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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Aug 31. 2023

‘누칼협?’, ‘알빠노!’- 덫에 갇힌 한국 사회

로리 오코너 저, 정지호 역,『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심심, 2023

‘누칼협?’, ‘알빠노!’- 덫에 갇힌 한국 사회

로리 오코너 저, 정지호 역,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심심, 2023


  로리 오코너의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는 ‘월리엄스에 따르면 자살이 속박감에서 벗어나는 것(p.127)’이라며 자살 심리의 핵심으로 속박감을 제시한다. 책에서 영국 사전을 인용해 밝힌 속박감은 ‘덫 안에 또는 덫 때문에 갇힌 상태(p.127)’를 의미한다. 자유나 삶의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때 느끼는 속박감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률 1위를 독주하고 있는 한국 사회엔 어떤 덫들이 있는 걸까.


  삶에서 실패나 좌절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너그럽지 못하다. 사회의 자원은 개인 능력에 의해서만 배분돼야 하고, 정치적(의회 정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으로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실현하려는 시도는 능력 없는 자, 혹은 낙오자들의 떼쓰기 정도로 치부된다. 그런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탄생한 단어가 바로 ‘누칼협’이다. 사회적 배경이나 경제적 조건, 성별, 장애 여부 등은 모두 배제되고 오직 개인의 선택만 남는다. 이 사회에는 무한한 자유와 선택지가 있고, 그것을 선택한 것 또한 본인인데 어디 감히 남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냐는 것이다. 말 그대로 칼 들고 협박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부가조사’에 따르면 2022년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815만여 명, 전체 근로자에 37.5%에 달한다. 또한 2022년 여성 임금 근로자는 978만여 명으로, 남성 임금 근로자 수인 1,193만 명보다 적지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450만여 명으로, 남성 365만여 명보다 도리어 많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다시 능력과 선택의 문제로 환원된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키워 정규직 직장을 ‘선택’하면 된다는 논리다.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거나, 비정규직 임금을 높이거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등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비현실적이거나 비효율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논리 앞에서 입시, 취직, 결혼, 내 집 장만 등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적절한 나이에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덫에 빠진다.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강한 압박에 자신을 실패한 사람, 사회적 쓸모가 없는 사람, 짐짝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자살을 막기 위해, 그러니까 속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치감’과 ‘유대감’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연락이나 편지 같은 단기적 개입으로도 자살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사별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 판단은 피하고 공감과 연민을 나타내라고 말한다. 또한 자살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 믿을만한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안전 계획 6단계 중 하나로 제시한다. 하지만 가치감이라는 감정은 누칼협 앞에서 초라해졌고, 유대감은 알빠노 앞에서 무력해졌다. 타인의 고통이나 좌절 따위는 내 알 바 아닌 세상에서 가치감이나 유대감은 고리타분한 언어로 남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덫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 머리를 굴려봐도 덫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약자와 소수자, 타인에 대한 혐오가 짙게 깔려있다. 정치나 사회에 대한 혐오도 팽배하다. 연대? 유대? 가치? 각자도생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남을 돌보자는 말을 꺼낼 엄두가 안 난다. 그러니 아이를 낳지 않을 수밖에. 지금까지는 속박감과 분노가 안으로 향해 자살로 귀결됐다면, 이제는 임계점을 넘어 사회로 표출되기 시작하는 듯하다. 지구상 대부분의 문제는 인류가 자초한 문제기에 인류의 절멸이 답이라 생각하지만 개개인의 사람이 죽는 건 다른 일이니까. 그럼에도 덫에 걸린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구하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덫으로 뻔히 걸어갈 게 보이는 사람은 잠깐 불러 세워야지. 스스로 죽으려 하든, 남을 죽이려 하든 할 수 있다면 그건 막아야지.


  * 한국 사회와 서구 사회의 차이일까.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과 대치되는 의견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무엇보다 자살 이야기를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대 자살로 죽지 않는다(p.36)’와 같은 문장.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제작한 「생명 지킴이교육 워크북 2023년 개정판」에서는 ‘자살의 징후’로 “살기 싫어요. 자살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직접적인 언어 표현뿐 아니라 “그동안 감사했어요. 마지막으로 인사할게요”와 같은 간접적인 언어 표현도 자살의 징후로 본다. 동시에 생명존중 활동전략으로 ‘자살에 대해 질문하라!(p.10)’라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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