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내 선택으로 바뀐 순간
최근에 스트레스와 계절성 알레르기로 피부가 연달아 3번이나 뒤집혔다. 처음이었다.
콧 끝을 제외한 전체 얼굴에 좁쌀 여드름 같은 하얀 알맹이가 잔뜩 퍼져있었고 시뻘겋게 열감도 느껴졌다. 세수를 하노라면 내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건 피부가 아닌 오돌토돌한 징그러운 곤충류를 만지는 것 같았다..
원인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져 있을 때 올라 온 계절성 알레르기. 내 얼굴을 보자니 스트레스가 더 심각해질 지경이다.
피부가 이렇기에 더.. 열심히 화장을 하고 출근했다. 도저히 노메이크업으로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다. 화장을 안 하면 무슨 옷을 입어도 예쁘지가 않다. 그래도 우선 다음날엔 조금 더 연하게 해 봤다. 아 밋밋한 내 얼굴. 그래도 피부를 되돌리고 싶다는 마음에 다음날은 로션만 발라봤다.
지하철 유리에 마주친 나에게 묻고 싶다. '넌 누구냐.. 당분간 마주하고 싶지 않다. 너.. ‘
아니, 전에는 길을 지나가면 그래도 사람이 지나가니까 비켜주는 것 같았는데 어째 요 며칠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다. (느낌) 아.. 눈 화장이라도 진하게 할 걸 후회한다.
이렇게 2-3주를 노메이크업으로 다니니 피부가 진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내가 들었던 말들이 하나둘씩 뇌리를 스쳐가고 있다는 것
“어? 얼굴이 좀 탄 거 같은데~? 어디 좀 다녀왔어?”
“아.. 이게 원래 제 얼굴이에요. 원래 피부색이 누래요”
“아니 요즘 안색이 안 좋아, 표정도 안 좋고..”
“아, 예?? 화장을 안 한 거예요 :/ ”
화장으로 내가 표정을 만들었나 싶기도 하다. 그냥 속으로는 '내가 화장을 잘한다'라고 생각하고 나를 위로했다. 그들은 그냥 나를 걱정하는 거겠지!? 갑자기 이상해 보였을 거야.. 아니 근데, 그래도 마주칠 때마다 주말에 어디 동남아 갔다 왔냐고 묻는 건 좀 너무했지 싶다.
그나저나
피부가 제법 나아졌는데 난 오늘도 화장을 안 했다. 내일도 그럴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화장을 해볼까 한다. 왜냐면 처음 느껴보는 피부의 자유랄까? 고등학생 때부터 밀가루처럼 하얗게 화장하던 내가.. 거진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피부가 숨을 쉬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지금도 내 얼굴을 보면 당장이라도 컨실러로 막 감추고 싶다. 근데 굳이.. 그래야 될까?
요즘 드는 생각이 이렇다.
화장을 안 하고 다녀보니
이 해방감이... 생각보다
황홀하다.
아주 연한 화장이어도 좋다. 예전엔 (8단계: 스킨> 로션> 메이크업 베이스+선크림> 파운데이션> 컨실러> 파우더> 미스트> 지속적인 수정 화장)이었다면 요즘은 (3단계: 스킨> 로션> 선크림) 이렇게 간소화했다.
신기한 건, 피부가 날로 좋아지고 있다. 뭔가 쫀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눈썹과 눈썹에 색칠을 덜하다 보니 속눈썹과 눈썹이 덜 빠지고 오히려 채워지고 있는 걸 느낀다.
암튼 난 그렇게 요즘 피부의 해방이 꽤나 즐겁다!!
사실 내가 예쁘게 화장하면 남들이 날 예쁘게 봐줄 거라는 그런 기대감도 있다. 메이크업이란 게 내 만족을 위해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남을 위한 화장을 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 만족도 있지만- 굳이 슈퍼 갈 때, 야근할 때, 운동할 때, 그 날일 때는 특히 더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100% 내 만족이라면 혼자 집에 있을 때도 하고 있겠지..?
근데 요즘 거울을 보며 느끼는 건,
예쁜 화장 vs 예쁜 표정?
진짜 중요한 건..
표정이더라
표정이 예쁘면 상대방의 호감도, 기억도 더 오래 지속된다.
사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입꼬리가 처진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대게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점잖게 또는 중후하게 나이 드신 중년 어르신들을 보면 신기하게도 표정이 하나같이 온화하다.
”나이가 들면 내 얼굴에 삶이 그대로 남아있다.” 는 엄마의 말씀이 떠오른다.
요즘 그래서 두꺼운 메이크업에서 해방 중인데 한 가지 더 시도하고 있는 건,
노브라
이건 진짜..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사회의 시선이 어떻든, 어떤 과학적인 이론(음 뭐랄까?)을 갖다 대든, 그냥 내 만족으로 시작했다.
WHY NOT!?
안 될게 뭐야?
못 할 건 없지!
살아가다 보면 사회의 시선이나 남의 시선을 내 생각이나 내 주관보다 중요시 여길 때가 많다. 사소한 것부터 크고 대단한 것까지.
그냥 나는 내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건데
그래서 나는 요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냥 내 삶을. 완벽히 자유롭게. 남을 돕지는 못할지언정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