스 이론가이자 저명한 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은 피에르 마슈레의 독법에 영향을 받고 그 유명한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저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제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용어가 학계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알튀세르의 독법이며 피에르 마슈레의 정식화에 기초한다. 그리고 정치적 무의식이란 용어의 생산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스피노자의 체계에 대한 이해와 구조주의적 사유의 맥락이 없는 사용은 오독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용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독법 자체의 근원이 알튀세르의 스피노자 구조주의적 관계론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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