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Nov 22. 2017

고양이/흉상의 주인을 찾습니다

0. 길고양이를 친 운전자,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을 훼손한 최씨.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둘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고양이와 대통령 흉상이 지자체의 것인지, 재물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1. 길고양이를 친 운전자는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수술을 받았다. 척추를 다쳐 약 400만 원 가까이의 수술비가 나왔고, 보험사에 보험 지급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이기 때문에 보험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거절했다. 운전자는 동물보호법상 소유자는 해당 동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뜻하고, 지자체에 길고양이 보호 의무가 있는 만큼 지자체가 길고양이의 ‘사실상 소유자’라고 주장하며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 하지만 법원은 1,2심 판결에서 모두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자체가 유실, 유기 동물을 보호 조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나 이를 소유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2. 최씨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 근린공원에 있는 박 전 대통령 흉상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망치로 코 부위를 훼손하여 특수재물손괴죄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10월 12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1년을 구형했고, 17년 11월 9일 재판부는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최씨는 "영등포구청도 서울시청도 박정희 흉상에 대한 시설물 관리대장이 없다"며 "소유권이 없는 물건을 철거하라는 의미로 훼손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은 이미 영등포구청이 지난 1988년 시효 취득했다"며 "흉상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영등포구의 소유물로서 관리해온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2]


3. 위 두 사건은 지자체에 소유권을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길고양이 보험 지급 의무, 재물손괴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 법원은 지자체의 소유권을 동물 보호, 관리 관련 쟁점에서는 소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 흉상 관리에서는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에 의해 지자체의 보호조치 의무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소유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 흉상은 지자체에 시설물관리대장도 없으며, 실질적인 소유권 주장을 박정희 흉상보존회가 해왔음에도 지자체를 소유자로 인정한 것이다.


4. 대한민국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는 '재물'이다. 주인이 없는 물건을 훼손한 행위는 재물손괴죄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길고양이를 치고 지나가도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다친 고양이를 치료한 후 가입한 보험사에 보험 지급을 요청해도 보험금 또한 지급되지 않는다. 보험에 '다른 사람의 재물을 치었을 경우 보험을 지급한다'는 약관이 있다 하더라도 길고양이는 '다른 사람의 재물'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인이 없는 동물들을 학대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자신의 반려동물이든, 주인 없는 동물이든 학대하는 행위는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의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엄연한 범죄다.


5. 최씨는 박정희 대통령 흉상을 무주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판사는 '흉상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의 행위가 흉상이 영등포구의 소유물이라는 근거라고 판시했다. 논리대로라면 지자체가 유기동물 보호센터를 운영해서 유기동물을 보호, 관리하는 것 또한 길고양이가 지자체의 소유물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동물보호법에 의해 유실, 유기동물을 보호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고 실제 유기동물들을 보호, 관리해온 점을 인정하여 보험사는 운전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아니면 박 전 대통령 흉상을 훼손한 최씨 또한 무죄라고 판결해야 한다. 


6. 대한민국의 법률은 동물과 생명 보호에는 소극적이지만 재물 보호에는 적극적이다. 동물보호법 개정 전에는 재물손괴죄가 처벌 수위가 더 높아서 동물보호법이 아닌 재물손괴죄로 처벌하는 사례도 있었다. 반려동물을 재물이 아니라 생명이라 주장하면 가해자에게는 더 낮은 처벌이 가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동물보호법의 처벌 규정이 강화되어 반려동물을 '재물'로 취급해야 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법률상 동물의 가치는 이제야 재물에 준할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최소한 가해자들의 입에서 '법대로 해라'는 소리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법은 도덕과 윤리가 마비된 사람이 마구 휘두르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니깐.


* 동물보호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고, 재물손괴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에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으며 2018년 3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제14조(동물의 구조ㆍ보호) 

① 시ㆍ도지사(특별자치시장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 제15조, 제17조부터 제19조까지, 제21조, 제29조, 제38조의2, 제39조부터 제41조까지, 제41조의2, 제43조, 제45조 및 제47조에서 같다)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동물을 발견한 때에는 그 동물을 구조하여 제7조에 따라 치료ㆍ보호에 필요한 조치(이하 "보호조치"라 한다)를 하여야 하며,(후략)


1. 유실ㆍ유기동물

2. 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3. 소유자로부터 제8조 제2항에 따른 학대를 받아 적정하게 치료ㆍ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


제42장 손괴의 죄

제366조(재물손괴등)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69조(특수손괴) 

①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제366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제1항의 방법으로 제367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출처 및 참고자료


[1] <차로 친 길고양이 치료비 누가 내야할까?…길고양이 소유권 논란>, http://news.joins.com/article/22132341

[2] <'박정희 흉상훼손' 최황 "시대착오적 판결...항소하겠다"(종합)>, 뉴스원, http://news1.kr/articles/?3148055

3. 형법,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www.law.go.kr/%EB%B2%95%EB%A0%B9/%ED%98%95%EB%B2%95

4. 동물보호법,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www.law.go.kr/%EB%B2%95%EB%A0%B9/%EB%8F%99%EB%AC%BC%EB%B3%B4%ED%98%B8%EB%B2%95


매거진의 이전글 죽어간다. 환자도, 의사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