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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r 04. 2017

이랑의 '트로피 경매'를 비난하려거든

1. 밥 딜런과 노벨문학상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다음날, 선생님들은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국문과에게 물어보면 명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셨던 것 같은데 난 밥 딜런이 누군지도 몰랐다. 노벨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저분이 받았구나. 근데 누구지?' 했을 뿐이다. 내가 아는 거라곤 단지 뮤지션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오직 그 하나의 단서만 가지고 '노래 가사도 시적이잖아요! 문학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대답이 틀려서가 아니다. 난 지금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문학의 확장'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건 <그 상을 필요로 하는 게 누구인지>, <노벨상 수상이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난 그냥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만 가지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고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있다. 명성도 자자하다. 간단히 말하면 그에게 노벨문학상은 딱히 필요한 무엇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학계는 몰락 중이었음이 분명했고 '대중의 관심'과 '문학 권력의 확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밥 딜런과 그의 음악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문학'이라 호명했다. 이후 이어진 논란은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덕분에 문학의 영역을 음악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밥 딜런은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얻었고, 노벨문학상은 대중의 관심과 논의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으니 윈윈(win-win)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행해지는 일들의 이면에서도 권력은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문학의 확장'이 밥 딜런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관찰해야만 하는 이유다.


2. 이랑과 한국 대중음악상

이랑의 시상식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이랑은 시상식에서 자신의 수입을 언급하며 트로피를 경매했고 시작가인 50만 원에 낙찰되어 현금을 받고 판매했다. 이후 의견은 크게 '한국 음악 시장을 시원하게 꼬집었다'는 평과 '상을 준 사람 앞에서 트로피를 팔아버리면 준 사람들은 뭐가 되냐'는 의견으로 갈렸다. 심지어 트로피를 팔아버리는 뮤지션에게 상을 주었다는 이유로 한국 대중음악상의 심사위원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 되는 일 = 한남으로 태어나기'라는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로 시상식 퍼포먼스와 관계없는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랑이 꼬집으려 한 건 '대한민국 음악 시장의 불합리한 수익구조'와 그 시장이 작동하고 유지되는 '권력'구조였다. 그렇다면 이랑 혹은 한국 대중음악상이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상을 주는 한국 대중음악상도, 상을 받는 이랑도 '권력'이라 할만한 게 없으니 비난 혹은 비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설사 그의 태도나 발언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비난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건 마찬가지다. 혹 누군가를 매도함으로써 얻는 자그마한 쾌감이나 반응에 대한 관심을 얻기 위함은 아니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혹 남성 중심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게 목적이었다면 그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그의 음악이 50만 원의 가치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반증한 거 아니냐는 주장은 <음악으로 돈을 못 벌었다 = 그의 음악은 가치가 없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법으로 정한 기준 저작권료 비율은 유통사 40%, 제작사 44%, 저작권자 10%, 실연자 6%다. 뮤지션이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그가 버는 돈으로 음악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건 성급한 주장이다. 애초에 돈이 유일한 가치 척도가 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한다. 한국 대중음악상의 1년 예산이 3천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2조가 투입된 4대 강이 한국 대중음악상보다 7만 3천 배 정도 가치가 있어야만 하니깐 말이다. 


그러므로 '트로피를 50만원에 팔았다'거나 '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만 떼어내 소모적 논쟁으로 끌고 가는 건 비합리적인 구조를 해결하는데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장담하는데 그 어떤 뮤지션(사람)도 이 사회에서 돈 없이 살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이 논쟁들은 '어떻게 하면 뮤지션들이 합리적인 수익 구조 속에서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로 발전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그렇게 불쾌해하는 '트로피를 팔았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사무국장 이지선 님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퍼포먼스 덕분에 창작과 생계라는 이슈가 던져지고 우리 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돼서 기분 좋기도 하다'라고 했다.(https://www.facebook.com/jisun.lee.1293575) 


그니깐 상 준 사람이 뭐가 되냐는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그의 퍼포먼스는 한국 대중음악상에 무례인 행동일 순 있었지만 칼날은 대형 유통사와 제작사를 겨냥했음이 분명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랑과 한국 대중음악상은 서로 털어봐야 얻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혹, 불쾌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이해를 못 한 사람이 있다면 '트로피를 팔아버리면 대중음악상은 뭐가 되냐'는 당신뿐일 거다.



* 커버 사진 출처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공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http://koreanmusicawards.com/2017/winner/winner_gen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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