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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의 May 23. 2022

산통 : 피, 땀, 눈물

현대적 무통분만이 바꾼 탄생의 풍경

최초의 무통분만


19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활동한 외과의사 로버트 리스턴은 188cm 장신에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다. 이 야수 같은 의사는 절단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조수들을 동원해 수술대에 고정했고 그 자신도 환자의 몸부림을 왼팔로 단단히 제압한 채 억센 오른팔로 칼질을 했다. 물론 동시대의 다른 모든 수술과 마찬가지로 마취 따위는 없었다. 환자가 겁에 질려 화장실로 도망가면 이 거구의 사내는 문짝을 박살내고, 그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환자를 도로 수술실로 데려왔다. 붕대를 메느라 자신의 양 손이 필요할 때면, 피 묻은 칼은 입에 물었다.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빠른 칼잡이’라는, 서부활극에서나 등장할 법한 별명으로 명성이 높았던 리스턴은 한 쪽 다리를 2분 30초면 절단할 수 있었지만, 너무 서두르다가 실수로 환자의 고환을 같이 잘라내 버리기도 했다.


고어 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런 수술은 사실, 위생과 감염에 대한 지식이 쌓이기 전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일견 합리적인 면도 있다. 마취와 소독은 현대적 수술에서 필수적인 두 가지 주춧돌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기 이전 시대의 수술에서, 속도는 곧 생명이었다. 수사적인 생명이 아니고 말 그대로의 생존이었다. 수술이 오래 걸릴수록 출혈이 더 많아졌고, 비명을 지르는 환자의 고통은 길어졌다. 가능한 빨리 끝낼수록 환자의 생존률이 비례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니 이 지나치게 빠른 칼놀림은 단순히 묘기가 아니고, 당시에 택할 수 있는 나름 최선의 수술 방식이기는 했다. (물론, 리스턴에게 고환이 날아간 환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도한 부분만 잘라낼 수 있을 만큼 정확하기까지 했다면 더 좋았으련만…) 그래서 재빠른 칼잡이 로버트 리스턴은 당대를 주름잡던 가장 유명한 외과의 중 한 명이었다.


이 명망 높은 로버트 리스턴의 유방 절제술을 참관한 젊은 의학도 제임스 심슨은 수술 모습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섬세한 편이던 제임스 심슨에게는 환자의 비명과 고통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가혹함의 절정이었다. 마취가 통용되는 현대적인 의료 현장에서도 수술 중 솟구치는 피를 보고 기절하는 의대생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보면, 19세기 외과의사는 정말이지 지나치게 강건한 담력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그는 수술 받는 환자가 감내해야만 하는 터무니없는 수준의 통증에 진절머리를 치며, 의학에서 법학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의과대학의 스승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수술 중 통증을 없앨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은 없었다. 이 문제로 깊이 고민하던 제임스 심슨이 훗날 최초의 무통분만을 시도한 산부인과 의사로 역사에 남게 되므로, 끔찍한 수술을 목격하고 받은 트라우마는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훌륭한 자양분이 된 셈이다. 


물론 제임스 심슨이 시도한 무통분만이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의 무통분만은 아니다. 최초의 무통분만은 클로로포름 흡입마취로, 손수건에 마취약을 적셔서 진통 효과를 꾀했다. 에테르가 마취물질로 이제 막 각광받기 시작할 때, 보다 쓰기 간편한 화학물질을 찾기 위해 애쓰던 제임스 심슨은 동료 몇 명과 클로로포름을 들이마시고 기절했다가,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고 깨어나는 것으로 효과를 확인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연구 윤리 기준으로 보기엔 아찔하기 그지없다. 이후 제임스 심슨은 출산하는 산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범죄 소재 창작물을 보면, 범죄자가 납치나 제압을 위해 약품을 적신 손수건으로 범행 대상의 코와 입을 막는 장면이 흔히 등장한다. 손수건을 통해 기체를 들어마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의식을 잃고 풀썩 쓰러진다. 이런 장면이 클로로포름 마취를 소재로 삼은 것이다. 당연히 현대에는 클로로포름보다 위험성이 적은 마취제가 개발되었으므로 지금은 의료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다. 


반면 오늘날의 무통분만은 척추 주변의 공간에 관을 꼽아 마취액을 삽입한다. 정확한 의학 용어로는 ‘경막외 마취’이다. 허리 부근 척추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이란 막의 외부 공간에 마취액을 삽입한다. 정확하게 삽입하기 위해서 마취시술이 끝날 때까지 산모는 모로 누워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있어야 하는데, 배가 풍선처럼 부른 만삭의 임산부에게 쉬운 자세는 아니다. 마취가 잘 되었다면, 하반신의 통증은 잘 느끼지 못하게 되지만 의식은 또렷하다. 산모는 상반신을 움직일 수도 있고, 아기를 산도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한 힘주기도 할 수 있다. “아니, 선생님. 무통주사라면서요? 저 지금 아픈데요? 잘못된 거 아닌가요?” 간혹 무통주사를 맞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리 설명을 해준다. “무통주사가 통증을 많이 줄여주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게 만들기는 어려워요. 특히 허리로 오는 진통이라든지요. 아무리 약발이 잘 받아도, 막판에 수박이 다리 사이에 낀 느낌은 들 겁니다.” 게다가 무통 주사를 진통 초기부터 놓는 것은 분만 진행 속도를 더디게 만들 수 있어서, 자궁문이 어느 정도 열린 이후에 시술을 진행하게 된다. 그 전까지 진통을 견디는 것은 안타깝지만 오롯이 산모의 몫이다. 그러니 무통주사에 ‘없을 무無’ 글자가 들어가는 것은 별로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많은 산모들은 무통주사가 통증을 크게 줄여주는 것에 만족한다. 오죽하면 무통주사 시술을 받고 진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일컬어 ‘무통천국’이라고 부르겠는가.




여왕, 산통을 거부하다.


흔히들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고뇌를 ‘산통’에 비유하는 것처럼, 아기 낳는 일의 통증은 고통의 대명사로 예로부터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출산에 관련된 신화나 민간 전설에는 산고를 강조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게 마련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출산의 신 에일레이티이아가 등장한다. 온갖 삼라만상에 신이 있다고 믿은 그리스 사람들이 출산에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의 관점에서 재미있는 설정은, 에일레이티이아가 허락해야만 아기가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옛 사람들의 생각으로, 분만이 산모 혼자의 능력만으로 수월하지 않은 일인지라 신이 매 출산마다 개입해서 조력하는 역할을 부여한 한 셈이다. 그래서 헤라클레스의 탄생 설화를 들여다보면, 바로 이 출산의 신이 허락하지 않아서 헤라클라스의 어머니인 알크메네는 무려 9일간의 지독한 산통을 겪는다. 9시간 아니고 9일이다. 무통주사도 없던 시대에 말이다! 거 참, 출산의 신이라는 양반이 모질고 지독하다.


물론 산통에 대한 공포는 아득한 고대 그리스에만 존재하던 것이 아니고, 제 아무리 지체 높은 여성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임스 심슨의 클로로포름 흡입법이 분만 시 통증을 줄이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이에 관심을 보였다. 물론 주변의 반대가 있었다. 하나는 존귀한 여왕께서 혹시 모르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인 마취 분만을 시행하는 것을 염려를 표하는 의학적 입장이었다. 나머지 한 가지는 종교적 입장이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신성한 산통을 회피하는 것이 불경하다는 입장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제임스 심슨 역시 신학적 이유를 들어 무통분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창세기 구절에 하느님이 아담을 '잠재워' 그 갈비뼈를 취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마취를 뜻한다는 설명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후계를 생산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곱의 아이를 낳으면서 이미 갖은 고초를 격을 대로 겪어본 빅토리아 여왕은 이번에는 꼭 마취를 받길 원했다. 1853년, 여왕은 클로로포름을 들이마시고 여덟 번째 아이인 레오폴드 왕자를 무사히 출산했다. 여왕은 크게 만족했을뿐더러, 어찌나 기뻐했는지 이번 출산은 클로로포름의 축복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무통천국’을 외친 원조 중의 원조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다. 여왕은 그에 이어서 아홉째 막내도 클로로포름을 써서 분만했으니, 그 덕에 종교적 전통에 가로막혀 확산이 지지부진하던 무통분만이 ‘여왕식 출산법’으로 날개를 달았다. 오늘날에도 소위 ‘셀럽’이 받은 치료는 유행을 타기 마련이다. 제왕절개의 어원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고대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가 실제로 제왕절개로 태어났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무통분만을 시행한 최초의 유명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분만이 확산되기 위해서 종교의 벽을 넘어야 하긴 했지만, 사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적은 통증만을 겪고도 새 생명이라는 고결한 결실을 얻는 것이 일종의 ‘반칙’이라는 인식이 없지는 않다. 고통을 줄이려는 인위적인 방법이 전통적인 모성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19세기의 영국 여왕이 손수건에 대고 들이마시던 클로로포름 흡입마취보다 훨씬 안전하고 진일보한 경막외 마취법을 갖춘 곳이 오늘날의 병원이다. 하지만 산모 본인 혹은 가족들이 무통주사를 놓고 갈등하는 모습은 간간이 볼 수 있다. 아기를 낳으면서 안 아프려고 주사를 맞는다는 것이,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라는 뜻이 아닐까? 무통주사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시행되는 서비스이므로, 의사가 맞을지 말지 정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무통분만을 고려할 때에는 산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분만에는 어째서 커다란 통증이 수반되는지 한 번쯤 헤아려본다면 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기 낳기 왜 이렇게 아파요?


통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손상에 관련한 감각이며, 불쾌함을 동반한다는 점 때문에 생명의 존속에 기여한다. 아플 만한 상황을 적절하게 감지하고, 이를 피하는 것은 개체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따라서 통증이라는 감각이 생물체에게 부여하는 이득이 크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반면, 어마무시한 크기의 산통의 존재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기를 낳는 일은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데, 일반적으로 출산은 지극히 고통스럽다. 산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 중 언제나 최상위권에 손꼽힐 정도의 통증이다. 불에 데인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미처 뜨겁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낭심을 직격으로 걷어차여본 사람이라면 살아 생전 두 번 다시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생물체는 고통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급소 가격, 화상, 사지 절단은 개체에게 치명적이고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피해야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산통이라면? 종족 번식을 위해선 회피할 수가 없을 뿐더러, 큰 산통이 존재하는 것이 개체에게 유리하지도 않다.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다른 동물과 사람의 신생아기를 비교해보자. 간혹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갓 태어난 새끼 사슴이 비척대며 걷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과 유사한 영장류의 새끼들도, 태어나자 마자 어미 등에 붙어서 털을 쥐고 매달려 있을 정도의 발달은 이미 진행되어 있다. 이렇듯 우리와 비슷한 포유류들은 긴 임신 기간을 거쳐 크고 무거운 뇌를 가지고 태어나므로 ‘조숙성 포유동물’이라고 부른다. 이미 제법 발달이 된 상태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반면 갓난아기도 9개월이란 긴 임신 기간을 거쳤고 340g이라는 큰 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보면 애처로울 정도로 무기력하다. 혼자서 매달리거나 걷기는커녕 겨우 젖 먹고 트림하는 것까지 24시간 보호자의 손과 눈이 필요하다. 갓난아기가 새끼 사슴처럼 혼자서 서고 걸을 수 있거나, 새끼 원숭이처럼 엄마 등에 혼자서 매달릴 수 있다면 육아가 얼마나 간편해질지 상상해보라! 대신 아기는 태어난 이후에도 태아 상태와 마찬가지로 맹렬한 속도로 성장하고 발달한다. 생후 1년까지는 마치 자궁 속에서처럼 빠른 속도로 뇌가 자란다. 그리고 12개월쯤이 되어야 비로소 성체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보행한다. 마치 임신의 연장인 것처럼 보이는 이 생후 1년이 대단히 인상적인 만큼, 학자에 따라서는 인간의 임신 기간이 실질적으로는 자궁 속 9개월 + 자궁 밖 12개월, 합쳐서 도합 21개월이라는 주장도 있다.


상대적으로 미숙한 인간 신생아라는 독특한 현상에 대한 설명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진화에 기댄 가설이다. 소개하기 전에 잠시 양해를 구하겠다. 인간의 몸은 수백만 년 전부터 진화해왔으므로, 까마득한 시기의 정보는 빈약한 화석 증거만 남아있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인과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인 증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명력이 높은 가설 두 가지는 한 번쯤 들어볼 만 하다. 하나는 머리 크기에 관련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인류가 생물학적 진화를 거치며 뇌의 용량이 점점 커졌고, 이족보행을 가능케 하는 골반뼈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비대해진 머리가 골반뼈의 크기라는 물리적 제약을 통과해야만 다음 세대가 태어날 수 있다. 즉 아기의 머리가 산도를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지점에서 – 그 태아의 미성숙함에도 불구하고 - 분만이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영양 가설이다. 만삭에 가까워질수록 태아에게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에, 산모가 임신을 버틸 수 있는 한계시점에서 분만이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의 새끼는 1.8k이며 고릴라의 새끼는 2kg이다. 반면 인간 여성은 고릴라보다 몸집이 작은데 평균 3.4kg의 신생아를 낳는다. 영장류들이 보통 어미 체중의 3% 질량의 아기를 낳는 반면, 인간은 어미 체중의 6% 정도를 차지하는, 큼직하고 포동포동한 신생아를 낳는다는 사실이 이 가설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무통주사, 맞을까요 말까요


어느 설이 사실에 더 부합하는지, 혹은 둘 다 우리의 분만 양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아직까지 알 수 없다. 다만 두 이론 모두 같은 맥락에서는 비슷하다. 아기는 뱃속에서 가능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가 한계에 가까운 시점에서 지극히 가까스로 세상에 나온다. 그렇다면 아기가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이유와, 사람이 겪는 산통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가 동시에 설명이 된다. 인간의 해부학적 한계와 태아의 두개골 크기를 고려했을 때, 분만은 그 자체가 제법 무리한 일이다. 아기 머리뼈가 산모의 골반에 꽉 끼워지고, 자궁 근육은 엄청난 힘으로 수축해야 아기를 조금씩 산도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다. 게다가 산도는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시골길처럼 휘어 있다. 인류가 이족 보행을 하면서 척추와 골반의 각도도 변했기 때문에 터널은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아기는 좁은 통로 속에서 요리조리 몸을 비틀고 회전해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다. 편차가 다소 있기는 하나,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격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다른 동물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진통의 강도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힘들지만, 진통에 걸리는 시간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사람의 분만이 좀 더 어려운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인간 산모는 첫 출산에 평균적으로 9시간, 두 번째 출산부터는 보통 6시간 정도의 진통을 겪는다. 반면 다른 영장류 친척들은 수 시간 안에 새끼를 낳는다. 400-200만년 전에 존재했던 우리의 선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는 450g에 불과했지만,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뇌 용량은 1350g으로 3배나 커졌다. 추가적인 화석 증거가 필요하긴 해도, 아마도 인류 역사에 걸쳐서 점점 큰 머리의 아기를 낳는 일은 점점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공포와 불안은 통증을 악화시킨다. 많은 경우에 출산이란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미지이자 두려움의 순간 중 하나이다. 다행히 마취의학의 발달로 통증은 어느 정도까지는 극복 가능한 문제가 되었다. 이 선택의 정답은 없다. 드물긴 하지만 무통주사 시술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가 득과 실을 따져서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산통이란 것이 ‘본래적으로 반드시 존재해야만 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견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 진화의 흔적과 타 동물과의 비교를 통해 과학적으로 살펴본 바, 인간 종족 특유의 격렬한 산통은 일종의 부산물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산통의 다양한 차원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공포 속에서 막연히 고통받지 않도록, 그리고 탄생이란 축복의 순간이 더 빛나도록 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아르놀트 판 더 라르, 메스를 잡다, 을유문화사(2018)

로버트 마틴,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궁리(2015)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에이도스(2017)

Wittman AB, Wall LL. The evolutionary origins of obstructed labor: bipedalism, encephalization, and the human obstetric dilemma. Obstet Gynecol Surv. 2007 Nov;62(11):739-48. doi: 10.1097/01.ogx.0000286584.04310.5c. PMID: 1792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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