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우일 Jan 21. 2024

사랑에 관한 두 가지 관점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 (2023)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세상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마 가장 익숙한 로맨스 장르의 구조는 재벌남과 캔디형 여주인공의 러브스토리일 것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재력의 차이로 결정되는 신분의 벽과 현실의 장애를 극복하고 신분 상승의 욕망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 기껏 신분 상승의 도구로 쓰이는 이야기라면, ‘거래와 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 드라마와 무엇이 다르겠나. 이런 점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가 흔한 재벌남과 당찬 캔디형 여주인공 사이의 러브스토리였다면 나에게 크게 감응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 드라마가 많은 러브스토리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정상에서 추락한 아이돌과 가난한 대학생 사이에 벌어지는 현실과 낭만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재벌남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캔디형 여주인공의 사랑이 완성되는 이야기 대신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기 존재를 걸어야 하는 위험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두나!>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모든 고통을 감싸 안을 것인가라는 이두나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작의 웹툰 <이두나!>는 철저히 원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냐하면 이 웹툰은 원준의 관점을 중심으로 그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이 동시적으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원준의 첫사랑 김진주는 과거, 이두나는 현재, 원준을 짝사랑한 최이라와의 결혼은 그의 미래가 된다. 다시 말해 웹툰 <이두나!>는 원준을 중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시간이 동시에 교차하며, 사랑은 언제나 상대의 중핵에 도달하지 못하는 실패의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드라마 <이두나!>는 이두나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드라마는 원작 웹툰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개된다. 드라마 <이두나!>는 물론 원준과 이두나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하지만, 내적 상처를 지닌 이두나의 성장스토리가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원준이 이두나의 아이돌 복귀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다면, 오히려 이두나는 자신의 꿈과 더불어 위험을 감수하고 원준과의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라마 <이두나!>는 원작 웹툰과 달리 이두나의 시점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나는 드라마 <이두나!>에서 이두나가 보여주는 낭만적 열정이 일종의 판타지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두나가 보여주는 의지의 열망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추락할 줄 알면서도 저 끝까지 함께 가보는 것, 난 이것이 초월의 욕망이자, 진짜 욕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두나의 사랑을 응원하지 않는다면, 삶은 그저 무의미한 시간에 불과할 것이다.


  웹툰 <이두나!>가 사랑이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회의주의자의 이야기라면, 넷플리스 드라마 <이두나!>는 사랑이란 의지의 낙관으로만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난 전자의 사실보다 후자의 열정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삶이란 실패를 알면서도 그 실패에 가까워지는 의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삶의 과정을 우리는 낭만적 열정이라고 부른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사랑 예찬』 (2010)이라는 저서에서 말했듯 사랑이란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는 저 끝까지 서로를 밀어 넣는 것이다. 서로의 중핵에 도달할 수 없지만, 그곳으로 나아가 나 자신이 산산이 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이 없다면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실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