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제 하얀 머리띠 혹시 보셨나요?

삶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 나가는 과정

by 홍정주

십여 년 전에 하얀 머리띠를 잃어버렸다. 하얀 머리띠를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하다가 그 머리띠를 갖게 되었다. 머리띠가 얼마나 편하고 좋았던지, 이건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하고 늘 신경을 썼다.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다. 그때 엄마를 생각해서, 엄마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끼는 그 하얀 머리띠를 챙겨드렸었다. 그런데 그 머리띠가 병원에서 분실되고 말았다. 나와 여동생은 잃어버린 머리띠가 너무 아까워서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머리띠를 잃어버린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머리띠를 대체할 만한 머리띠를 구하지 못했다.

나는 여동생이 만들어준 아끼던 파우치도 잃어버렸다. 여동생이 퀼트 반에서 직접 만든 것이었다.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여동생은 그 퀼트 반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똑같은 파우치를 주문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에 것과 똑같지만 손잡이 부분이 재질이 달라 단단하지 않고 흐물거린다. 그래도 잘 쓰고는 있는데.

의문이 든다. 도대체 어딜 가야 잃어버린 하얀 머리띠와 파우치, 아니 머리띠 만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영영 잃어버린 것이 머리띠와 파우치뿐인가?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엄마가 사다 주신 세계명작동화들를 잃어버렸다. 책들을 읽은 기억도 다 잊어버렸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그 많은 장난감들, 그 장난감들과 놀던 추억도 잊어버렸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는 나에게 오지 않는 것인가? 그것들은 영영 사라져 버렸는가? 어디 가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것들을 찾게 되면 나는 그것들을 다시는 잃어버리지도, 잊어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모두 다. 우리 집 뒷마당에 가보았다. 나는 삽을 조심스럽게 들어 조금씩 땅을 파 보았다. 세 번쯤 팠을 때였다. 네모난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믿기지 않게도 잃어버린 파우치가 있었다. 나는 계속 땅을 팠다. 파다 보니 놀랍게도 어릴 때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책을 읽으며 기억을 되찾았다. 책을 다 읽고 더 깊숙이 땅굴을 팠다. 그랬더니 별별 물건들이 다 나왔다. 천이 다 뜯어졌다고 엄마가 버린 아끼던 기린인형이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처럼 기린인형 등 뒤에 타고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이 환하게 되살아난다. 모빌도 있다. 아기 때의 기억이 난다. 목욕 바구니가 나왔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아기인 나를 정성스럽게 씻겨주신다.

정신을 차리고 땅굴을 좀 더 파보니 난로가 있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난로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엄마와 아빠는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본다. 난로 뒤에 그림자가 어른 거린다. 나는 순간 난로에 데었다. 엄마, 아빠가 약을 가져와서 데인 팔에 발라 준다. 현재로 돌아와 행복하게 땅굴을 판다. 또 뭐가 나올까 기대하면서. 수영복, 금메달, 상장, 사진들... 많은 물건들이 나왔고 나는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낸다. 파고 파고 또 팠다. 내가 제일 찾고 싶은 게 뭐였지? 내가 제일 찾고 싶은 건... 이제 더 이상 파낼 흙이 없어서 나온 하얀 바닥을 삽으로 툭 툭 툭 세 번 쳤다. 갑자기 하얀 바닥에 문이 하나 생겼다. 어, 이건 뭐지? 문의 팻말에는 ‘모두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그 문에 달린 문고리를 흔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맙소사!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어쩐지 그 문으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바삐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게 웬걸?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의 손에는 하얀 머리띠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윙크를 하더니 하얀 머리띠를 건넸다. 나는 머리띠를 받고 서 있었다. 그리고 하얀 바닥에 생긴 문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곳은 천국이었을까? 나는 하얀 머리띠를 바라보며 외쳤다.

“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