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lie Jan 05. 2024

[영화] 결혼이야기

2020. 6. 17

  두 남녀 주인공의 상반되는 성격이나 성향을 말해주듯, 미국의 동쪽과 서쪽이 영화의 화두로 등장한다. LA에서 온 여자와 뉴욕의 남자. 사랑에 눈이 멀어 남자를 떠나지 못한 여자가 뉴욕에서 아들을 낳고 10년 동안 살다가 이제 남자를, 뉴욕을 떠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들의 양육권을 두고 LA와 뉴욕에 대한 삶의 터전을 다투는 이혼 소송에 관한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섬세한 연출과 남녀 주인공의 담담하고 때로 치열한 연기를 보면서 LA와 뉴욕의 물리적 거리만큼 멀고 먼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하면서 여자는 남자에게 의존하고, 자신의 인생 대신 남자의 목표를 위해 애쓰고 희생한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여자와 아들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남자의 목표 달성과 그로 인한 성공이었을 테니까. 자신의 꿈이나 인생을 주장하기엔 아직 불안정한 남자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고, 위로나 이해에 대한 욕구는 그저 투정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어쩌면 스스로 남자의 인생에 자신을 내던진 여자의 결말일 수도 있다. 여자가 기회를 잡고 LA에 정착하게 되면서 남자와의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데, 남자는 여자가 왜 LA로 오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한다. 여자는 차라리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거라면 좋겠다고 괴로워한다. 여전히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이혼을 요구하는 건 엄청난 모순이지만 그만큼 여자의 외로움과 고립이 극대화되어 느껴진다.


  결국 여자와 남자는 이혼의 절차를 밟게 되고, 여자는 둘만의 대화보다 변호사를 선택한다. 감정의 골이 깊지 않은 이혼에 왜 변호사를 선임해서 둘 사이에 개입시키려 했을까 의문이었다. 그러다 합의가 필요해 남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남자는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10년간 살면서 분명 여자는 남자와 대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여자의 허전한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다독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와의 대화나 합의 대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상황이 예기치 않게 흘러가자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참다못한 남자가 물었다.     


  “어떻게 시작하는데?”

  (침묵)

  “내가 왜 LA에서 살고 싶은지 이해해?”

  “아니,”

  “그렇게 말하면 (어이없는 웃음과 한숨) …… 찰리, 그런 식으로 나오면 도움이 안돼.”

  “진짜로 몰라서 그래.”


  10년을 함께 산 부부의 대화치고 매우 엇나가고, 심각한 대화치고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그리고 우리 부부와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결국 여전히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의 꿈을 더 사랑하는 남자는 이혼을 한다. 여자는 LA로 남자는 뉴욕으로 돌아가지만, 서로 아들을 돌보며 관계를 유지한다. 영화의 말미, 어쩌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날아 갈 날개를 단 남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등장하고 여자는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남자를 마주한다. 남자의 풀어진 신발 끈을 무심하게 묶어줄 만큼 여전히 서로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지만, 그 정도쯤은 미련이 아닌 추억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롱테이크 속에 긴 여운으로 담긴다.


  만약, 여자가 물었을 때 남자가, 그동안 당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서 미안해 라든가, 당신이 참 힘들고 외로웠겠다 라든가 하는 어쩌면 진부한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아마 여자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남자 앞에서 쏟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마음들을 위로받고 어쩌면 이혼 따위 상관없다고 무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두 사람의 답답한 대화 끝에 남자의 저주 같은 오열을 위로해준 건 오히려 여자였다. 남자는 대화뿐만 아니라 위로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자의 마음 정리는 아마 그때 다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끝이 파경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관계의 새로운 국면이라고 생각했다. 신발끈을 묶어주고 돌아서는 여자의 가뿐한 몸짓에서, 환하게 웃는 미소에서 새로운 인생으로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남녀 주인공의 이혼이 이처럼 후련한 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 배변연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