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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n 18. 2021

칼날 위에 서는 삶

-소토자키 하루오 감독의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 (2021)

  영화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 (2021)을 보았다. 이 작품은 혈귀에게 가족들이 살해당한 카마도 탄지로가 자신의 가족들을 살해한 원수들에게 복수하고 혈귀가 된 여동생 카마도 네즈코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소년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혈귀와 그들을 사냥하는 귀살대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다루고 순수한 소년이 서서히 강인한 사무라이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소년 만화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 작품이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몇몇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적인 주장을 했다. 예컨대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이 하고 있는 귀걸이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일장기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텍스트 내부의 구조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이 작품을 일본 사회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표현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번에 극장판으로 상영된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은 일본 근대 세계에 대한 회의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근대 문명의 상징인 기차가 '오니'로 뒤바뀌고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와 적대 관계를 이루며 결과적으로 혈귀와의 전투 중 기차가 선로에서 탈선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니로 변한 기차가 탈선한 이후 최강의 혈귀가 뒤이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아니라 사라진 일본 전통 사회의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는 시각이 더 적절해 보인다.     

   

  예컨대 영화 「드라큘라」 (1993)는 중세 사회의 상징이자 마력을 가진 드라큘라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갔다가 근대 산물인 기차를 타고 총을 든 인간들에게 사냥을 당해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중세의 상징인 드라큘라의 죽음은 더 이상 신비주의적인 신화적 세계가 사라진 계몽된 근대 사회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반면 이 작품은 그 구도에서 있어서 반대이다. 오니로 변한 기차가 탈선한 이후 흡혈귀인 오니가 등장하고 혈귀를 막기 위해 사무라이 쿄주로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 즉 영화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의 경우 근대 문명에 대한 약속은 선로를 이탈하고 오히려 과거의 사라진 일본의 전통 사회의 아름다움이 쿄주로의 죽음을 통해 미화된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은 일본 사회의 감춰진 제국주의 욕망을 보여주는 극우적인 작품이 아니라 현재 사라진 일본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향수가 짙게 가시화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일부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다. 어쩌면 일본 소년 만화의 문법을 과잉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독립적인 ‘극장판’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귀멸의 칼날」 시리즈를 전부 보지 않아서 쉽게 판단할 수 없으나 적어도 무한열차편은 그렇게 느껴진다.     


  영화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쿄주로는 자신의 목숨을 다해 약자를 지키고 후배들의 방패가 되며 손쉬운 악의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무인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분명 이러한 정의로운 태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교주로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일본 사무라이 정신과 죽음을 과도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으로서 이 작품은 현재의 현실이 아닌 과거의 역사적 기억을 깊은 향수 속에서 소환하며 그 내부로 걸어들어 간다.      


  과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 (1954)에서 점차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져가는 세계 앞에서 허망해 하는 사무라이들의 태도와 영화 「귀멸의 칼날 : 무한극장편」에 등장하는 사무라이들의 태도를 비교하면, 두 작품 사이의 정서적 감각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은 사무라이의 죽음과 그들의 삶을 다루지만 과거의 향수 속으로 함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의 거리를 객관적으로 감각하며 그것을 마주한 주체의 심연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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