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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y 25. 2017

독자만이 여성혐오를 견제하리라

엉망진창이었던 5년 전 기사 제목들

아래는 2012년 12월 22일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기사 중 성적인 측면을 강조한 제목의 기사들이다.


미녀모델 "젊은 세대왜 박정희 욕하는지.."

‘10대와 스캔들’ 교육 부국장내연녀가 무려

개그우먼 김지민 '완판등극뜨거운 반응

소녀시대 맞아?’ 란제리룩+하의실종 아찔

수지성희롱 논란내용보니 경악할 수준

"화재 발생한 모텔의 4층 객실문 열었더니"

전국 男女 내일 솔로대첩서 '몹쓸짓했다간


제목만 봐도 숨이 턱턱 막혀온다. 여성은 한자로 표기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따옴표('')안에 넣어서 책임을 피하고 있다. '아찔', '경악할 수준', '몹쓸짓' 따위의 내용 말이다. 기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자.


01.「미녀모델 "젊은 세대, 왜 박정희 욕하는지.."」,헤럴드경제,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21223000224 

모델 이선진이 자신의 SNS에 노인 무임승차 폐지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피력하며 젊은 세대들이 진보라고 하며 보수진영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논점과는 크게 관련 없는 '미녀'라는 걸 제목에 강조 한 여성혐오 기사다. 


02.「"화재 발생한 모텔의 4층 객실문 열었더니…"」

모텔이라는 장소를 먼저 언급하고 말줄임표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성적인 호기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기사의 본래 제목은 [why] "화재 발생한 모텔의 4층 객실문 열었더니, 5초만 늦었어도" 」 였다. '5초만 늦었어도'라는 내용을 누락시켜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 기사 내용 또한 씨랜드 참사 때 현장에 출동했던 김영기 소방위원에 대한 인터뷰였다. 구조보다 모텔이 중요했던 여성혐오 기사다.  


* 현재는 기사 제목이 수정 혹은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검색은 되지만 동일한 제목의 기사는 찾을 수 없다.


03. 「‘10대와 性스캔들’ 교육 부국장, 내연녀가 무려…」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21223020759

04.「개그우먼 김지민 '완판女' 등극…뜨거운 반응」,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nid=08&nkey=201212221415563&mode=sub_view

3과 4 모두 性, 女를 한자로 쓰면서 의미를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는 기사들이다. 물론 한글은 역사적으로 한자 문화권 안에서 만들어진 언어이기 때문에 한자의 사용은 기사의 핵심을 짧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적절하다. 하지만 위에서 사용된 한자는 기사의 내용을 표현하기보다는 성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면서 내용마저도 쓸모 없는 경우가 많다. 평하기도 아깝다.


여성혐오는 여전히 진행 중

2012년도의 기사들을 살펴본 것은 5년 전만 하더라도 포털사이트 메인에 버젓이 여성혐오 기사들이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OO女' 따위의 제목을 붙이는 건 하나의 관행처럼 여겨졌다. 성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독자들의 관심과 조회수가 늘어났고 늘어난 조회수는 신문사에 광고 수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 외의 성별을 구분하려는 (또는 해야만 한다는) 사고가 언론계와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성혐오 기사가 꾸준히 생산되지만 포털사이트 메인이나 중앙지에서 노골적으로 여성혐오적인 기사를 내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여성혐오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꾸준한 지적과 개선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론사들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최근까지도 피해자를 'OO女'로 부른다던가,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사용했던 끔찍한 기사들이 있었다. 이전보다 줄어들었을 뿐이지 언론의 여성혐오가 사라진 건 절대 아니다. 


<기사 제목의 '女' = 여성혐오> 는 공식이 아니다

하지만 제목에 '女'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무조건 여성 혐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목에 성별을 표시하는 것이 기사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 중앙일보, 「자신의 사망 직전 모습을 남긴 女사진병」, http://news.joins.com/article/21542020


해당 기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된 사격훈련 촬영 중 일어난 폭발 사건으로 클레이튼 상병과 함께 있던 아프간 군인 4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사 속 사진을 공개한 이유는 '여군들이 훈련과 전투 과정에서 남자 군인들과 동등하게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 사례'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사 제목에 女를 사용한 것은 당연히 전쟁에 참여한 사람은 남성일 것이라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돌을 던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여성혐오는 다양한 방법,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무엇이 여성혐오인지 판단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여성혐오라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수많은 논란과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언론 내에서만 보더라도 그 글이 쓰인 맥락, 시대, 사용된 사진, 기사 제목 등 살펴봐야만 여성혐오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 조금 더 예민해지고, 불편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관행에 익숙해진 언론은 여성혐오 기사를 내놓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언론 또한 매너리즘에 빠져 스스로 변화하길 기대하긴 힘들어졌다.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본래의 목적을 잃은지 오래다. 심지어 진보 언론사들도 엘리트 의식에 빠져들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점이다. 언론이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가르치던 시대는 지났다. 독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읽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꾸준히 견제하는 것만이 언론의 여성혐오, 엘리트 의식에서 깨어 나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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