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를 포기한 적이 없다

통제가 남긴 자아의 축소

by 한단단

분노가 동반된 위협 상황이

자주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이의 시간들 속에서

내 몸은 이미

나를 줄이는 쪽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간헐적 공격성은

상대를 한 방에 무너뜨리기보다는

자기 선택을

하나씩 포기하게 만든다.


자기 결정권을 축소시키며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서서히 훼손하기 시작한다.


말을 돌려서 하게 됐고

부탁 대신 설득을 선택했고

불편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알아서 피했다.


이건 굴복이 아니라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신경계의 자동 반응이었다.



뇌는 기억한다.

어떤 선택 뒤에 공기가 얼어붙었는지,

어떤 말 뒤에 관계가 불안해졌는지를.


그렇게 뇌는

나를 조금씩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적응시키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카락을 기르기로 '결정'한 적이 없다.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적은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는 짧은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선택이 자신은 싫다고 분명히 말했다.


나의 상징과도 같았던

단발머리를 포기하고 15년 만에 머리카락을 길렀다.

처음엔 '소원 하나 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발머리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먼저 그의 반응을 떠올리게 됐다.


머리카락을 자른 뒤에 마주할

공기의 변화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기른 건

결코 내 취향의 변화가 아니었다.

우리 관계의 긴장을 줄이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조정이었을 뿐이다.


그저 관계가 편안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아주 작은 희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나는 머리카락을 기른 게 아니라
나를 줄이고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서야

단발머리로 다시 돌아왔다.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만큼은

설득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내가 오랫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건

머리카락 길이가 아니라

나의 기준이었다는 걸.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방식으로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비로소 명명할 수 있다.


이건 성격의 변화도, 타협도 아니었다.

나를 조용히 축소시키는 통제였다.




결국

단발머리가 아닌

이 관계를 포기했다.


그리고

나를 무사히 데리고 나왔다.


결혼식을 올린 지

6개월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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