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 떠나지 못했을까

의지박약이 아니라 뇌의 결정이었을 뿐

by 한단단

이별을 결심한 사람들은 같은 말을 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궁금해졌다.

왜 정신은 항상 나중에야 드는 걸까



그리고 나도 스스로를 책망했다.

왜 더 일찍 떠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많은 신호를 보고도 머물렀을까.

우리는 이런 상황을

개인의 의지나 성격 문제로 설명하려고 한다.

끝까지 참아내는 사람이거나,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별을 그리고 이혼을 결심하지 못했던 이유는

결코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당시 내 뇌는

나의 관계를 '위험'이 아니라

'익숙한 상태'로 처리하고 있었다.


뇌는 고통의 크기보다
예측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낯선 자유보다

이미 알고 있는 불행을

덜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반복되는 갈등과 폭언,

그 뒤에 찾아오는 사과와 극진한 배려.

이 리듬이 계속되면

뇌는 그것을 하나의 정상 상태로 저장한다.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멈춘 것뿐인데도,

뇌는 그 평온을 '안전 신호'로 착각하고 만다.

그래서 관계를 벗어나는 선택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늘 전쟁 같은 다툼 뒤에 찾아오는

조용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 시간이 오면 마음이 놓였고,

"그래도 괜찮다"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 판단이 감정이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혼은 결단이 아니었다.

도망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한 사건이었다.


내 뇌가 처음으로
"이건 안전하지 않다"라고
분명하게 인식해 버린 순간이었다.



혹시 지금도 스스로에게

"아직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건 결코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아직 뇌가 위험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인식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갑자기 찾아온다.

그날 저녁 메뉴였던

김치찌개가

내 이혼의 트리거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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